Saturday, May 2, 2015

오, 버지니아!



하여,
미루고 미루던 버지니아 울프를 드디어 마음을 먹고(겁도 먹고) 읽었다.
(*일전에 한번 언급한 것 같지만 누구나 내 글을 하나하나 다 따라잡고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한번 더 말하자면 문득 이제이 영어한마디: 어떤 작가의 책을 읽을 경우, '그 작가를 읽었다'고 한다. Have you read a book by Virginia Woolf? 라고 하지 않고 Have you read Virginia Woolf?라고 한다는 말이다.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심지어 작가 이름도 모르고 제목으로만 알고 있는 책도 있는 것 같은데 미국이사실 그렇게 생각하면 작가에게 더 크레딧이 가는 편인 것 같다.)

실은 '미세스 달로웨이'와 '올란도'가 더 지명도가 있는 것 같았지만, 혹 작품이 마음에 들면 메릴스트립, 줄리안 무어, 니콜 키드만 주연으로 영화로도 만들어진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마이클 커닝햄의 The Hours를 읽을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The hours는 미세스 달로웨이의 애벌제목이기도 하다), 조심스레 The Years(한글 번역은 '세월'로 들어간 것 같다)를 먼저 읽기로 했던 것이다.

또, 딱히 버지니아를 지금 읽기로 한 개인적인 동기라면 5월이 다가오면서 벌써 2주기가 되어가는 또 다른 '한 죽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도 있었을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따로 한번 정리해서 써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늘 가슴속에 숙제로 남아 있는 일이다. 처음에는 그런 결정을 내린 '그녀'의 독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용서하기 힘들었고, 그러나 마침 내가 몸이 장기간 좋지 않던 중이라 또 다른 시각으로 그녀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용서했고, 이제는 그것을 넘어서 그녀의 삶 전반에 대해 뭔가 tribute를 함으로써 한 삶과 죽음을 잘 기리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

차후에 읽을 사람들을 위해 내용은 남겨놓고 이야기를 하자면 아무래도 vague하게 말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일단 처음 인상은 내가 생각했던 작가와 책이 아니라는 것, 톤과 세상에 대한 시각이 밝고 열려있다는 것이었다.
전혜린의 수필을 읽을 때 사람들이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자살을 한 작가는 어두울 것이라는 선입견이 뭐 그리 심각하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initially 나 스스로의 피할 수 없는 뻔한 한계를 들여다보게 해준 것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읽어나가면서 저절로 연필을 들고 줄을 긋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페이지 페이지 받아적고 있는 나를 다시 발견하고, 이따금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바라보면서, 정말 이 여자,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것 같다. 
딱하다, 아이고 이 아까운 삶, 이런 느낌. 

세상에는 '제 때 잘 죽은 사람'들이 있다.
politically correct speaking도 좋지만,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무슨 철천지 원수도 아니고(원수라도 그렇지) 어떤 사람을 남이라고 해서 당시에 죽었다고 기뻐했을 일이라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말하자면, 돌이켜 보아서, 차라리 적당한 때 사라졌으면 좋았을 것을 질질 끌며 못 볼 꼴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 맥락에서 그렇다.
(*이제이 영어 한마디: politically correct speaking이라는 말은 정치적으로 하는 말이아니라 민감한 사안을 조심스레 이야기 하는 방식을 말한다. 즉 흑인을 black 이라고 하지 않고 African American 이라고 한다든가,  싱글/이혼맘의 가능성을 감안해서 아이가 있어도 당연히 남편이 있을 것이라고 넘겨 지으며 말하지 않는 것 등을 말한다)
정말 매우 매우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작게는 엘비스 프레슬리나 존 레논에서 크게는 마틴 루터킹 주니어나 케네디 대통령(possibly 링컨 포함) 같은 경우를 예를 들수 있다(케네디 집안은 워낙 유명한 사람이 많지만 케네디라는 라스트 네임을 가진 '작가'만 해도 여럿이라 대통령이라는 말을 꼭 붙여줘야 한다). 그 당시 안 죽었으면 아마도 지금쯤 형편없는 사람으로 전락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신격화된' 연예인들은 지금껏 살았으면 성형이나 해서 이상해진 얼굴로 흉한 모습을 보이고 있을 수도 있고, 단순히 나쁜 짓을 할 수도 있고 (코즈비를 보라 ㅠ 꼭 그들이 아니더라도 신격화된 가수 전반을 말하는 것이다: 마이클 잭슨도 약간 더 일찍 죽었더라면 본인에게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른다고나 할까?) , 정치인들은 그들의 잘 알려진 지저분한 여성편력과 스캔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언제든지 비난을 받을 여지가 있는 말 많고 말 많은 정치적인 언행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그들의 업적은 죽고나서 후대의 사람들에 의해 부풀려지고 ulterior motive를 염두에 둔 어젠다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이용당하는 것 같은 쪽이 많을 뿐, 실제로 살아서 계속 진행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도 많다. 

그런데 버지니아는 정말 아까운 삶을 일찍 끝냈다는 생각이다. 그녀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이 하나 사라졌다는 점에서 세상에는 명백한 손해였다는 결론.
물론 내가 이해하고자 하는 한 죽음을 용서하기 위해 내가 결국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사는 것이 너무 괴로우면 일찍 떠나는 것을 선택하더라도 그것을 단죄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은 있지만 그녀의 이야기에서 딱히 그런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살고 싶었고, 살아갈, 남들처럼 우울해하면서 늙어갈  예정이었던 사람같다는 느낌.
물론 소설이니까 작가가 거짓된 모습을 보여줄 수 도 있지만 작가의 어떤 것들이 녹아있을 것이 분명한 그녀의 글에는 내가 선입관을 가지고 읽는데도 틀림없이 삶에의 의지와 사랑이 충만한데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에 딱히 만져지는 답을 손에 쥘 수는 없는 것이 안타까왔다. 


그래서 곧이어 그녀의 책을 다른 책들을 다 찾아 읽고 싶었지만 너무 빠져 들면 안될 것 같아서(나는 간만에 뭔가가 뜨겁게 좋으면 그게 두려워서 돌아서 가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생존 본능인 듯) 일부러 다른 책을 한권 읽고 (the diviner이라는 필독서 1001권 추천서인 마가렛 로렌스라는 여자작가의 책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고민하는 작가의 이야기였다. 대단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같은 맥락이라는 점에서는 우연의 일치치고는 괜찮은 것이었다) 다시 예정대로 마이클 커닝햄의 버지니아 울프를 소재로 한 the hours를 읽었다.

그의 버지니아 울프의 삶과 책에 대한 해석과 동감을 많이 했고, 그러면서도 작가 자신의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을 시켰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던 책이었다. 커닝햄의 시각으로도 그녀의 책들에 나오는 인물들은, 심지어 자살을 꿈꾸는 한 인물까지도 단순히 비관적인 눈이 아니라 대개 세상에 대한 애착으로, 그런데도 불구하고 살아내지 못하는 몸부림으로 넘쳐났다. 그리고 작가가 그것을 재해석하는 과정이 거짓이나 현실 부정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다.

...

또 다시 다른 작가의 책을 하나 더 읽고야 그녀의 일기모음을 읽어도 된다고 나를 허락했다.
역시 1001권 추천서인 뮤리엘 스팍스의 Driver's Seat이라는 분량은 가볍지만 오묘한 이야기였는데, 아마도 얼른 버지니아의 일기를 읽고 싶어서였을까 눈썹이 자꾸 올라가는 thought provoking 이긴 했지만 다른때 읽었을 때는 어땠을지 몰라도 그렇게 몰두가 되지 않으면서 하루만에 읽어치워버렸다.

그리고 A writer's Diary.
매일은 아니지만 몇십년동안 꾸준히 일기를 쓰고 있던 그녀인지라 전문은 한권으로 되지 않아서 그녀의 메니저격인 남편 리오날드 울프가 편집해서 버지니아 사후 몇년 후에 내놓은 20년에 걸친 그녀의 삶을 다시 연필을 손에 들고, 밑줄을 긋고, 문장들을 베껴 적어가며 따라갔다. 그녀는 자신이 죽으면, 혹은 죽기전에라도 일기를 바탕으로 바이오그래피가 나올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때문에 딱히 남의 일기장을 '훔쳐읽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녀의 말을 빌면, 아마도 사람은 자기자신에게도 잘 보이고 싶은 것인가 보다.

이따금 드는, 글을 잘 쓰려고 고치고 다듬고 하다보면 가끔 물흐르듯 하면서 자연스럽고 투명하고 진솔(?)한 글을 쓰고 있지 않다는 생각은 어쩌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새로 했다.
글을 쓰는 막내동생과 마침 생각난김에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메일을 주고 받으며, 글을 쓴다는 것은 그냥 충동적이나 특별한 재능에서 절로 솟아나오는 것이 아니고, 언어라는 블락을 사용해서, 집같이 생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실제로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을 짓는것 같은, 실제적인 노동으로 엮어내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당연한 것 같지만, 이따금 재기가 빛나는 생동감 넘치는 책들을 읽으면 마치 작가가 머릿속에 있는 샘을 길어내는 것처럼 어딘가 이미 존재하는 것을 퍼왔을 뿐인 것 같다는 착각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그 전에 읽은 The Diviner(수맥잡이?)에서 암시하듯이 이야기와 글은 샘을 퍼 올리기 전 먼저 어디에 물이 있는지를 찾는 것부터의, 참으로 지루하고도 난해한 작업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말 할 수가 있겠다.

...

죽기 4일전까지 쓰여진 일기장에는, 늙어가는데 대한 두려움과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죽음에 대한 공포마저도 있는데 결국 그녀를 죽인 것은 단순히 크리틱의 평가에 의한 그녀의 순간적인 충동적 좌절이었을까?
자기 이름을 Google 하는 것이 가장 멍청한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이름 검색 안 하는 유명인 없듯이, 그녀도 다시는 안 한다고 하면서도 자꾸 도서관에 가서 신문에 실린 자기에 대한 평들을 찾아보고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아니면, 마치 사진 한장을 찍어보내듯 명료한 그림을 말로 보여주는 그녀의 눈과 언어로 바라보기에는 전쟁으로 인한 전체적 세계관이 너무 암울해졌던 것 같이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집 세채 중 두채는 폭격으로 사라졌다. 미국인들도 전기나 물이 안 들어오는 쌈직한 lake house 같은 것을 사놓고 여름이면 가서 장기간 지내기도 하지만 오래전 유럽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그들은 거의 '의무적으로' 겨울에는 도시에 살고-하우스를 닫고 '가야 한다'고 말한다- 여름에는 서머 하우스로 가는 식으로 철철히 움직여 다니면서 사는 경향이 있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에어컨과 티비가 없을때의 사는 방식이었을까. 도시는 엔터테인먼트의 센터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어볼 곳이 없다.. )

세월을 관통하는 한 집안 사람들의 역사를 그리면서, 막 내 나이와 비슷한 시점에서 나이들어가면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고찰도 매우 명료하고 희망적인 것 같았던 그녀를 갑자기 죽음을 선택하게 한 결정적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세상에 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격렬하게 세상을 가슴으로 끌어안고 살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너무 넘쳤던 것 같다고 말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불운한 과거로 인해(그런 이야기가 소재로 등장한 적도 없는 것으로 보이고 일기에는 전혀 나오지 않지만 아버지에게 추행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있다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기도 했다지만, 언제나 연관관계는 몰라도 인과관계는 분명하지 않은 법이다. 
아무튼 그녀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너무나 생생하고 빛나고 있어서, 나뭇잎 한장, 연기 한 줄기, 매일, 매시간 울리는 시간을 알리는 런던의  종탑소리도 번번히 다르게 읽히는, 그녀의 눈과 귀로는 하루가 십년같이 살아질 것 같다. 실제로 그녀의 일기에도 바이런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미 백살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에 사는 짧은 시간 동안 이미 남들이 사는것보다 더 '많이' 살았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다음 세상을 찾아가야했는지도 모른다는 느낌. 

요 며칠 이렇게 한번씩 버지니아가 마치 본래부터 오래 알고 지내던 친한 친구라도 되는 양 그녀를 '그리워' 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버지니아를 빌어 내가 이해하고자 했던 '그녀'의 죽음 또한, 집안 내력이거니, 약 부작용이었거니 하고 치부해버리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닌 까닭이겠지..

...

책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다른 것은 모두 '방해'가 되어버리는 그녀,
시대가 그렇다보니 펜으로 글을 쓰고, 다시 시작해서 완전히 뜯어 고치고,
원고를 넘기기 위해 타이핑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표현할지를 늘 고민하고,
다시 줄여가며 컴팩트하게 이야기를 다듬어가며 또 다시 고치고,
이번달에는 무슨일이 있어도 끝낸다 소리를 연신하면서 또 고치고, 지긋지긋하다고 치워놓았다가 다시 집어들고,
그래서 반년만에 기록적으로 빨리 다 썼다고 좋아하던 책을 결국 번번히 2년은 걸려 완성하는 그녀,
드디어 다 써서 출판하기로 결정을 하면, 징글징글하던 차에 끝난것만으로 시원하다며 다시는 읽지 않겠다면서도, 어느새 슬쩍 꺼내어 다시 읽고 하루단위로 자기 마음에 안 들었다 들었다를 반복하고,
인쇄들어가면, 출간을 기다리면서 크리틱들을 신경쓰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이번에는 정말 지난번과 다르다고, 실제로 그런 것 따위에는 마음 쓰지 않는다고 선언하면서도 좋은 평이나오면 바로 다음 작품 구상에 들어갔다가, 나쁜 평이 나오면 다시는 책을 쓰지 않겠다고 좌절하는 지극히 평범한(!) 작가
나의 버지니아..

그리고, 책을 쓰는 틈틈히 좋아하는 책 읽는것이 역시 가장 행복했던 그녀, 펜을 손에 들고 잘 쓴 책과 형편 없는 책을 오가는 독자로써의 그녀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작가에게 책들을 추천 받는 것은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시간이 모자라 다 읽을 수가 없어서 그렇지.

아마도, 애써 읽을 예정이었던 몇권 다른 책을 돌아다니다간 다시 미세스 달로웨이 등 그녀의 다른 책과 그녀가 '권한' 책들도 하나씩 아껴 찾을 것같다는 예감이다. 시간은 없지만, 빌려다 놓은 산더미를 조금 깎아먹는데로 틈을 만들어 볼 요량이다. 
그녀, 버지니아를 오래오래 함께 붙들어 두고 싶어서. 
그래야 나도, 그녀가 아직 남아있는 '여기'에 더 오래 머무를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도,
가끔은 세상이 넘칠 때가 있으니까.

...

그런의미에서 가끔 살다가 살이가 게을러지려고 하면, 정말 한순간이라도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라는 것, 저렇게 살고 있지 않으면 사는게 아니라는 것을 되새겨주는 연주 두개 추천한다.

