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February 26, 2015

'현대도시인의 고질병' 시리즈의 변

먼저 '누가 누구를 짠하다고 하는가'에서 시작된 것이 어쩌다보니 그 사이에 포스트 세개의 시리즈가 되고 말았다.

주로 시리즈가 시작되는 이유 자체가, 정말 딱 한마디만 하려던 것이 자꾸 길어지면서, 그러면서 주제가 자꾸 나누어 지면서 어쩌다가 일어나는 일인지라, 이번에도 예측 못한 일이었기 때문에 일단 번호는 여기서부터 붙이기로 하겠다.
(그전에도 어딘가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내게 있어 뭔가를 쓴다는 것은, 책을 읽는 동안 맴돌던 생각을 머리에서 치워 다시 다음 책을 읽을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과정이다. 책을 읽으면서 뭔가 생각이 나면 방해가 되니까 일단 메모만 해놓았다가, 책이 끝나는데로  옆에다 비록 decaf : caf  비율이 2:1 인 커피나마 french presser  한 가득 채워 가져다 놓고 일단 시작하는데, 곧잘 길이와 주제에 따라 창이 자꾸 열리면서, 급기야 한꺼번에 창을 댓개 열어놓고 여기갔다 저기갔다 하면서 마구 머릿속에 있는 것을 내려놓기 시작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무슨 오케스트라 지휘자 처럼 정신을 집중하고 모든 것을 서로 아귀가 맞게 제자리에 내려 놓는데 따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아직 완성이 안된 상태에서 버튼이 잘못 눌러져서ㅠ 일순 포스트가 올라갔다 내려가는 일이 있었다. 그 중, 먼저 '하나뿐인 지구, 하나뿐인 나'처럼 너무 길어 가르지도 못하고 이왕 올라간 것, 심각하지 않은 미흡한 부분은 차차 수정을 해나가는  것으로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전혀 준비가 안 된 것의 경우는 허둥지둥 바로 도로 내려간 일이 있었고, 아마 그 사이에 들어오신 분들은 갑자기 포스트가 사라져서 의아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이 blogspot.com 블로그는 누가 읽는지는 알 수 없으나 관리자가 포스트 조회수는 알 수 있음)

조만간 다시 책이 끝나는데로(지난 포스트 후로 세권이 지났으나, 다음 책은 조금 오래 걸릴 것 같아서 특별히 시간을 들여 어제 오늘 하고 싶었던 일러스트레이션들도 하고, 그동안 쌓인 포스트를 폭풍정리하며 열심히 '놀고' 있음) 뒤늦게 다시 시작할 예정인 '미국의 문제점' 시리즈의 프롤로그에서 다시 미국