먼저 클라우디오 아라우 옹의  연주의 베토벤 소나타 3번
쏟아지는 땀처럼 쏟아지는 열정적인 연주

 https://www.youtube.com/watch?v=ThvKrhqh3fE
그리고


루돌프 설킨 옹의
베토벤 31번 작품번호 110 2악장
저 앙다문 입과 희열로 벌어진 입, 온몸을 들썩이는 연주 모양새를 보라! 귀여워 죽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osUKPNrS4rY


정말 아름답고 멋있다. 앉은자리에서 여러번 봐도 지루하지 않은 연주들.
하루가 달리 꼴도보기 싫게 늙어가는 내 얼굴은 싫지만 저렇게만 늙을 수 있으면 늙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
저런 능력이 없어서 그렇지ㅠㅠ
.


고전 읽기

민간인은 벗겨놓으면 다 똑같고, 제복 입은 사람들은 벗겨놓아야 다 다르다는 표현을 읽은 적이 있다.(내가 웬만하면 quote는 소스를 꼭 다는데 이 말은 애초에 누군가 특정한 사람이 한 말이 아니었고, 두 말이 같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좋아하는 책이 사람마다 다 다른 것 같지만, 결국 많이 읽히는 책들, 필독서들 목록은 결국 비슷해지는 것은, 민간인들과 샤넬을 입으나 시장에서 오천원짜리 떨이로 산 몸뻬를 입으나 목욕탕에 가보면 결국 다 비슷비슷 한 것과 같고,
대개 어떤 책이 좋은 책이라는 것에서는 일반적으로는 동의들을 하지만, 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각각의 숨은 취향은 어쩔 수 없다는 점에서는 제복을 입고 있을 때는 모르는 각각의 개성이 옷을 벗으면 드러나는 때가 있는 것을 보는 것과도 비슷한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다. 

버지니아 울프를 읽으면서 생각한 것들이 있어 고전 읽기에 대한 글을 쓰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제 한 블로그에서 마침, 고전을 읽으면 좋은 장점을 나열하기를,
고전이 백그라운드 지식으로 있어야 비로소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는 현대의 다른 매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항상 리메이크가 되고 있는 좋은 고전 바탕 영화도 항상 새로이 더욱 깊이 즐길 수가 있고,
이러저런 역사도 배우게 되고,
앉은 자리에서 내가 사는 곳과 다른 세상에 대해 열린 시각이 생긴다는 것 등을 들었다.

사실이다. 고전이 고전이 된 이유도 분명히 있고, 과연 찾아서 읽어보면 입이 딱 벌어지는 고전들이 분명이 있어왔다.
그런데, 나는 사람들이, 특히 학자들이나 옛사람들이 소위 명작이라고 기정사실화 하고, 영화로도 다 만들어진 것들은 반드시 한번은 읽어야 한다는 조바심과 함께 어쩐지 동시에 조금 저어하는 마음도 있다.

아무리 슈스케의 신선한 목소리들이 문득문득 사람들을 매혹시켜도, 가수가 목청만 좋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만의 뭔가가 있던가, 노래를 쓸 줄 알든가 참 아티스트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십년이 흐른 후에도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듯이, 고전들은 당연히 시간의 테스트를 이겨낸 작품 자체로서만도 가치가 어느정도는 보장 받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흘러 현대의 입맛과는 다른 것이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지금 읽으면 특별히 공감 자체가 어렵거나, 혹여 내가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만큼 얻지 못하면 똑같은 옷 입은 사람을 만났는데 어쩐지 상대방이 더 예쁜 것처럼 억울 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고전을 꺼려하는 이유는, 언어는 진화를 하다보니 아무래도 사용하는 단어부터가 다르고, 표현등이 고리타분할 수 있고, 티비 쇼도 진화를 하듯이 전체 속도도 좀 느린경향이 있어서 일 것이다. 물론, 입시 문화에서 아직 어려서 가치를 잘 모를 때 필독서라는 이유로 억지로 읽고 별 감흥을 못 받았던 경우의 부작용도 큰 것 같다. 나중에 다시 읽으니 '제인 에어'는 소녀들의 이야기책이 아니었고, 죄와 벌은 law and order 이 아니었으니까. 

여기서 내가 고전이라고 하면, 시간은 흘러흘러 내가 나이를 많이 먹어버린 바람에 내가 태어난 시간 전후의 작가들까지 고전이 되어버렸다는 점을 감안해서, 우리 어려서 강요추천받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나 '노인과 바다'만 고전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신흥고전의 경우  'new classic'이라고 하는데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나 마가렛 앳우드의 '핸드메이즈 테일'같은 것이 그런 예이다.

...

우선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내가 고전들을 읽기전에 긴장하는 이유는 대충 세가지다.

첫째,
뭔가 thesis 가 있어보이는 책들은 순수 문학성만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지에 대해 내가 조금 의심하는 경향이 있다.
조지 오웰의 1984와 곧잘 비유되는 알도스 헉슬리의 brave new world, Edward Bellamy의 Looking backward, 등의 소위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바탕으로 한 각성 소설이나, 인종차별문제를 다룬 Ralph Ellison의 Invisible man, 동성애를 다룬  E.M. Forster의 Maurice 나,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 같은 것들(이것은 고전이라긴 그렇지만 제목이 주는 인상과 달리 필독서에 꼭 들어있는 책이다), 전쟁 배경의, 양철북으로 유명한 칙칙한 독일 작가 군터 그라스의 '쥐와고양이' 등이 그런 책들이다.

미국은 언론의 자유가 매우 중요해서 센서쉽이 약하기 때문에 원하기만 한다면 다양한 문화를 접하기 쉽고, 엉클톰스캐빈이나 탐소여의 모험처럼 민감한 문제를 다룬 고전이나, 표현 방식이 좀 극단적이라 금서논란이 있었던 그런 매체들은 controversial-논란의 여지가 있는-이라고 어느쪽의 입장도 취하지 않는 상태로, 내놓고 오픈된 토론을 하려고 하는 것은 마음에 든다.
일테면 너랑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자, agreeing on disagreeing 인 셈이고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안드는 것이 아니라, 어젠다를 가지고 쓰면 너무 뻔해진다는 것이다.
(소근소근 : 내가 어줍잖은 정치적인 발언은 피하는 편인데 문득 살짝 삼단 뜀틀  넘고 가듯이 말하자면, 하진같은 작가의 중국 사회주의 문화 얘기는 원칙적으로는 민주주의인 우리나와 어쩐지 별로 다른 것 같지 않고 막 와닿는 것은 왜일까.)

부연 설명을 하자면, 나는 동성애 반대주의자도 절대로 아니지만, 괜히 떠들며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는 쪽도 아니다. 이것은 여자임이,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워 할 필요없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냥 여자고 한국인으로 열심히 권리를 찾으며 살면되지 뭐가 자랑스러운가 자랑스럽긴. 쳇. 남자인 것이 자랑스럽고, 암 걸린 것이, 이성애자인 것이 숨길 것도 아니지만 '자랑스러워야' 하는 일도 아니지 않나? 이 자랑스러움이 종종 지지를 강요하기때문에 하는 말이다.

딱히 감정적으로 연계가 안되는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연계를 하려고만 들면야, 직접 경험한 적도 없는 초기 유럽 미국이민자 이야기도(미국 초기 얘기를 다루는 벨바 플레인이나 대륙의 정착사를 다루는 미치너의 이야기에는 꼭 나오지 않을 수 없는 부분), 노예시절 흑인이나 근대 인종차별문제 이야기(토니 모리슨 같은 작가가 대표적이지만 최근의 예로는 안드레아 레비의 Small Island도 좋았다), 인디아 카스트제도 얘기(로힌톤 미스트리의 Fine Balance등의 작품들과 기타 인디아 출신 유명작가로는 줌파 라히리가 있다.)도 마음만 열면 얼마든지 가슴아프게 와닿을 수 있지만, 육류가공공장과 근로자들의 문제에 근원적인 경종을 울린 것으로 유명한 업톤 싱클레어의  The Jungle,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등 은 그 문제를 익히 이해를 하겠는 것과 별개로, 책이 쓰여진 노골적인 의도가 보이는 순간 남들이 아무리 찬사를 아끼지 않아도 녹아들기는 어려웠던 것 같은 이유다.

주제 뿐 아니라 소재도, 막상 내가 가장 연계를 하기 쉬워야 할, 의견 탄압을 위해 책을 태우는 미래의 이야기로 잘 알려진 레이 브래드베리의 화씨 451 (Fahrenheit 451)는, 뻔한 메시지가 영 와닿지를 않았던 반면, 최근 화제작인, 역시 책이 소재인 이야기, 최근 베스트 셀러 마커스 주삭의 book thief 는 -대단한 작품이라기보다는- 책을 마구 읽고 싶게 만드는(책을 읽는 동안 보다 책을 더 읽고 싶어질 수 있다면) 매우 재미있게 읽은 잘 쓰인 책이라고 생각한다는 차이라고나 할까?

둘째,
나는, 헤밍웨이나 피체랄드, 스타인벡 처럼 이른바 전형적인 '그레이트 어메리카니즘 리터리춰'에 대해서는,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나 맨인블랙처럼, 외계인이 찾아와도  당연히 미국대통령을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에 대한 발칙하고 순진한 자만에 대한 반감같은 것도 가지고 있다.
내 취미활동인 스스로 정신 분석을 해보자면, 작품성과 상관없이 등장 인물과 내용 전반으로 초기 어메리칸 정착민들을 조상으로 둔 사람들이 느끼는, 혹은 마땅히 느껴야하는 미국인들의 애국적인 정서에 외국인으로써 동감을 하는 것을 심리적으로 거부하는기가 힘든 것 같다.
천상 외국인이니 이해를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하자니, 위대한 게츠비, 분노의 포도는 한국인들도 번역으로 읽고 있다는 사실이 의아해진다. 모든 번역서가 사실 조금씩 그렇기도 하지만 사실 이런 책들을 한국인들이 사실 왜 읽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해도  세상은 넓고 좋은 책은 많은데 한국인들이 이런 책들을 읽고 미국인들이 얻는 것과 똑같은 것을 얻을 수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순전히 나의 치졸하고 조악한 편견이며 수준미달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칠란트로(고수풀) 없이는 못사는 사람도 있고, 돈 주고 일부러 칠란트로 헤이터 티셔츠를 사입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어떻든 헤밍웨이의 간결하고 독특한 문장의 가치 역시 존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몇권을 읽어보아도, 내 마음에 드는 좋은 책을 읽으면 드는 나의 typical 반응,
either, 달보고 한숨지으며, 나도 이렇게 좋은 글을 쓰고 싶지만 에혀...
or 머리 흔들며 대~~단하다 하하 나는 안되겠구나 애저녁에 접기를 잘했네 하하 아 술땡겨,
하는 그런 느낌은 들지 않는 것은 할 수 없다.
(아마도 이것이 소위 '고전' 공포현상에 조금의 영향을 미쳤는지도...)
순전히 내 취향으로 호세이니나 그래이험 스위프트처럼 문장력만으로 사실은 뻔한 내용이나, 황당한 설정을 구하기에는 모자란 것이 나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남자가 아니라서, 전쟁을 몰라서 그런다고 설명하자니 마이클 온다체의 잉글리쉬 페이션트에 또 한때 중독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것도 아니고,
아마도 내가 현대의 미국 밖에 모르고, 천상 도시 사람이라서 그런가 설명을 해보자니, 조나단 프랜즌이나 리차드 루소 같은 올 아메리칸 작가라는 사람들과도,
미국의 오래된 농촌 풍경이 배경이 되는 토마스 하디나 에디트 와톤
과도 또 쉽게 연계가 되고 하니 정말이지 취향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셋째는, (문득 간단하게 말한다면서 계속 얘기하는 교장선생 훈화같은 수상한 냄새가 나지만 어떻든 세가지 뿐이다)
영어로 심각한 읽기를 시작할 때 쯤에는 좋아하는 작가들이 대개 앤 타일러, 마가렛 앳우드, 애미 탄 등의 여자작가들이었다는 것에서 나름대로의 모종의 죄책감같은 것이 있어서 그런 부분이 있는 것도 같다. 그래서 고전 작가 들 중에서도 매니아들이 있는 제인 오스틴, 브론테 자매, 버지니아 울프, 케이트 쇼팽 같은 경우는 더 미루게 되고 그랬다.
당연히 여자끼리 감흥이 더 쉬울 것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나의 좋은 것을 알아보는 눈에 한계가 있다는 것 같아서 괜히 자존심이 상했었다. 본래 좋아하는 작가나 존경하는 과학자도 개인적으로는 알려고 하지 말라고 하듯이 이번에 버지니아 울프를 마음 먹고 읽기로 한 것도 나름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뭐랄까, 나도 저런 매니아들처럼 좋아하고 싶은데 나는 그녀들이 안 좋으면 어쩌나 이런 개인적인 욕심...?

다니앨 스틸이나 벨바 플래인등의 쉬운 여자작가의 책들이나 읽고 있던 미국생활 초기에도 상상력 면에서는 어디가도 빠지지 않는 스티븐 킹은 물론(1999년에 큰 사고를 당해서 사람이 진지해진건지, 나이가 들어가면서 상상력이 떨어지는 것 같은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로빈쿡이나 마이클 크라이톤, 존 그리샴 등도 읽어대곤 했지만 역시 흥미위주의 쉬운 책들이지 문학작품은 아니었다. 그래서 차후, 본격적으로 읽으면서 베스트 셀러 작가들인 킴 에드워드, 수 몽크 키드,  제랄딘 브룩스보다 존 어빙이나, 제임스 미치너, 마이클 커닝햄, 리차드 루소등이 더 마음에 들었을 때 나름 안도의 한숨을 내 쉰적이 있는 것을 여기서 고백한다.
(뭐 이건 역 커밍아웃도 아니고 나참, 껄껄 -그런데 내가 요즘 미치게 좋아하는 제닛 윈터슨과 아이리스 머독이 여자작가라서 또 멈칫-하지만 팀 로빈슨과 대부분의 내가 좋아하는 정신의학 책을 쓰고 있는 과학자들도 다 남자... 누가 뭐래? ㅠ  )

...

허나,
이렇게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나는 연계할 수 없는 고전들도 있는 반면,
단테의 신곡이나 일리아드/오딧세이는 말할 것도 없고, 실제로 유럽 고전인 세르반테스의 동키호테나, 도스토엡스키, 디킨스 전반, 그리고 고골, 투르게네프 같이, 더 더 오래전의 작품들이고 분량도 끔찍한데도 시종일관 고개를 마구 끄덕여 가며 역시 역시, 거장인 이유가 있구나 하면서 책이 줄어드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재미있게 읽은 고전들도 있었기 때문에  딱히 고전을 못 믿는 이유를 딱 꼬집어 찾기는 나도 힘들다. 

한가지,
무조건 남이 좋다는데 나는 안 좋다고 하면 이상하다는 취급을 '남들에게' 받을까봐 두려워 그러는 것은 아니란 것은 밝혀두고 싶다.
그래도 국방부 시계뿐 아니라 나의 생체시계도 꾸준히 가고 있고, 내가 읽어온 짬밥이 있는데, 나는 '내가' 좋아야지 명작, 고전이라고 하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자체는 두려워 하지 않는다. 내가 무슨 책을 좋아하는가는 순전히 내 취향이라고 믿는다.  처음에 말했듯이 대충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컨세서스는 성립이 되는 편이라 내가 책을 읽을까 말까 결정하는데 '감안'하는 goodreads.com의 별점으로 대충 4/5정도면 읽어도 안전한 것으로 간주할 뿐이지,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떻든 내가 싫으면 싫은 것이고, 누군가의 설명을 듣고 혹 이해가 안 갔던 부분을 이해한다면 모를까 그것을 소위 '전문가', '권위를 가진 사람'이 좋다고 한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좋아할 이유도 없다고 믿는다.

무식하다고 내게 돌을 던져라. 다들 계란 비린내 난다는데도, 나도 가봤는데 맛없더라 소리 하려고 한번은 가 보는 의문스러운 반숙 카스테라집처럼, 남들이 다 가본다고 맛이 보장이 되는 것이 아닌 책들이 틀림없이 있다.

...

내가 틈만나면 도서관을 가서 알콜중독자 술 냄새 맡듯 서가를 누비며 책 냄새를 맡고 다녀 봐야,
도닦는 수도자 산에서 내려온 듯 엊그제도 책이 끝나는데로 불현듯 집을 뛰쳐나가 사십분 걸이 책방에 가서, 사고 싶고, 읽고 싶고, 가지고 싶은 책들을 아무리 쓰다듬어 봐야,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챙겨 들고 온 책들을 보듬고, 끌어 안고 혼자 미친 X 처럼 좋아서 히히거려봐야
결국 몇권 못 읽고 '가야'하는 것을 깨달은 후로부터는 아무 책이나 읽을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일단 '다른 사람들이 좋다는 책'을 찾아 읽을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나의 버지니아 울프도 일기장에 46세가 되니(!) 꼭 읽어야 하는 책만 읽기도 바쁘다고 쓴 바 있다.

그래서,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한권만 손해(?)를 보아도 매우 억울해지는 나로서는, 그동안 많은 실패를 본 것도 같았지만, 지금 이걸 쓰느라고 읽은 순서대로 정리한 기록을(제목이 비슷한 책이나, 워낙 좋아해서 같은 작가의 책을 많이 읽은 경우는 이 책을 읽었는지 아닌지를 보기위해서는 제목을 알파벳 별으로 따로 정리한 노트를 봐야함) 넘겨보노라니 그렇게 까지 실패한 것들이 많지는 않은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중이다.

그러고 보면,
완전고전은 당연히 역사상 유럽쪽이지만,
내가 head over the heal 사랑에 빠져서 그저 두문 불출하고 앉아 한숨을 쉬며 그 사람들 책을 모조리 읽어 버리고 싶지만, 다른 잘 쓴다는 작가의 책들도 한권씩 맛은 보고 죽어야 하겠길래 참고 있을 정도인 작가들은,
신 고전 거장 이탈로 칼비노, 밀란 쿤데라, 가르시아 마르케즈,
현대의 다니엘 페냑이나 조지 페렉, 아이리스 머독
등 유럽작가들인 경우가 많지만,
바바라 킹솔버, 리차드 포드, 조나단 프랜즌 같은 미국 현대작가나
역시 비슷한 듯하면서도 은근히 다른 마가렛 엣우드나 조이스 캐롤 오츠, 앨리스 먼로같은 캐나다 작가들도 좋아하기 때문에,
그리고,  나름 한국으로 번역도 들어가며 세계적으로 잘 나간다는 이완 맥이완, 폴 오스터처럼 영 내게는 껄끄럽고 마음에 안드는 작가도 언제든지 있는 것을 보면
독자의 마음에 들고 안 드는 것은 정말 자기 취향이기 때문에
뭔가 내가 만족할 만한 책을 고르는 데 확실한 규칙은 스스로도 여전히 실상 별로 찾기 힘들고, 그러니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역시 남의 의견에 어느정도 의존해서 열심히 읽어나가는 도리밖에 없는 것 같을 뿐이다. 
그래도, 어떻든 새로운 작가 를 발견할 때마다, 마치 모퉁이를 돌지 않았으면 천생연분을 만나지 못할 뻔했던 양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행복해하는 것으로 얼마든지 참고 노력할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는 일이다
(여기서 새로운 작가란 신인작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려나 세상은 넓고 작가는 많아서 얼마나 오랫동안 잘 알려지고 인정을 받았든지 간에 내게 있어 새로운 작가의 경우다. 별다른 일 없으면 하루 이틀에서 일주일 정도에 하나 읽고 먼저 책과 다음 책의 헤비한 경우에 따라 하루 이틀 쉬는 것으로도 나의 '목표량'을 달성하고 죽을지 장담 할 수 없는 나로써는 소위 인정 받은 책들만 허겁지겁 읽는 것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에, 엣날에 김수철, 시카고 음반 사가지고 와서 턴테이블에 걸어놓고 왕따시 헤드폰을 쓰고앉아 무슨 곡이 인기를 얻을지 미리 점쳐보는 식의 사치는 누리기 힘들다. 언감생심 내가 새로나온 신흥작가의 책을 읽어보고 발견하고 여유를 가질 도리는 없다는 말이다.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한다. 그런데 왜 한숨이 나오냐)

참으로 책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다.
얼핏 잔잔한 것 같지만 개인의 역사와 백그라운드, 다른 시간과 공간이, 작가와 독자가, 등등 참으로 많은 것이 만나는 장이라서, 나같이 상당히 보수적인 사람이 내용이 아니라 문장력만으로도 가르시아 마르케즈, 존 어빙이나 탐로빈스, 재닛 윈터슨 같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거의 변태같은 이야기를 쓰는 작가에게 일방적으로 빠져 허우적거리게도 한다

내가 책을 한권 끝낼 때마다 하루이틀 쉬어야 하는 이유도
비단 눈 쉬고, 밀린 일들 처리하고(책 읽는동안은 아무튼 기본 생존관련 행동말고는 청소도 안하고 빨래도 안하고 아침부터 잠들때까지 루틴의 리듬을 타고 읽는 것 외에는 방해를 최대한으로 안 받는 형태로 하는 것이 원칙이니까), 또 읽는동안 하고 싶었던 이러저런 놀이일들을 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머리를 식히며 먼저 책의 세계을 떠나는 과정이 필요해서 그런 것이고,
또 그래서 새로운 책을 시작할 때마다, 버지니아 울프가 서머하우스로 떠나듯,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는 것처럼(여행정도가 아니다) 약간의 긴장을 하게 하는 것 같다.

이번에 도서관에서 빌려다 쌓아놓고 하나씩 성공적으로 줄어가는 맛에 살고 있는 책더미는 그렇게 오랫동안 미루어온 숙제같은 고전작가들이 유독 많아 마음에 조금 부담이 되면서도, 향학열이 올라 한글을 배우러 나온 국민학교도 제대로 안나온 호떡집 할머니 같은 상기된 마음도 있다. 
이론적으로는 고전과 현대물을 섞어 읽으면 좋은데 현대물을 읽다가 실망을 하면 고전으로 가고, 고전에서 실망을 하면 현대물로 가고 이렇게 되기 때문에 푸코의 진자도 아니고 이랬다 저랬다 도서관에 가는 시기에 따라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로 마침 내가 팔로 하는 영국문화 전문 사이트에서 20세기 영국 필독작가 열한명을, 불문화 사이트에서는 자기네 고전목록을 또 내놓았구나. 으, 한번 읽어보고 싶은 사람들이 또 늘어났다..
   
지금은 미시간 초기 시절 라이브러리안으로부터 권해받았으나 지금까지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어 온 John Fowls의 두껍고 빡빡한 활자의 살인무기형 하드커버 책을 내려놓은 상태기 때문에 준비운동한다고 이런저런 하고 싶은 것 실컷하고, 손가는 요리도 하면서 삼일이나 놀았다. 이제 잠수준비 대충 완료. (이러고는 나중에 또 뭐하나 쓸려고 들어와보면 이미 벌써 과거형이라 시간 여행을 하는 것처럼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더라)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여담 1.
작가들의 이름을 쓰다보니 다시 문득  ranting:  한국 문법학자들은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불현듯, 갑자기, 무슨 연유로, 별안간, 무슨 이데올로기로, 아침밥을 뭘 먹었길래! 성과 이름을 붙이기로 결정하였는가!!

여담 2.
오늘은 유독 옷 비유가 많이 나오는 것이, 하릴없이 늙어가면서 이 봄 젊은 애들 예쁜 옷 입은것이 유독 부럽고 예뻐보이는 것과 잠재의식적인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옛날에는 그냥 좋아보이던 것이 요즘에는 아주 부러워 죽겠다. 본래도 꾸미고 다니지도 않았지만 예쁜 옷을 사입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냥 포기상태다. 옷을 산 것이 도대체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작년에 한국갔을때도 거의 지야 옷만 산 것 같다. 아는 사람은 안다. 젊은 애들 옷을 입혀 보면 나는 옷 살 맛이 떨어진다ㅠ. 젊을때 좀 이쁘게 하고 다닐껄 그랬..다고 생각하니 육십이 되면 지금의 나를 돌아보면서 똑같은 소리를 할까? 당장 뛰어나가 샤랄라 드레스를 사야 하는거 아닌가?

여담 3.
여기서 잠깐 ranting 2 : 역시, 여성운동가라서가 아니라(아니다), 나는, 단순히 말이 안되기 때문에, 먹방마다 사람들이 꼭 "이런 건 여자들이 좋아하는 음식이죠" 할 때마다 경기를 일으키곤 한다. 그런 멍멍이 소리가 어디있는가!! 나는 감자탕과 삼겹살구이가 스파게티와 일식 도시락만큼 좋다. 비주얼만으로는 절대로 뭐든 먹으러 가지 않고,  젊었을때도 커피 맛이 더 중요하지 소위 분위기 좋다는 까페도 별로 의미없었다. 나는 가끔 아삭아삭 샐러드만 밥으로 먹을 수도 있지만 그저, 대충 고기만 많이 넣어주면 맛있고 한동안 고기를 못 먹으면 이가 근질거리는 기본 육식동물이다. 여자사자라고 예쁜 사슴을 더 맛있어 할리는 없지 않는가. 내 주변 사람들의 식성도 성별로는 절대로 구분이 가지 않는다. 내가 알기로는 남자들도 빙수와 떡볶이와 단것을 좋아하고(나는 별로다), 여자들도 양많은 국수집이나 소주와 막창구이와 짜장면을 좋아한다. 아무래도 여자가 예쁜것 좋아한다고? 그럼 음식 사진 찍어올리는 사람들은 다 여자 뿐이고, 남자는 개밥을 말아줘도 맛만 있으면 좋아하겠네!
어떻든 나는 도대체가 무슨 '주의자'가 아니다. 들어봐서 맞으면 니말도 맞고, 니말도 맞고, 왜 아무말이나 다 맞다고 하느냐고 야단치는 부인말도 맞다는 황희정승이라고나 할까)

여담 4.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느닷없이 한국에서 엄빠와 같이 갔던 인천 차이나 타운이 생각나면서 거기서 빼갈한모금과 함께 먹은 짜장면이 급 땡기는 거 뭐지? 어디서 주워서 듣고 있는 ThinGo란 그룹의 fireworks 란 한국 노래에 백그라운드로 거리 소리가 들어가서 그런가보다...인간의 브레인이란 참으로...ㅠ
하여 여기서 또 다시 머릿속 쓰레기 제거용 횡설수설 한 것도 미안한김에 까이꺼 링크 하나  걸고 넘어가자.
https://www.youtube.com/watch?v=RP--dklCjNs&index=878&list=WL )



Friday, April 3, 2015

'제너레이션 갭'이라는 것에 관하여

데프니 듀 모리에의 레베카를 다 읽고, 어떻게 귀신 같이 알고 마침 들어온 심층분석 보고서 네개를 다 쓰는데로 오늘 아침에 대학 도서관 다녀왔다. 빌려온 바이닐들 하나씩(두달동안 내것 ㅎ 그루브가 닳도록 들어야지) 들어보며 그동안 미루어둔, 하고 싶었던 것들 하면서 또 하루 놀다보니 책 전체 줄거리와 상관없이 생각이 밟히는 부분이 있어 문득 한마디.
주인공('레베카'에는 레베카는 죽고 없고, 주인공 '나'는 이름도 없다- 더 이상은 스포일러)이 새신랑의, 눈이 멀고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할머니를 방문 하는 장면이다. 그녀의 주변에는 하녀와 간호사가 상주하며 돌보고 있다. 흔히 그렇듯이 그들은 할머니에게 baby talk(아기에게 하는 말투)를 하고 있다.
주인공은 생각한다.
이 할머니는 처음에 사람들이 그런식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을때는, 이것들이 왜이러나, 내가 좀 나이가 들었다고 바보 취급을 하나 하면서 짜증이 났을 것이고, 그러나 곧 익숙해져서 당연해졌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러고보면 사람들은 아무리 나이가 먹어도 언제나 마음은 청춘이다보니 흔히 어린시절은 얼마전 일로 잘 기억하고 있고, 그야말로 어제같고, 그러다보니 어린 아이들의 마음은 잘도 이해하지만 노인들은 한번도 되어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이해를 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하고.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제너레이션들이 서로를 모두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라, 외려 그 이해가 한 방향으로 나열되어있기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 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아이들은, 
구체적으로는 아니겠지만 막연하나마, 어른들이 다 해본 장사이니 당연히 자신들을 이해하고 욕구를 충족시켜줄 것이라고 기대하기 쉬우니 자기들을 왜 이해를 못하느냐고 쉬이 투정을 부리게 되고, 감사할 줄을 잘 모르며(거의 '철없다'는 것의 정의),
노인들은 
이것들이 나를 이해할 리가 없다는 생각에서, 느이들은 모른다, 내 나이되봐라 소리나 자꾸 하면서 지레 노여움을 잘 타고,
그 사이에서 늙도 젊도 않은 중년들은, 
젊었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해서 요즘아이들은 왜 그러는지 모른다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외려 기억을 잘 하고 있으니 경험상 그보다 나은 길을 아이들이 찾아가기를 바라는 급한 마음에 잔소리나 자꾸 하게 되고, 노인은 되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되 막연한 짐작으로 점점 빨리 흐르는 시간으로 곧 닥치리라는 두려움만 쌓여가니, 이리가도 저리가도 만족을 시키기 어려운 채, 안 그래도 새로운 삶의 시기에 적응하기도 어려우니 살아온 삶의 성취를 누려야 할 나이에 좌절감이 더러 쌓여가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렇게 어영부영 늙어지면 다들 또 결국 아무도 나는 이해못한다는 불만만, 까칠한 배겟닛씌운 배게처럼 끌어안고 돌아눕는 노인들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흔히 '내리사랑'이라는 말로 뭉뚱그려 마치 타고난 덕목같았던 것들은, 알고보면 그저 과거에 대한 제한된 기억으로 인한 제한된 이해로 이루어진 서글픈 하나의 현상임에 불과한 것이었던 것이 아니었나.
뭐 그런생각.
...
어제 잠을 못자서 오늘 컨디션이 그냥저냥이지만 그래도 하루 실컷 놀았으니 또 정신 잃고 산더미처럼 빌려온 책을 또 부지런히 읽어야겠지. 이 놈의 책 욕심이란...
저 책을 다 읽으면 고추가 열리려나, 뒷짐지고 아직 이파리 여섯개씩인 아기 모종들을 기웃거려본다.
좋다. :)

Saturday, March 7, 2015

'바뀜' 과 '나아짐'에 관하여



어느 나라는 안 그렇겠느냐마는, 한국은 내가 좀 아는 나라 중에서 절대 빠지지 않게 늘 '나아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나라다.
비판을 하든, 칭찬을 하든 늘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몇번째로 하는건지, 몇번째로 비싼지, 몇번째로 높은지, 얼마나 많은지 순위를 확인하고,(노동집약적 사업 조선사업이 당당히 1위를 지키고 있지만 조선사업을 하는 나라가 원래  몇 안된다), 다른나라와 비교해서 우울한 사람이 많은 나라라면서 우울해한다.
특히 일본이 뭘 한다고 하면 빚을 내서라도(글자 그대로) 해야하고, 양잿물도 마셔야하고(비유적으로) 전세계와 비교해서 모자라면 아시아 중에서 비교를 해서라도 한자리수 순위를 내야한다. 어른들로도 비교하고 어린이들로도 비교하고, 높이로도 무게로도, 수량로도 질로도, 개도 소도 비교를 한다.

항상 발전을 도모한다는 점에서는 나쁠 것이 없다. 다른 글을 다 쓰고도, 이 글은 막상 정신사나운 메모장만 자꾸 들여다보면서 쉽사리 시작을 못했다는 점을 주목할 때 나도 한국 사람이고, '우리' 들의 이 가멸찬 노력이 가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늘 남보다 앞서고, 나아지려고 하는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교육이나 노동시장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또 다른 날 얘기할, 혹은 얘기 안 할 문제고(나라고 늘 불평만 하고 있는 게 좋은 것이 아니다), 나는 오늘 그 과정, 그 사고 방식 자체의 오류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이른바, 뭔가를 개선하고 바꾸어 나간다는 것이 진정 '나아지는 것'인가 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개선이란 것은 늘 헌것은 버리고 새것을 쫒는다는, 끝나지도 않고 이길 수도 없는 게임이 관련되기 때문이다.

...

최근에 밀란 쿤데라의 '웃음과 망각에 대한 책'(원제 The Book of Laughter and Forgetting)을 읽었다. 밀란 쿤데라는,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러시아의 침공으로 체코에서 망명해 나온 천재 작가다. (천재라는 사랑만큼이나 흔한 상투어를 내가 붙이는 이유는 그의 책을 읽어나가다보면 내가 실제로 번번히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그의 책을 읽을 때는 그의 이런 배경을 생각해보지 않았거나, 그때는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잊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밖에 나와 사는 사람으로써 그의 책을 읽으니 감회가 새로운 부분이 있었다. 그 전에 어디선가 언급한 적이 있는 것도 같은데, 이렇게 나와 사는 사람들은 영어로 자신들을 이민자 immigrants 라는 법적신분을 가리키는 말을 쓰지 않고 exile 이나 expatriate라는 망명자나 추방자라는 말을 종종 쓴다. 모국을 버리고 나와 사는 사람들은 늘 이런 죄책감 더하기 회한같은 느낌을 가지고 사는 것 같아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쿤데라는 실제로 망명자다 보니  체코슬로바키아의 역사적 특성상 국가를 잃어본 사람의 그 감정이 이야기 하나하나에 절절하게 녹아있다.  나처럼 학교다닐 때 역사를 싫어해서 잘 모르는 사람도 체코의 역사를 훑어보면 참 파란만장하다. (그러고 보면 내가 역사와 지리에 약해서-いらっしゃいませ!! 대충 속고 산 부분이, 우리나라가 지정학적 위치때문에 특별히 침략을 자주 받고 그래서 한이 맺힌 민족입네 하는 것이다. 그런 나라는 사실 많이 있다. 그런 나라가 다 한이 맺혔는지도 모르지만 딱히 특별할 것은 없다는 말이다.) 사람이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도 내일 나의 국가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한다는 그의 지적처럼, 조국에 대한 감정은 참으로 오묘한 것이다.

그의 이야기 중에, 등장인물이 자라면서 주소들이 바뀌었지만 그런데 사실은 한 번도 이사를 하지 않았고 거리 이름만 바뀐 것이라는 씁쓸한 이야기가 있었다. 왕조가 바뀌고 오스트리아, 헝가리, 러시아 등의 침공을 받으면서 그때마다 거리 이름이 바뀌곤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문득 최근에 한국의 바뀐 주소들이 생각났다.
물론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다. 일시적으로(!) 불편할지는 모르지만 배달이 간단하게 시스템을 정리된 부분도 물론 있을 것이다. 아파트단지 쪽에는 별로 바뀌지 않은 주소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새로운 큰 거리 이름들은 물론, 주택가에는 갑자기 없는 역사적 근거를 들어, 주로 순 우리말로, 급조된 생경한 거리/골목 이름들이 붙은 주소들이 생겨났던 것이다.
일제시대도 그랬듯이 흔한 식민지 정책이 점령당한 국가의 사람들 이름도 바꾸고, 문화도 바꾸고 하는 법이라지만, 자국에서 자국의 지명 등을 느닷없이 바꾸는 것은 어떻게 생각을 해야하는지 모르겠었다.

물론 길 이름만 바뀌는 것도 아니다.
최근에 월터라는 친구가, 미안하지만 한국의 집권당이름을 까먹었다고 뭐냐고 묻길래, 걱정말라고 자꾸 바뀌어서 나도 모른다고 해준 적이 있었다. (세계기록 좋아하는 한국 이런 거나 한번 체크해보는 것 어떤가 싶다.물론 온두라스처럼 '더' 부패한 국가도, 아프리카의 나라들처럼 정신 못차리는 '나라'도 많이 있지만 말이다 ) 입시제도 얘기는 건드리지도 말고(건드렸구나), 당이름도, 정부기관이름도, 전공이름도, 회사이름만 봐도 심심하면 한번씩 바꾼다.

그리고 그 바뀌는 것들은 대개 실속 없이 내용은 없이 이름/ 껍데기 뿐인 경우가 많다.(이건 우연의 여담인데, 2005년에 한국가서 옛날에 나 살던 마포에 다시 가보니 2002 월드컵때문에 길을 넓히느라고 공사를 하는데 새로 건물을 헐고 다 다시 짓자니 보상도 크고, 시간도 많이 들고 하니 건물들을 죄다 앞면 얼굴만 깎아서 그걸 도로 막아가지고 건물을 메꾸고 길을 넓힌 적이 있었더라)

모름지기 사람이나 어떤 단체가 뭘 혁신, 쇄신한답시고 이름을 바꿀때는 뭔가 과거에 불미스러운 것을 잊게 하려고 하거나, 현재 잘 통하지 않는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고 새로 시작하는 분위기를 나게 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물론 이것이 한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최근에 도미노 피자는 간판에서 '피자'를 제거하고 샌드위치와 닭요리등을 판매하겠다고 나섰고, 얼마전에는 Radio-shack에서도 전국적으로 매장의 디자인을 바꾸겠다고 선언하고 나섰었다. 둘 다 현재 잘 안 풀리고 있는 기업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맨들도 가끔 한번씩 이름을 바꾸겠다고 나설 때는 그전에 뭔가 마음에 안드는 것이 있었기 때문인 경우가 대다수다.

한국은 이렇게, 미래를 지향한다는 명목하에 이렇게 자꾸만 과거의 흔적을 지우려는 경향을 보인다. 돌아보아서는 안된다고, 과거에 살아서는 안된다고, 그것이 진보인 양 말한다. 하지만 미래에 사는 것 또한 덧없기는 매한가지이다.
게다가, 유럽내에서도 국가마다가 다르고, 그들과 미국은 시스템이 전혀 다른데, 말끝마다 '선진국은', '선진국의 경우는' 하면서 말하는 사람의 콘셉따라, 경우따라 이 '선진국'이 유럽도 되었다가 미국도 되었다가 하면서 편리하게 바뀌고, 게다가 그렇게 '따라잡는'것을 좋아해서 도통 앞서 나가면서 스스로 길을 열 생각은 안하고, 남들 잘 하는 거 보고 있다가 잘 되는 모델 '베껴 따라갈' 궁리만 하나보다. 몇년전 이코노미스트지
에서도 그동안 따라다니면서 잘 배워 성공한 한국이 이제는 앞장서서 나아가야 할 때라고 지적한 바 있었
다.

인간은 거의 본능적으로 자신의 삶에 voice를, narration을  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 자신의 삶을 직접 살면서도  픽션처럼 하나의 역사를 가진, 스토리로 바라보는 것이다. 우연과 불합리와, 이해가 가지 않는 실제 세상을 '말이 되도록' 스스로가 이해하려고 하는 시도이며 이런 이유에서 사람들은 말하자면 '꾸며낸' 이야기들을 쓰고 읽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소망을 말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소망만 말하지 않고, '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에 돌아보면서 웃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를 잘 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마디로 말해 이런 날은 잘 오지 않는다. 
내말은, 그런 날이 올 수는 있는데, 그런 날이 실제로 오면, 돌아보면서 웃지를 않고 다른 목표를 향해 다시 부질없이 움직여 가고 있다고 볼 수가 있다.
'지금 내가 아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터득한 지혜라는 측면에서) 이라는 후회도 소용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알았더라도 아마 많이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불행이도 나중에 잘못된 결정으로 나타났을지 모르지만, 대충 바람직한 '지혜'만으로는 그 당시에 확실하지 않은 것을 걸고 뜻밖의 결정을 했을리는 없고, 누구나 일반적으로 바람직한 결정을 순간적으로 최대한 잘 하려고 하면서 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트윗을 가만히 지켜보면 정부를 비판하는 시각은 거의 무차별적으로 보일정도로 격렬하지만 사실은 국민들도 많이 다르지 않다. 미국은(미국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비교하는 중이다. 그냥 다르다고) 단기적으로 마음먹고 세상을 둘러보는 것이라면 모를까 여름에는 매년 같은 lake house(일종의 별장 같은 곳인데, 그렇게 화려할 것은 없이, dry cabin이라고 불리는 전기나 상하수도 시설이 없기도 한 통나무집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미국에는 더러 있다. 가격도 싸고 화장실은 푸세식, 물은 물탱크에 채워놓고 쓰는 곳이다. 여름에 쓰는 곳이니 냉난방은 자연으로 해결한다.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도 있으니 사실은 한번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같은 곳으로 피서를 가는 것이 일반적인 반면 한국사람들은 늘 새로운 곳에 가야 한다. 그냥 가기만 해서는 물론 안된다. 나 거기 다녀왔다고 인증을 해야한다. 장소도 유행이 있어서 몇년전에는 다들 안가면 간첩이던 그곳에 '뒤늦게'(무엇에 늦었던지 간에) 가면 촌스러운 것이 된다. 다들 가는 새로운 그곳에 꼭 나도 가야한다.
ritual이라는 것은 흔히 종교적 의식에 쓰는 말이지만, 여러사람이 함께 같은 행위를 반복해서 함으로써 가지는 평안함을 찾는 어떤 일반적인 의식 또한 가리키는 말로 쓰일 수 있다. 그렇게 사는 것의 메릿을 알고보니 이 리추얼의 가치를 아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늘 남들 가는, 그 유명한 것, 새로운 그 무엇을 배우고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익숙하고 편안한 것의 가치를 아는 것도 기억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현재를 살라'는 말은 하도 되풀이 되어서 그 말이 주는 신선한 느낌이 전혀 없는 식상한 말이 되었다. 쓸데없는 기억을 많이도 가지고 있다는 나도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래서 과거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한다.
이전의 블로그를 버리기 전 마지막으로 쓴 글에, 내가 그때도 어떤 책을 읽고 '과거에 희망을 가진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얼핏 역설적인 것 같은 이 말은, 미래에 나를 결정하는 것은 현재의 나이기도 하지만 당연히 과거의 나이기도 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가 Somewhere in my youth or childhood, I must have done something good 어렸을때 내가 뭔가 잘 한 일이 있었나봐요(이렇게 당신을 만나 사랑에 빠지다니)이라고 노래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쿤데라는(그리고 역사의 이런 아이러닉한 점을 지적한 사람은 많다-기본적으로 대충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진다'는 말은 여러버전으로 동서고금에 존재하는 근진리다) 개인이든 국가이든 힘을 가지려는 사람들은 얼핏 미래를 좌지우지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과거를 바꾸려는 힘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지적한다.
스티븐 핑커도 그의 최신작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에서, 통계숫자 상 전쟁도 줄고, 질병도 줄고, 불의도 줄어드는 등 인간이 어떻든 '나아지'고는 있지만(그것이 사실상 책의 주제다), 역사의 실수로부터 우리가 정말 잘 배웠다면 전쟁이라는 것은 지구상에서 아주 없어졌어야 한다는 점을 말했듯이, 나약한 인간에게 있어 과거의 실수를 덮는 방법은 그야말로 과거를 내 마음대로 꾸며내는 방법, 역사를 새로 쓰는 방법 밖에는 없고 그것이 힘을 가지려고 하는 이유인 것이다. 

한국의 정치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실제로 과거로부터 배울 생각은 하지 않고, 흔히 우격다짐으로 내 마음에 맞는 역사를 쓸 궁리들만 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에는 역사적인 가치를 몰라서 건물이며 국보급 보물들을 훼손했다고 치더라도, 여전히 무엇무엇 명승지(?)으로 지정된다는데 국가적으로 사기나 당하고, 남들이 훌륭하다고 해야만 뒤늦게 그 가치를 알아보는 것은 여전하고, 옥새는 누구 집 안방에 놓였는지 다 사라지고 없고, 현정권 잡은 사람들의 입맛대로 이런저런 '사업'으로 자꾸만 '변화'가 진행 중에 있나보다. 항상 한번씩 한국에 가보면 이런 저런 새로운 것들로 서울만 보아도 몰라보게 바뀌어있고 다들 그것들을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끊임없이 개선될 것은 개선해나간다는 것은 문제가 없다. 아니, 마땅히 해야 할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무엇을, 왜, 바꾸는지는 이따금 멈추고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막연히 기억하는 것과, 기린다는 것도 다르고, 후회하는 것과 회고하는 것도 다른데 말이다. 한국이 한계령도 아니고 왜 국민들에게 항상, 잊으라 잊어버려라 하고,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는지 나는 그걸 모르겠다.

...

많은 사람들이 평생을 다른 사람들 처럼 되려고 노력하면서 산다. 하지만 살아갈수록 우리가 바뀌고 안 바뀌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와 비교해서는 누구도, 언제든, 어떻게 해서도 만족할 수가 없다.
쿤데라는, 다른 나라 밑에 있는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나을 가망이 희박한 병을 가지고 일단 상아가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옛날에 반장 부반장(기분이다. 아쉬운대로 꽈대나 회장도 포함시켜주자) 한번 안 한 사람없는데 자랑질 지루하게도 만날천날 옛날에 금송아지 있던 시절을 자랑하자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지만, 흙다시 만져보던 감흥은 다 잊고, 한 국가와 그 국민들이 자국과 스스로의 역사를 모두 부인하고 자꾸만 껍데기만 새로 다시 태어나고 싶기만 할 때는 뭔가 문제가 있다.

그래서 밖에서 조국을 바라보노라면, 과연, 무조건 껍데기를 '바꾸어 나간다'는 것이 '나아진다'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한국은,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인지 모를 꽃단장은 자꾸 하되 정작 '여성(의 권리 아니고)에 대한 시각자체'나 '허례허식' 등 바뀔것은 안 바뀌는 채, 분칠한 퇴기처럼 방문할 때마다 생경한 곳이 되어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

이것으로 책 끝난 기념 한 차례 끄적이기 마무리하고, 내일 부지런히 보고서 하나 반나절 쓰고 나면, 새로 장만한 그레파이트로 표정연구 프로젝트를 할 예정이다.
책이 마침 끝난 것은 다행이지만 하루종일 한가로운 토요일 중 그 반나절을 보고서 따위에 써야 하다니 좀 억울한데, 뭐 가끔 돈도 좀 벌어야 또 쓰지 하는 중. 더구나 요즘은 펜 그림에 또 꽂혀서 지금 잉크 몇병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또 고민 중이니 ㅎ
그렇게 쉬고 나면, 먼저 일주일이 꼬박 걸린 책이 좀 무거웠어서 이번에는 조금 가벼운 책으로 다시 시작할 생각인데 독일어를 번역한 책이라 어떨지 모르겠다. 먼저 책도 그랬지만 유럽 쪽 책들은 대개 영국에서 영국 영어로 번역이 되어 있어서 또 다른 어려움이 이중이다.
그리고 나서 다시 책이 끝나면, 지난 주말에 드디어 파스텔 픽세이티브를 사왔으니 먼저 시작한 파스텔 프로젝트를 마무리 할지, 아니면 펜 디테일 스터디를 먼저 할지 모르겠다. 그 때 가서 살살 느껴보고 결정하기로 :)
머리속에서 맴도는 네가지 생각이 아직 정리가 안되서 일단 오늘 이렇게 쏟아놓고나면 이 끄적이기도, 이제 언제나 다시 시작할지 잘 모르겠다. '미국의 문제점 연재'는 언제 재개 하는거냐...

어떻든, 오늘의 책씻이 기념 비디오는,
니콜라이 루간스키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콘체르토 no. 3 1st mvt
Ashkenazy의 연주 바이닐 음반을 지금 두 주 째 틈만 나면 듣고 있는데 질리지를 않는다. 요 1악장 알레그로가 특히 좋다. :)
유툽에는 아쉬케나지 것은 연주 장면이 없어서 요즘 안 그래도 인기 좋은 니콜라이 루간스키것으로 올린다. https://www.youtube.com/watch?v=HwDYWwWGKAw&index=567&list=WL
일껏 예술에 이런 소리하는 것을 혹자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사람이 피아노를 열정적으로 연주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피아노 '치는' 것도 보통 힘으로는 안되겠다, 밥 많이 먹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당연한 말이지만 참 쉬운 일은 없다 싶다.




그리움의 색깔

내가 한국을 그리워 한다고 하면 흔히 한국사람들은
족보 애매한 북촌 한옥마을,
썪어가는 전주 한옥식당가,
국적불명 소위 퓨전한식집을 가 볼 만한 곳으로 내어 놓는다.

하지만 내가 그리워 하는 것은,

건강에 해로울지 몰라도 약간은 그림도 더러 벗겨진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짜장면을, 찰칵찰칵 소독저로 비비는 찰진 소리,(좋은 젓가락이나 근사한 그릇 사절)
한여름 저녁 아스파트 식는 매캐한 냄새
동이 트면서 아직 더위가 미처 시작하기 전, 하지만 살같에 엷게 덮이는, 더위를 예고하는 수분들, 거의 무게가 느껴지는 습도,
버스 뒤 꽁무니에서 나는, 느닷없는 철썩, 김 빠지는 소리,
가족들이 모여 앉은 상에서 들리는 달가닥 거리는 수저, 밥상에 옮겨다니는 그릇소리,
인도에 툭툭, 텅텅 울리는 이른 아침 출근길 구둣발 소리,
비오는 밤, 불빛이 반사되는 검은 찻길에 차 연달아 지나가는 소리,
고가도로 밑에서 보이는 얼룩진 시멘트 아랫배,
어스름 저녁, 모퉁이를 돌아들어가는 차의 빨간 후미등,
군인들이나 고딩들은 지겹다고 할, 수련회나 수학여행의 약간은 탄내가 묻은 찐쌀밥과 밍밍한 북어국 냄새,
껍질이 더러 벗겨지고 볼펜 낙서가 있는 버스 비니루 의자 커버
전철이 츨발할 때 나는, 찌~~~~~ 우우우우우우우우웅~~~~~ 소리


이런것들을 적으면서 문득 눈물이 나는 나를,
이런 나를 알면,
감히 나의 삶을 안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살지마라 조언을 해도 좋다.
고개 숙여 들으리라 .

그래도
무엇을 그리워 해야하는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보다는 내가 낫지 하고 억지로 위안하며 산다.


'살'에 관하여

라커룸에 한 발자욱 들어서는 순간 일순, 절로 제자리에 우뚝 설뻔 했다.

캐비넷들 사이에 놓인 2미터가 채 못되는 쇠 벤치위에, 정말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전신나체의 여인 하나가 아주 단아하고도 푸짐하고 여유롭게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딘가 틀림없이 존재하고 있을 내부의 신체 해부학적 지형지물의 증거는 찾아보기 힘들게 허연 살덩어리가 벤치위에 켜켜히 두루뭉술하게 쌓여있는 것 같은 형태의 그녀는, 금방 씻고 나왔는지 어딘가 안흥찐빵처럼 김까지 무럭무럭 나고 있는 것 같았고, 얼핏 고스트버스터에 나오는 마시멜로우 고스트를 연상케도 하고, 미쉐린 타이어 마스코트를 떠올리게도 했다.

같은 동양이라도 한국/일본/중국의 목욕문화 차이도 존재하듯이, 미국의 대중목욕문화는 당연히 우리와 다르다. 흔히 한국 목욕탕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이 한국 목욕탕에 와서 당황하듯이, 여태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밖에서는 평상시는 노출수위가 한국에 비해 높은 미국인들도 수영장에서는 옷 갈아 입는 사람들이 벗고 활개치고 돌아다니지는 않고, 샤워도 칸막이가 없는 곳에서는 수영복 입은 채로 대충 물만 끼얹고 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무래도 운동복도 갈아입고 운동 후 샤워도 하는 여자끼리의 라커룸이니까 나체 자체가 딱히 문제는 당연히 아니었다. 그리고, 세상은 넓고 먹고 싶은 것도 많은데 내가 앞날을 어찌알고 현재 누가 우연히 살이 조금 넉넉하다고 해서 치사하게 딱히 오늘 그걸 비난하자는 것도 아니다. Straight 인 사람으로써 동성끼리 이런 모습을 문득 맞닥드리는 것에 새삼스레 뭐 앗 누드다, 어머 야하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그저, 마치 나이아가라 폭포라도 보는 듯이, 자연적 현상의 경이를  목격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아, 그 말로만 듣던 것이 실제로 보면 바로 저런 모습이구나 뭐 이런...(전혀 아이러니 없이 정색으로 말하고 있음)

그러나, 무엇보다 실용적인 이유의 문제는 단순히, 이런 사람일수록(그 이후로도 비슷한 일이 한번씩 발생했음) 주변을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꼭, 한 쪽도 아니고 벤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앉아 도대체 뭘 하는지 오랫동안 꿈쩍을 하지 않기 때문에, 양쪽에 나같은 사람이 엉덩이 살짝 걸치고 앉아 바지하나를 갈아 입을 자리도 안 나게 된다.(*이 글을 마지막 에디팅 하고 있는 현재는 날씨가 많이 푸근해져서 반바지를 집에서부터 입고 가기 때문에 이 부분이 많이 수월해졌다)

어떻든, 마침 나처럼 할 수 없이 서서 바지를 꿰느라고, 손이가요 손이가 자꾸만 손이가는 새우깡 재료처럼 꼬부랑 깡충거리고 있는 다른 한 여인과 그녀 주변을 맴돌며 준비를 하고 있노라니, 무라까미 하루끼의  Hard-Boiled Wonderland and the End of the World 에 나오는  비중있는 조연이지만 이름도 없이 그저 '뚱뚱한 소녀' 인 캐릭터 생각도,  미야자끼 감독의 千と千尋の神隠し(せんとちひろのかみかくし센또  치히로노  카미카쿠시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영어 제목: Spirited Away)에 나오는, 해태처럼 아무거나 먹어치우며 두루뭉술하게 커져버린 괴물도 생각나고,  내가 너무 오래 한국 목욕탕에 안 갔나보다 이런걸로 놀래다니(찜방/목욕탕 가면 어지러워서 즐기지 않음 ㅠ 그러고보니 찜방 간지 10년됐나?) 하는 생각 등, 아무튼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 하는 가운데, 막상 그녀 본인은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손이나 다른 어떤 것으로든 가리려 하거나 서두르는 기색도 전혀 없이, 아주 천천히 시간을 들여, 옷을 입는다기 보다, 이런저런 옷가지에다 살을 다 누르고 달래고 이끌어 들여보내는데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느닷없는 이제이 영어 한마디 시간 : 옷을 안 입고 있는 것을 영어로, in one's birthday suit이라고 한다. 얼핏 생일 파티라도 해서 화려하게 챙겨입었다는 말인 것 같지만, 태어났을 때 아무것도 안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법 흔하게 쓰인다. 노골적인 naked 라는 말보다 덜 자극적이어서 그런 것 같다.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나체'라는 것을 강조하는, 홀딱 벗었다는 말은 어원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buck naked 라고 하고 최근에는 엉덩이를 가리키는 butt을 쓴 butt naked 라는 말로도 진화중이다. )

...

그동안 나름대로 운동은 꾸준히 해왔지만, 작년 11월말에 이런저런 계기로 내가 처음 gym을 등록했을 때는, 미국사람들의 평균 비만도 감안(현재CDC 통계상 미국의 20세 이상 과체중자는 69퍼센트에 달한다-소아비만까지 더하면 더 심하다), 생각보다 왜소할 정도로 날씬한 사람들이 많아서 놀랬었다. 
아무리 동양인도 이제 많이 비만해졌다고 하지만, 미국사람들(특히 경제 하류층)에 대면 한국 웬만한 사람들은 깜찍하게 통통한 것에 불과하다. 게다가 밀리언년 후 외계인에 의해 샤킬오닐과 나의 해골이 나란히 발굴이 되면 다른 종으로 분류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할 정도로 동양인들은 평균 골격자체가 아무래도 작다. 
그러나 특히 내가 크지 않은 편인데도, 운동하느라고 왔다갔다 하면서 한쪽 벽을 차지하는 거울로 얼핏 보아도, 내가 비교적으로 절대로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다들 남녀노소 매우 체격적으로 날렵하고 단단하게 생긴 사람들이어서, 이거 방심하면 안되겠다, 지금부터 꾸준히 관리하자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었었다. 

물론 주로 연초에 반짝 붐비는 곳의 하나가 체육관이라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연말에 보신각종 소리나 들어보려고 평소에는 보지도 않는 한국뉴스를 하나 찾아 보니, 한국사람들 연초 소원/결심이라는 것이 1.2.3위가 외국어배우기, 외국여행, 책 읽기  등이라서, 뭬야 느이들 내가 그리 부러운거야? 하고 으핫핫 '혼자' 웃었지만, 이 소원/결심이라는 것이 무릇 잘 안 이루어지는 것이라서 계획이 아니라 소원/결심이라 불리는 것을 감안하면 내가 왜 재한국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불로초를 구하러다닌 진시황은 아니더라도 동서고금으로 다들 본능적으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을  것이다보니, 연초 결심 순위에 들어가는 또 하나가 다이어트나/운동(다이어트는 식단조절, 운동은 운동 : 피트니스, 카디오, 엑서사이즈)이다. 따라서 미국인들도 크리스마스에 선물도 짐 사용권등을 주고 받고, 다들 굳은/물렁한 신년의 결심들을 하고 대략 크리스마스 칠면조가 소화되는데로 일단 다들 짐으로 기어 달려 나오곤 하는 것이다. 
솜씨없는 목공이 연장 탓한다고 짐이 아니면 운동을 못한다고 생각하며 차 타고, 에스컬레이터타고, 엘리베이터타고 짐에가서 스테퍼하는 것 자체는 그냥 눈감아 주자. 

그래서, 연초가 되면  곧 사람들이 더 많아지리라고 생각하고 마음의 각오를 하고는 있었긴 하다. 실제로, 연초부터 예상했던데로 파킹 스페이스 도 부족하기 시작했고, 운동기구가 모자랄 정도로는 아니었지만 제법 사람들이 넉넉히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런데, 실제로 살을 조금 없애는 것이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바람직할 것으로(!) 사료되는 사람들도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부분도, 그리고 운동을 하러오는 사람이 다 운동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생각 못 했던일이었다고 하겠다. 

물론 어떤 계기로든 대단한 각오를 하고 확실히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현재의 몸 상태가 대충 그동안의 생활방식을 보여주는 것이 사실이어서, 이런 여분의 일용할 양식이 몸에 축적되어 있는 사람들은 드디어 무슨 동기에서든 짐에까지 도착을 해서도 주로 라커룸에서 여기저기 편한 의자에 펑퍼짐하게 앉아 스맛폰을 들여다보거나, 마사지 체어나 태닝머신만 즐기거나, 운동을 하러 나가서도 트레드밀에 올라가 낮은 속도로 어슬렁어슬렁거리고 있고, 웨이트 트레이닝은 힘드니까(!) 잘 안하고 그러는 경향이 있다. 

달초에 한번 저녁 때 피자주는 날은 사람들이 물론 더 많이 온다. 
술만 없었지 거의 파티분위기다.  야참으로 그렇게 피자 가볍게 두쪽 먹으면(보통 라지 하나를 여섯쪽으로 가르면 한쪽이 300칼로리) 웬만한 운동 조금 한 거 아무 소용이 없을텐데 싶지만, 어떻든 이런 사람들은 그래놓고 운동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기만할 것이다. 이 전국체인인 짐이 인테리어를 럭셔리하게 유지하고 이렇게 피자나잇을 여는 이유도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한달에 한번 와서 마사지 체어에 앉아 피자만 먹고 가면서도 뭔가 짐으로부터 얻은 것이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운동도 하지 않으면서 다시 등록 갱신하도록 만들려는 것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사람이 적게 와야 관리비가 적게 드니, 짐은 등록한 사람이 많이 오지 않을 수록 좋다는 경영의 모순이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저런 사람들을 보아도 자극이 되는 부분이 있다. 자연히, 나는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메타볼리즘은 나이가 들수록 계속 떨어져, 계속 똑같이 먹던데로 먹으면 일년에 평균 일파운드씩 몸무게가 늘게 되어있다고 하는데, 나같은 사람은 졸지에 워낙 기본 무게가 많지 않아서 내 몸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칼로리 양이 상당히 적다는 것이 걸림돌이긴 하다. 
작년까지 자고 일어나면 몸무게 푹푹 줄어 큰병인가 걱정한 적도 있는 내가 얄팍하게 딱히 살을 빼자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거울보기 무섭게(실제로 피치못할 사정!이 있지 않으면 안 보고 있음) 하루가 달리 덧없이 늙어가는데(무서워서 귀도 못뚫은 내가 칼은 못 대겠고, 중력이 없는 달나라에 가서 살기라도 해야하겠..지만 그러면 또 뼈의 밀도가 떨어지는 등 부작용이 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하기로.) 없는 '몸매 유지'하자는 것도 아니라ㅠ, 우리 엄마쪽에 stroke이 두분, 아빠쪽에 한분이 계시기 때문에, 살이 너무 많이 붙는 것은 좋지 않으니, 몸이 기능을 다 하도록 먹고도 남아돌아 두덕두덕 몸에 쌓이지 않도록 하는 양을 말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죽으면 다행이지, 반신불수가 되거나 여기저기 자꾸 아파서 남들에게 짐이 되면서 무책임하게 살아가고 싶지는 않은 게 다다.  

완전 게을러족보단 낫지만 역시 왜 오는지 잘 모르겠는 사람들도 있다. 
체격이나 나이 대비 한계에 한참 못 미치는 속도의 운동을 하며 전방 콘솔들에 있는 스포츠경기에 정신만 팔리거나, 운동 중간중간에 앉아 스맛폰을 들여다보며 괜히 운동기구 자리를 차지하고 있거나, 매트에 친구와 나란히 누워 프로틴드링크를 즐기며 노닥거리거나, 몸매를 자랑하러 왔는지 주로 몸매를 드러내는 옷을 예쁘게 잘 갖추어입고 전방에 사람들이 보기 쉬운 운동기구 근처에서 이런저런 운동기구들을 가볍게 만지작거리며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다. 맨 마지막 부류는 운동하면서도 실상 운동에는 관심이 없고 거울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어있다.(눈치챘겠지만 순전히 부러워서 하는 말이다)

운동을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물론 거의 중독자같은 사람들은 또 다른 문제가 약간 있어보이긴 하다. 
나보다 한 열살은 많아보이는 여자 하나는, 거의 짐에 와서 사는 것 같은 것이, 이런저런일로 시간을 바꾸어 가며 가도 거의 항상 만날 수 있는데다, 일립티칼하다 마사지 췌어에 앉아 조금 쉬다가 또 스테퍼하는 식이고, 덤벨도 근육질 남자들이 하는 수준의 무게를 들었다 놨다 한다. 살도 없고, 몸집도 별로 안 큰 여자라서 남자들처럼 울퉁불퉁한 그런 근육이 아니고 등위에, 팔에 아름다운 잔근육이 뱀들처럼 뼈들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 보여 보기 좋기는 하다. 
흔히 한국 사람들은 여자가 근육이 있다고 하면 조혜련이나 개콘의 근육질 개그우먼같은 모습을 상상하는데, 그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워낙 타고난 몸이 다부지게 생겨서 그런 것 뿐이다. 남자도 일껏 근육 붙였더니 캘빈클라인 향수모델이 아니라 이승윤이 되어버리는 사람이 있듯이, 여자도 마찬가지로 근육이 예쁘게 붙도록 태어난 몸매가 있다.(물론 근육을 그렇게 무거울 정도로 붙이려면 그냥 운동만 해서는 안되고 프로틴 드링크를 먹고 근육 붙이는 약도 먹어야 하지만 이 약이 또 위장에 안좋다고 하더라) 
여자도 군살없이 근육 잘 붙으면 정말 그 선이 아름답다. 많은 사람들이 여자 몸의 미를 논할때 둥근 곡선에 관심이 많은데, 실제로 사람 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곡선보다는 뼈가 적당히 드러나 있는 부분, 예를 들어 쇄골(흔히 미인뼈라고 하는)이나 견갑골(등뒤의 세모진 날개뼈), 발목 안쪽의 푸른 정맥이 흘러지나가는 근육과 뼈가 맞대어 있는 부분, 어깨와 팔 사이의 둥근 관절들이 대리석조각처럼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또, 신기하게 운동한 흔적이 전혀 안 남는 사람들도 있다. 역시 나보다 나이 많아보이는(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거울 본지가 오래되서 나보다 어릴지도ㅠ)아주머니 하나는  다음 운동기구로 옮겨간 다음 보면 나의 조촐한 25-40파운드 덤벨이 무색하게 250파운드를 들었다놨다 한 흔적이 있는데, 머리에 테니스 헤드 밴드까지 두르고 짐과 집을 오가는 길에 한끼씩을 더 드시는지 넉넉한 살집에는 항상 변함이 없어 보인다. 


...

혹여, 건강을 위한 운동도 좋지만 일단 확실히 몸무게를 줄이는 것이 목적인 당신, 기본 원칙은 안타깝게도(!) 운동만 해도, 덜 먹기만 해도 안 되고 둘 다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잠깐 운동이야기 외에 식단조절(다이어트)도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운동하는 것 외에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서는 영양의 균형을 갖춘 식단을 유지하...기가 사실 상당히 어렵다! 일단 빼고 봐야하니, 몸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아쉬운데로 영양제나 챙겨먹고 일단 무게를 줄이는 데 전념하도록 한다. 
살이 남는다는 것은 간단하게 말해 이미 영양가가 남아돈다는 이야긴데, 한 두달 만에 골다공증 생겨 변기에 앉다가 뼈 자끈동 사태가 일어... 날 정도로 안 먹을 자신도 없을 거 아닌가? 
단, 프로틴을 전혀 섭취하지 않으면 심장등 무작위로 근육에서 뽑아쓰기 때문에 단백질은 반드시 섭취하도록 하고, 탄수화물을 전혀 섭취하지 않으면 특히 여성의 경우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고 하니 감안하도록 한다. 

참고로, 섭취하면 '소모'되는 순서는 탄수화물과 알콜이 제일 먼저고, 그 다음이 지방이고 프로틴이라고 한다. 프로틴은 주로 에너지음식이라기보다는 근육을 만드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하나라도 섭취하지 않으면 다른 쪽에서 끌어다 쓰기 때문에 칼로리 측면에서만 보면 사실 좋은 칼로리 나쁜 칼로리가 따로 없다고 보면 된다. 사과하나나 오레오 쿠키 하나나 같은 칼로리이고 너무 많이 먹으면 몸에 쌓이는 것은 매한가지다. 그냥 소모 순서 문제고, 칼로리 외에 비타민이나 미네랄 등 다른 좋은 것이 같이 얼마나 들어있는가, 그리고 그램당 칼로기가 다르기때문에 오는 같은 량 대비 포만감의 문제다. 포만감으로만 생각하면 야채나 프로틴을 먹는 것이 지방이나 탄수화물을 먹는 것보다 만족도가 높게 된다. 

허나, 여기도 함정은 있다. 물론 약간의 개인차가 있겠지만, 인간은 본래 현대인처럼 쉽게 고칼로리를 섭취하면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기회만 닿으면 고칼로리 음식을 선호해서 몸에 실제로 축적을 하려고 하도록 프로그램 되어있다. 수렵 채집 시절부터 본능적으로 단것이나 지방이 들은 음식을 좋아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음식을 먹으면 포만감은 적을지 모르지만 뇌에서 도파민같은 기분 좋으면 나오는 물질이 분비되는 것으로 포상을 하게 되어있다. 이 잔재로 인해 현대에서는 필요없는, 심지어 해가 되는 고칼로리 음식들을 추구하게 된다. 
애개, 나는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걸 이라고 말하는 당신, 혹 빵돌이 빵순이, 혹은 주당이 아닌가 한번 생각해보라. 빵과 설탕, 알콜은 무늬만 다른 실상은 같은 물건이다. 

별로 그렇게 '지나치게' 오래 살고 싶은 사람도 없겠지만(있나?), 우리보다도 더 장수국가인 일본인들은 소식으로 유명한데, 이 노친네들이 모두 영양실조로 비틀거린다거나 아침저녁으로 지진날때마다 뼈가 부러져가면서 살지는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고 마음을 편하게 먹도록 하자. 
오히려 지방이나 탄수화물 안 먹고 단백질만 먹는다고 닭가슴살과 벨페퍼(파프리카는 피망 혹은 bell pepper에서 만들어진 '향신료'를 가리키는 말인데 한국에서는 웬지 벨페퍼를 파프리카라고 하더라.)만 먹고 있는 것이 더 문제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한국에서 흔히 황제다이어트라고 하는 앳킨 다이어트는 탄수화물을 조금이라도 먹지 말아야지 조금이라도 먹는 순간 포인트가 없어지는데 말이 그렇지 탄수화물을 전혀 안 먹기는 힘들다.(이 골다공증도 고지혈증이나 혈압처럼 나이들면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을 약 팔아먹으려고 질병화 시킨 것 중의 하나인데... 이 또한 다른 날 따로 할 얘기다.)
기본적으로 균형을 갖추고 싶으면, 적은 양이라도 그냥 알록달록하게 먹으면 된다. 영양소는 각각의 색이 다 있기 때문에 식탁이 알록달록 하면 골고루 먹는다고 보면 된다. 가령 고기만 구워먹으면 당연히 색이 안 예쁘겠지만, 한두가지 야채와 잡곡밥만 섞아도 양심의 가책으로 잠 못이루지는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

요즘은 좋은 앱도 많이 나와 있지만 일단, 먼저 적절한 감량의 골을 설정하는데 있어 현재 자신의 체지방률을 계산 하고 바람직한 체지방률이 되려면 얼마를 감량해야 하는지 알아 보도록 한다. 
WEBMD의 계산기가 가장 깔끔한데 
http://www.webmd.com/diet/body-bmi-calculator
미국외 국가에서 메트릭 시스템을 쓰고 싶으면 아쉬운데로
http://www.nhlbi.nih.gov/health/educational/lose_wt/BMI/bmicalc.htm
를 사용하여, 일단 너무 욕심내지 말고 적정한 선에서 한 두 달 안에 목표를 달성 할 수 있는 양을 찾도록 한다. 이렇게 일단 한두달 단위로 단계적 목표를 달성하면 다시 잡아나가는 식으로 목표를 잡아야 하는 이유는 두가지다. 
첫째, 일단 시작 몸무게에 따라 운동시간당 태우는 열량이 달라지니 몸무게가 줄수록 다시 섭취 열량을 조절해야 계속 감량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한참 잘 빠지다 갑자기 더이상 몸무게가 줄지 않는데서 오는 요요로 인한, 더 심각한 '포기현상'(!!)을 피할 수 있다. 
둘째는, 흔히 갑자기 많이 빼면 좋지 않다고 하니 얼핏 천천히 '꾸준히' 이어서 빼면 좋을것도 같지만, 그러면 무게가 줄어가는 모습도 잘 안 보이니 재미가 없어 좌절해서 포기하기도 쉽고,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사람이 지속적으로 오랫동안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살면 괜히 억울하고 재미 없는, 이른바 '사흘 굶은 시어머니' 현상이 생겨서(!!) 안된다. 

그러므로 확실하게 한 두달 안에 이 악물고 노력해서 일단 다소 눈에 띄는 양을 줄이고 나서(묵고잡은 것도 못 묵고 살아봐라 니, 한두달도 길데이~ 마, 한두달이 뭐꼬? 하루이틀도 길다. 내가 다 안데이~~), 일반적으로 뺄 때보다는 200칼로리정도 더 먹을 수 있는 유지모드로 들어가는 것이 낫다는 의견이다. 
힘들게 뺀거 도로 찔 생각이 없다면 천천히 빼든 빨리 빼든 그런 식생활에 적응을 해야하는 건 달라지지 않으니까. 

그렇게 목표 몸무게를 설정한 다음, 
몸무게와 성별 나이 대비, 일정기간동안, 일정 몸무게를 빼는데(혹은 늘리는데) 하루에 필요한 칼로리를 계산해주는 사이트를 방문하도록 한다. 
워낙 많지만 미국식 시스템과 메트릭을 둘 다 사용할 수 있는 사이트는:
 http://www.healthyweightforum.org/eng/calculators/calories-required/
칼로리정보는 음식당 칼로리도 제공하고 일일 칼로리 섭취량을 계산해주는 좋은 앱을 하나 다운 받도록 하면 좋지만, 스맛폰에 셀카봉으로 찍은 예쁜 사진 잔뜩 들어 앱들어갈 자리 없다는 당신은,  요즘엔 구글하면 칼로리 정보 차고도 넘치고, 과자나 음료수 포장을 봐도 노안으로는 읽을 수 없는 크기의 글자로 치사하게 적은 양대비를 제시해놓은 함정만 피하면(일테면 라면 반그릇 끓여먹는 사람은 드물텐데 반 그릇대비 열량이 표기되어있고, 과자는 크지도 않은 봉투를 7인분으로 계산해서 1/7봉투에 해당하는 칼로리가 씌여있는 것은 양반이고, 그램으로 표기된건 뭐냐. 누가 집에 음식용 저울로 그런 걸 달고 있다고ㅠ) 조금만 신경을 쓰면 얼마든지 해결 할 수가 있다. 미스 코리아 대회는 못 나가도 늙어서 내 발로 걸어다니자는데 그 정도도 못하겠는가!  
귀찮아도 처음에 조금만 신경을 써서 조금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대충 음식을 보면 칼로리가 나온다. 밥한공기가 280 칼로리라는 것을 알면 김밥 크기를보면 대충 한 줄에 600 이상은 훌쩍 넘는 다는 것을 아는 것 같은 것이다. 거기다 컵 라면(280-320)을 더하면, 2천칼로리로 계산을 해도 
축하합니다!!! 당신은 금방 가볍게 오늘 하루 칼로리의 반을 섭취하셨습니다. 짝짝짝!


일차 목표를 달성한 후에는 마무리로 다시 위의 사이트를 방문하여, 그 무게를 '유지'할 수 있는 칼로리를 다시 확인하여 꾸준히 지켜나가도록 하면 좋다. 
흔히 요요 현상이라는 것이 이것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목표량에 한참 못 미치는 칼로리를 지속적으로 먹고 있지 않았다면, 몸무게를 줄이고 나면 그 무게까지 도달하기 위해 필요했던 칼로리는 현재 몸무게로는 다시 남아도는 것이 되기 때문에 다시 몸에 쌓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제 지인 아들 돌잔치가서 정신을 잃고 버페 테이블을 세번 도셨는데 아침에 달아보니 다행이 몸무게가 늘지 않았다고 기뻐하는 당신, 메타볼리즘이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서 칼로리가 몸에 쌓이거나 몸의 지방이 다시 칼로리로 소모되는데는, 역시 개인차는 있겠지만 평균 24-48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어제 드신 것이 몸무게로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 이때 기쁜 마음으로 먹어도 괜찮구나 싶어서 넉넉히 먹기 시작하면 며칠 있다가 틀림없이 '딱히' 많이 먹지도 않은 날 아침 체중계가 실망을 시키게 되어있다. 

그런 경우, 화장실을 안 가서 무게가 많이 나왔나 보다고 자신을 위안을 하는 것을 즐겨하는 당신, 변은 장에 오래 머무를 수록 장벽으로 수분이 흡수가 더 되어 단단해지고 그러면 총무게가 줄어든다는 것을 기억하시라. 변비가 생기면 변이 장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져 변이 되어지면서 변보기가 힘들어지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오히려 붓기나 소변으로 인해 1-2파운드는 좋이 좌지우지 할 수 있다. 바람직하지 않아서 그렇지 권투선수가 체중조절을 위해 땀을 빼면 무게가 현저히 줄어드는 이유가 그것이다. 

먹는 것을 줄이면 변비가 걸린다는 것도 근거가 적다. 
변은 우리가 먹은 음식의 절대 부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변에는 일단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중에, 식물들의 세포벽을 구성하는 섬유질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파랗고 싱싱한 큼직한 야채들은 사실 거의 환상으로 세포벽안에 들어있는 수분이 대부분이다. 그 벽들이 무너지는 소리가 아삭아삭하는 소리인 것이다. 
그리고 변에는 우리 몸에서 피부와 피 등 죽은 세포들 중 재활용(그렇다. 몸은 매우 효율적인 기계다)가능 하지 않은 것들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하루에 죽어나가는 세포는 500-700개인 것을 감안하면 별로 먹지 않아도 내 몸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기능만 해도 장은 충분히 바쁘다. 음식물이 일단 위장에서 지내는 시간은 2-3시간 정도에 불과하지만, 대장 소장으로 넘어가 밖으로 나오기까지는 이틀정도가 걸린다. 즉, 어제 먹은것은 내일이나 되어야 나온다. 
역시 여담으로, 먼저 '제2의 뇌'에서도 말했지만, 변비는 현재까지 원인도 모르는 불치병중의 하나이다. 즉 변비는 대략 장의 운동의 문제에서 일어나는 병정상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면 매일 규칙적으로 화장실에 가는 것은 적게 먹고 많이 먹는 것의 문제가 아니다. 
(다행이도 나는 현재까지는-나이가 들수록 장의 운동도 줄어들게 된다고 함-아니지만, 겪는 사람들을 보면 상당히 괴로운 '병'임에 틀림없다. 흔히 독기가 몸으로 퍼지고 그런다는 것은 잘못 알려져 있는 것이지만, 장이 잘 운동을 안하면 변 보는 자체도 매우 괴로운 일이되고, 그런 과정에서 장벽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천공도 생길 수 있는 등 위험하다.) 

몸무게 당 유지할 수 있는 칼로리 결정 요소 중,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물론 성별은 안 바뀔지 모르지만(!) 나이는 꾸준히 먹기 때문에, 서글프게도 몇년 후에 다시 확인하면 같은 몸무게를 유지하기 위한 섭취가능 칼로리는 다시 줄어들게 되어있는 것이 또 아쉬움이다. 

가령(오늘 총대 맨다, 내가), 성인 평균 일일 권장량이 남자는 2000 여자는 1800인데, 나는 키/ 몸무게/나이/성별 감안 하루 필요량이 고작 1200kcal 정도이고 BMI(체지방률)은 19.2로 대충 정상인데, 밥 한'컵'(공기 아님)이 280이고 (조선이 대식국이라 불리었듯이 한국사람들은 주변 아시아국가들 대비 아무튼 다른 것도 아니고 이 '밥'을 이상하게 많이 먹는 경향이 있긴하다.  http://seehint.com/hint.asp?md=204&no=13628)  이름만 크지 실제로는 크지도 않은 빅맥이 467kcal (콜라와 프렌치프라이는 포함하지도 않았음)인 것을 감안하면 1200은 두끼니만 대충 잘 챙겨 먹어도 금새 차버려 커피에 half and half 크림넣기도 후덜덜인 분량이다. 
게다가 반복 또 반복 하듯이, 같은 운동을 해도 몸무게당 소모 칼로리가 달라지니 나같은 사람은 건강이나 유지하고 가끔 좋아하는 초콜릿 케익이나 먹을 수 있자는 거지 운동을 해도 어차피 칼로리소모에는 별로 도움이 안된다. 

사실 사람이 사는데 가장 칼로리 소모가 많이 되는 부분이 체온유지나 호흡, 소화등 생명유지기능이라서 움직이는 것은, 익숙해지면 더구나, 별로 소모가 안된다는 것에 주목하자. 
자, 일일 필요량이 1200이라는 이야기는 그걸 몸무게 증가 없이 어떻든 내 몸이 하루에 다 소모를 한다는 말인데, 전철역까지 30분 어슬렁어슬렁도 아니고 '씩씩하게' 걸어가봐야 고작 80칼로리 소모된다.(80이면 공기밥1/3공기도 안되고 초컬릿 한조각 정도이다. 만인이 좋아하는 베이글 아무것도 안 발라도 245인데 그러면 가뿐하게 라면 반그릇이다. 막상 아침으로 가볍게 라면 반그릇 칼로리 먹고 별로 배도 안 부르니 서운하재?)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살이 조금 넉넉한 사람들이 어슬렁 거리고 스맛폰 보며 숨만 쌕쌕 쉬어도 내가 얄궂은 운동한 것보다는 칼로리가 소모가 더 많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운동만으로는 감량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니 더더욱 방심을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되어있다.(가만, 칼로리소모가 잘 되려면 일단 몸무게를 늘리면 되겠...what?)

...

짐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들 중, 연초빤짝류를 넘어서 꾸준히 오는 사람들은 어떻든 루틴이 잡혀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오는데로 워터 파운틴에서 생수 한 병 받아들고, 늘 하던 순서대로 운동을 꾸준히 해나가고, 짐의 성격상 아무래도 몸이 드러나는 옷을 입은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이성에도, 그들의 시선에도 관심이 없이 그저 묵묵히 운동기구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이다.  

나도 매일 겨우 한시간 운동을 하고 나면 완전히 녹초가 되어 정말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일립티칼은 힘도 들지만, 매일같이 같은 운동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지겨운 일이라 아무리 좋아하는 음악이라도 매일 한시간씩 음악만으로 버티기에는 조금 힘들다. 시간도 아무래도 좀 아깝다. 
그래서 운동을 하기로 결정하면 그 시간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 것인지도 미리 준비를 하면 좋다. 나도 처음에는 음악만 듣다가, 조금 거추장스럽지만 아이패드로 미리 평소에 책 읽는 시간외에는 아까와서 담아두기만 했던 Tedtalk이나 podcast들을 챙겨보는 시간으로 활용해보았더니 그동안 밀린 Vsauce도 따라잡을 수가 있고(vsauce는 현재까지는 나와 정신세계가 가장 비슷한 사람으로 간주되는 사람이 만드는 10분정도의 비디오 시리즈인데 한번 찾아서들 보시라.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  유튭에서 글렌 굴드나 루간스키 등의 연주장면들도 볼 수가 있는 알찬 시간이 되었다.(연주하는 것을 보는 것은 소리로만 듣는것하고는 참 다르다. 사람은 참으로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이참에 오페라들도 찬찬히 챙겨보고, 운동하면서는 땀이나서 책은 보기가 힘들다고 고려하지 않던 것을 e book 이나 audio book 정보를 모아 본격적으로 책도 더 많이 볼 수 있는 시간으로도 만들려고 계획하고 보니 이제 시간도 덜 아깝고 좋다. 

이 글을 시작한 지난 주에는, 오랫만에 반가운 감기로 기침에 목도 완전히 쉬어버렸었지만 앓아 누워버리면 다시는 못 일어날것 같아서 그냥 운동을 매일 갔다. 그리고 돌아올 때마다 내일은 정말 쉬어야 하나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젖은 머리를 시원하게 겨울공기에 흩으며 집에 돌아오면, 그리고 운동한 김에 기분좋게 가벼운 간식을 먹고는, 속에 좋은 느릅나무 티를 끓여 감싸안고, 포근한 슬리퍼에 발을 집어넣고, 탁상등의 둥그런 불빛 아래 책과 함께 들어가 지쳐 잠이 들때까지 또 열심히 읽다보면, 다음날 다시 그 시간에는 어김없이 새로  기운을 내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일주일을 하고 나니 몸이 나아지면서야 아 내가 진짜 아팠구나, 어쩐지 어지럽더라니 하고 또(!!!) 깨닫게 되더라. 
(이게 내 고질병이다.ㅠ 아프면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고 나를 마구 내몰다가는, 낫고 나서야 내가 진짜 아팠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 즉, 용감하고 씩씩해서 그러고 있는것이 아니라 내가 겁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내가 아플때의 모습은 대략 연약한 사슴 총 맞은 곰이 공포와 혼란으로 뿌얘진 시야를 가지고 비틀비틀 집으로 돌아와 상처를 핥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다시 말하지만 루틴, 어떻게 내가 결심한 것들을 삶의 일부로 만들어 나가 의사결정 과정을 안 걸치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삶을 단순하게 만들려면 스스로에게 옵션을 안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3월도 중순에 접어들었으니, 곧 날이 풀리면서 반짝무리들이 이런저런 합리화로 하나씩 둘씩 사라져갈때 꾸준한 무리는 남을 것이다. 그리고 연말에 나타나는 나같은 얼빵한 새내기에게 열심히 하자고 묵언의 응원을 해 줄 것이다. 
그 무리에 함께 '우리'가 되고 싶다. 
우리 사는 다른  모든 것도 그런 것 같다. 순간순간 몸 편한데로 살아가면서, 이런핑계 저런 핑계를 대거나, 계속 생각만 하고 미루거나, 말부터, 혹은 말로만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내가 하기로 결심한 것을 행동으로 조용히 지켜나가면서 소란스럽지 않게 그렇게 꾸준히, 열심히 살아가려고 한다. 
나라를 구하지는 않았어도 그 정도면 다음 생에 지렁이로 태어나 토룡탕이 되지는 않겠지. 

이미 이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버렸는데 토룡탕이 되어선 안 될 이유는 또 무엇이겠느냐마는. 허허.




'언어'에 관하여(끝나지 않는 숙제)



처음부터 가족안부로 쓰던 트윗이라 자주 들여다보지도 않았었고, 최근까지는 친구와 가족말고는 '한국사람은' 팔로우를 전혀 안하던 트위터에서 최근 좋은 음악을 소개해주시는 좋은 분들 몇몇에 이어, 일부러 글 좀 쓴다는 한국사람들을 팔로우 해보기 시작했었다.('한국'을 알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한글'을 알고 싶다는 것이라서 너무 정치적 냄새를 띄면 가차없이 언팔함) 책은 십수년을 영어로만 읽었더니 내가 잘 쓴 한글을 너무 오래 접하지 않아서 갈수록 내가 한글이 영어보다 어렵다고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몇몇 사람들의 글을 따라가다 보니, 한글이 무조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흔히 쓸데없는 관념적이고 상투적인 어려운 한자어들을 줄줄 꿰어놓은 것 같은 글을 쓰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렇게 써놓으면 글은 짧아지고 농도가 걸쭉해지는 지 모르겠지만, 단어 하나하나는 알겠는데 전체 문장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 글이 되기 쉽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흔히 좀 씁네 하여 얼핏 '깊어'보이는 말들로 대중을 현혹하는데 사실은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를 하고 있고, 어떤 사람은 몇자 안되는 쉬운 말로 깜짝 놀랄 정도로 '좋은' 한글을 구사 하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몇자 안되는 말'로 순전히 남을 감동 시키기 위한 상투적이고 그럴싸한 말장난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전자를 현학적이라고 하면 후자는 현감적(?!)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먼저도 썼듯이 나는 160자 이내로 할말을 다하는 법을 익히는 연습을 하는 용도로 트윗을 쓰고 있는데, 트윗 한두칸으로 할 말을 다 못하고 줄줄이 트윗으로 '글'을 이어쓰는 모습을 보여 트윗의 본연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사람들도 많아진 것 같다. 그런글을 쓰기위해서 블로그가 있는것 아닌가? Vsauce가 트윗은, 자신이 창조한 마음에 드는 사람의 마음에 드는 모습만 보는, 생각해보면 게으르고 이기적인 세상이라고 할 정도인데 싫으면 언팔하면 그뿐인 트위터, 내가 좋아서 팔로우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 하자는데 하루에 백개를 쓰든 그게 문제가 아니라, 각각 한칸한칸을 따로 적는 것이 아니라 긴글을 그냥 줄줄이 엮어 놓은 것을 말하는 것으로, 예전처럼 블로그에 써놓고 그냥 읽고 싶은 사람만 와서 읽고가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들어줄 귀만 있으면 마냥 떠드는 탑골공원 노인들 생각이 나지만 이것도 그냥 개인 취향이라고 해두자.)

애초에 한글이 한자어가 많아진 것은 물론 중국의 속국이었던 단순 역사관련도 틀림없이 있겠지만, 사회전반이 워낙 아는 체, 난 체를 좋아하다 보니 어려운 단어를 많이 써야 있어보이는 이유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오래전에는 유럽 학자들도 라틴어를 많이 썼다든가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여러나라 단어들을 다 어우른 영어단어중에서도 역사상 누가 누구를 지배하느냐에 따라, 용도에 따라 하층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쓰던 Germanic language (독일어와 전혀 상관 없이, 인도-유럽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던 언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에서 온 말들이 있고(pig, cow, chicken etc.) 라틴어 등 당시 역사상 상류신분에서 사용하던 언어에서 온 단어들이 온 이유가 있는 것처럼 (pork, beef, poultry etc.) 아무래도 언어가 사회계층을 나누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쉽게 말 할 수 있는 것을 어렵게 밖에 말 못하는 것도 재주가 모자라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좋은 선생은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게 가르치기 위해 연구를 많이 한다. 아무튼 한국의 사람들은 지나가던 길을 막고 단순한 날씨에 대한 질문을 하나 던져도 답하는 사람들이 문득 유식해보이는 단어를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

당장 지금 트윗으로 넘어가 하나 살짝 따오자면,
가령, 박호라는 분이 쓰신
'그리고 이는 단순히 성차별 문제를 넘어 매체 신뢰도에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주는 행위다. 향후 경향이 소위 진보매체를 표방하며 어떤 입장을 취하든 이 사건을 잊지 않고 계속 주시하겠다.' 라는 말은, 
'그리고 이렇게 하면 단순히 남녀차별 문제를 넘어서 장기적으로는 사람들이 언론을 믿지 못하게 만든다. 앞으로 언론이 표면적으로 소위 '진보'의 태도를 취하는 입장을 취하더라도 이 사건을 잊지 않고 계속 지켜보겠다'
고 하면 더 쉽지 않나.
글을 못 썼다거나(내가 감히 그럴리가. 그동안 정말 한국말을 많이 잃어버려서 이런 문장을 보면 한국말이 이런거구나 하고 번번히 놀란다) 틀렸다는 것이 절대절대절대 아니라 정말 단순히 나같이 무식한 사람들 위한 더 쉬운 말이 틀림없이 있을텐데 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 문장은 지금 당장 제일 먼저 잡히는 것을 집은 것이지 난이도가 그렇게 높은 것도 아니어서 더 난해하고 뭔소린지 몰라 내가 지금 '번역'(!!!)을 못하겠는 문장도 많다.
'이런건 썪는 게 아니니까', 하고 말하면 될 것을 '이런 형태의 제품은 유효기간이 존재하지 않는 연유로'라고 하는 식이다.

하지만 깔끔한 문장을 구사하는 신형철의 문장을 보면 쓰고 있는 말의 뜻을 확실히 알고 쓰는 한 얼마든지 개념적인 말을 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읽으면서 외국어를 배우듯이 오히려 그 단어를 잘 몰랐다 하더라도 그 사용법을 배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수자의 아픔에 감응하는 일은 그 감응이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비관주의와 끝내 함께 가는 작업이어야 한다.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그위의 예로 든 글과 비교해서 굳이 풀어보자면, 
쉽게 쓴다고해서 느낀다고 풀어쓰기에는 많은 뜻이 감응이라는 단어에 들어있고, 그냥 순간적인 비관적이고 좌절스럽다는 것보다 더 광범위한 장기의 전반 '분위기'를 비관'주의'라는 단어에서 볼 수 있으며 그냥 함께간다에서 나아가 일을 해야 한다는 것(work on it)에서 작업이란 단어가 쓰였다고 보인다. 
물론 그는 이런 분석을 하면서 쓴게 아니겠지만 언어를 알고 있는 하는 사람은 당연히 수영처럼 무의식적이지만 무난하게, 그러나 못하는 사람이 보면 아름답게 이루어지는 작업이겠다. 다이빙이나 체조에서 문외한이 보면 이거나 저거나 비슷한거 같은데 코멘테이터들이 이건 뭐가 잘 안되었고 저건 어디가 어째서 난이도가 높다고 하는 식의 설명을 하고 있는 가운데 선수들은 그저 완벽한 동작을 위해 갈고 닦은 몸짓들을 열심히 하고 있는것과 같다고 하겠다. 쉬워보이는 것도 쉽지 않고, 어려워보이는 것은 부단한 연습과 의식적 무의식적 학습에 의해 물 흐르듯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내가 '현학적'이라고 하지만, 일단 그렇게 한자어를 많이 쓰는 한국말의 구조상 영어로 big word 라고 하는 소위 '어려운 말'을 쓰면 짧은 글안에 함축된 뜻을 집어넣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160자의 짧은 트윗에서는 또 더할 나위없이 좋은 도구이기도 한 것같긴 하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어떤 관념적인 난해한 단어들은 쓴 사람이 정말 뜻을 알고 쓰고 있는지 그냥 많이들 쓰니까 덩달아 가져다 쓰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을 때가 많다.
좋지 않은 번역은 번역자가 문장을 이해하지 못해서거나(모르긴 몰라도 그렇다면 번역이라는 심오하고도 골치아픈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 같지만 순전히 돈벌이로 싸게 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직역을 해놓았을 경우일 수도 있지만, 흔히 자신의 머리로는 이해한 문장을 읽는 사람 입장에서 이해가도록 쓰는 과정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듯이, 듣는 사람이 이해를 하지 못한 것은 말한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

내가 '영어가 더 쉽다'고 하면 '내가' 영어를 읽는게 쉽고 안 쉽고의 '내 언어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영어자체가 배우고 사용하기 쉬운 언어라는 것이고,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기 보다는 쉽게 풀어쓰는 습관을 가지기 쉽다는 것이다.

영어는 글 안에 같은 뜻의 단어를 여러번 쓰게되면 각각 다른 단어를 쓰도록 하기 때문에 처음에 영어를 공부하는 외국인들이 매우 피곤하게 생각하기 쉽다. 일껏 사전을 찾으면(요즘은 간단하게 즉석검색이나 되지 옛날에는 사전하나가 걸레가 될 정도로 직접 뒤적여 찾는 수고가 더 컸다) 또 같은 뜻의 단어고, 또 같은 뜻의 단어라고 하소연을 하는 사람이 많다. btdt(이제이 영어 한마디 : Been there, Done that. 의 줄임말로 다 가보고 다 해본일이야~ 즉, 오야 내가 다 안다~ 막상 사전을 몇번째 찾아도 계속 그냥 열렸다는 뜻이어서 막상 서운하재? 란 말이다-opend 이라고 하면 좋은데 agape, gaping, yawning, ajar 이라고 한다. 그런데 조금씩 조금씩 어감도 다르고 다 흔한 말이다.)
이 때문에 영어는 실제로 thesaurus 동의어 사전의 사용이 매우 빈번하지만, 자칫 잘못 사용하면 우스꽝스러운 문장이 될 수가 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쇼 Friends 에서 무식한 Joey가 친구들이 아이를 입양하는데 추천장을 써주는데, 유식한 것처럼 보일려고 동의어 사전을 찾아 '사람'을 '호모 사피엔스'라고 쓴 장면이 유명하다. 다. https://www.youtube.com/watch?v=9s0LqZMsfTQ


그런데 한글은 또, 같은 단어를, 심한 경우 같은 문장안에서도 무슨 주문처럼, 거의 고의적으로  반복해서 사용함으로써 자칫 문장이 무겁기 쉽고, 이따금 아주 단순한 단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상하게 생긴 것 같이 느끼는 현상처럼 나중에는 그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모르게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어떤 단어가 떠오르면 다들 덥썩 물고 놓지를 않는다. 나는 한국 뉴스도 안보고 팔로우하는 한국 사람 몇명 안되도 트윗의 타임라임만 보면 background도 모르고 consequence나 implication도 몰라도 대충 요즘/오늘 한국인들이 '무엇'에 관심이 지대한지는 반나절이면 알 수가 있다.

중국의 파워가 점점 커지면서 현재 중국어를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듯이, 영미가 강국이어서인것도 크지만, 영어를 전세계가 널리 사용하게 된 이유가 언어가 사용하기 쉬워서라고 생각하다 보니, 어쩌면 반대로 사용하기 쉬운 언어를 가지고 있어서 강국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언어는 문화를 전파하는 데 그만큼 중요하다.

대중 상대의 책이라고는 해도 하버드(정말이지 나까지 이런 상투적인 레퍼런스를 끌어대고 싶지는 않지만 상황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교수인 언어학자 Steven Pinker나 곤충학자 E.O. Wilson 의  책을 읽어보면 정말 쉬워서 문외한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다. 흔한 '쉬운 경제학' 어쩌구,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 식으로 나오는 한국책들은 안타깝게도 흔히 쉽지도 재미있지도 않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영어는 관심만 있으면 문외한도 lingo(학계에서 사용하는 전문용어들. 링고라고 읽는다)만 다소 익히면 대중상대가 아닌 논문도 대충 재미로 읽을 수가 있다. 학술논문까지 읽으려면 이런 부분은 당연히 완전히 피할 수 없지만, 대개의 학자들이 책을 쓰면 관심있는 분야는 몇개 주요단어만 익히면 물리학이나 엔지니어링 관련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쓴다. 중요하지 않는 전반 문장은 어렵지 않다는 말이다.

한글의 독자 readership들이 lazy 한 것도 있다.('천성'이 게으른 사람 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영어로 lazy란 말을 이렇게 쓰면 그냥 어떤 행위를 '하기 싫어한다'는 의미의 국부적인 말이 된다. 왜 안했니? 하고 물으면 I felt lazy, I just got lazy 라고 답할 수 있다)
지금도 내가 (반 고의적으로) lazy라는 말의 용도를 부연설명해야 했듯이, 영어를 직역이 아닌 한글로 '알아 들을 수 있게 잘' 번역하려면 글이 기본적으로 길어지기도 하지만, 한국사람들은 워낙에 두꺼운 잔 글씨 책을 읽는 절대분량이 많은 것에 익숙치 않아서 여러 권이 되기 쉽다. 나누어서 여러 권으로 팔아먹으려는 출판사의 상흔도 있겠지만, 영어로 800-1000 페이지 책을 한국의 좋은 종이에다 구조상 영어보다 크기 쉬운 활자로 책 한 권으로 집어넣는 것은 물리적으로 상당히 힘들기는 할 것이다. (한국에서 맞춰 온 내 멀티포컬 안경이 한국활자를 기준으로 잡아준 것이라 그런지 영어 활자 중 잔 것은 조금-많이- 힘들다.)

어떻든, 한국 사람들은 절대 길이가 긴 글을 읽을 준비가 잘 안 되어있다. 올리버 삭스(뉴욕의대 신경학교수)나 리차드 도킨스(옥스포드대 명예교수)같이 자기 의견 많은 사람들은(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긴 해도 정말이지 말이 많은 사람들이다!) 책도 많이 쓰지만, 가끔 아티클을 하나 써도 몇페이지고 줄줄줄줄 써내려가지만 전혀 읽기 어렵지는 않은데, 한국의 아티클들을 기준으로 예측컨데 한글로 그런 길이를 쓰면 아무리 인기있는 하상욱이고, 존경스러운 황현산선생이 써도 많이 읽지 않을 것이다.

좋은 영화의 편집은 전체 분위기를 설정하는 풍경은 놓아두고 대화장면을 잘 잘라내는데 반해 나쁜 영화 편집은 이야기 관련 없다고 전자의 장면을 잘라낸다고 했다. 그처럼,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독자에게 전체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한 얼핏 보아 쓸데없어보이는 편안한 장면을 집어 넣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최근에 읽은 러시아거장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에 나오는 인물 묘사를 몇개 예로 들자면, 한 사람이 들어오는데 '그 사람과 부츠도 같이 들어왔다'고 했다. 잘 맞지 않는 너무 큰 부츠를 신고 있다는 것을 해학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겨드랑이가 너무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이따금 몸을 움직거리고 있다거나, 어머니가 아들을 만나 반가움에 펑펑 울고난 후, '머리를 한쪽으로, 그리고 다시 다른 쪽으로 기울이며 눈물을 닦는다'는 절묘한 묘사도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한글의 평균 길이를 보면 그런 것들을 집어 넣을 자리는 많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더 어렵고 내가 재주가 없다고 글쓰기를 포기하게 만든 부분이다. 그동안 몇번 말했듯이, 흔히 한글로는 장편이라고 해도 영어로는 잘해야 노벨라 정도이고, 최근 신춘문예기준 단편소설의 길이(원고지 80장)의 작품들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산문시에 가깝다고 볼 수가 있을 정도다. 군더더기가 조금도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한글로의 글쓰기는 사람의 몸으로 비유하면 그냥 날씬 한것도 모자라 근육으로 빈틈없이 다져진 몸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하겠다. 물론 내가 비판하는 쓸데없는 현학적 단어를 많이 사용한 글은 미적인 부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근육만 잔뜩 붙인 고릴라 같은 모습이라고 하겠다.

어떻든, 나는 오랫동안 영어로 읽으면서(결국 영어로 '번역'한 책도 읽었지만 번역도 영어가 쉬운데다 일단 한글로 안 읽었다는 말이다)배운 장사가 쉽게 쓰는 것이라서 최대한으로 글을 풀어 쓰려고 습관적으로 노력한다. 그런데 그렇게 쓰다보면 우선 글의 절대 길이가 길어져 짧은 글에 익숙한 한국사람들을 읽을 엄두가 안나게 하는 경향이 있긴 하다. 그리고, 아무도 읽어주지 않아도 나는 그저 내가 잘 쓰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뿐이라는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글이 지저분해지는 것도 스스로 불만이다. 그것을 해결하고 중간점을 찾는 것이 나의 끊임없는 숙제라고 할 수 있겠다.

...

결론을 말하자면, 그동안 순전히 글 솜씨 때문에 트윗으로 팔로우 해 본 사람들 중에 별로 남은 사람은 없다. 말 많고 말 많으니 말많은가 하노라라는 생각이 절로 난다. 책을 좋아한다면서, 그리고 아무리 바빠도 읽고 싶은 글은 페이버릿 해놓았다가 챙겨 읽는 나로써 남의 글을 읽는 참을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누가 읽으라는 것이 아니잖는가. 읽고 싶어서 읽는것이지) 긴 문장을 쓴다는 것은 나름 정성을 들려 애정을 가지고 긴 시간과 노력을 바치는 일인데 트윗에 밤낮으로, 오만 것에 이런저런 '의견' 많고, 휩쓸려다니고 또 휩쓸려고 하는 사람들은 대충 트윗에 있는 것이 다더라.
그나마, 블로그에 맛집탐방이나 사들인 것 자랑 말고, 순전히 쓰기위한 글을 묵묵히 쓰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었다는 것을 요즘에 알고 나니 나의 그동안 한번씩 흔들리곤 하던 이런저런 끄적임도 좀 덜 덧없고 덜 외로운 느낌이라서 다행이다.
...

*내가 넘은 못 쓰고 나는 잘 쓴다는 말 하자는게 아니라는 증거로, 내가 나이 상관없이 철푸덕 엎드려 절을 하거나 손을 한번 잡아보고 싶게 하는 정말 한국말 잘 하는 사람들 몇 명을 남긴다.

먼저 백석의 시도 그랬지만, 서정주의 시도 '국화옆에서'는 그의 시 중 가장 dull 한 것이다는 것을 http://fr.catholic.or.kr/jhkh59/poem&music/poem13.htm 에서 볼 수 있다. '문둥이' 와 '눈물 나네' 같은 것은 어머, 내가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

거장들은 나도 선입견이 있어서 그렇다고 할 당신을 위해 최근에 창비 문학 블로그에서 주운  주옥같은 시 하나 더,(그러고 보니 이 시를 올린 창비 팀장이라는 박신규란 사람도 글 잘 쓰고 함께 있는 다른 시들도 좋구나...당췌 한국에는 아는 이름이 없어서 이런 사람들을 '발견'하면 뭐랄까, 글을 잘 써주어서 고맙다고나 할까? 그런 갖잖고 발칙한 느낌...)



비가 오려 할 때
                                    문태준

비가 오려 할 때
그녀가 손등으로 눈을 꾹 눌러 닦아 울려고 할 때
바람의 살들이 청보리밭을 술렁이게 할 때
소심한 공증인처럼 굴던 까만 염소가 멀리서 이끌려 돌아 올 때
절름발이 학수형님이 비료를 지고 열무밭으로 나갈 때
먼저 온 빗방울들이 개울물 위에 둥근 우산을 펼 때

                                                 <맨발> 시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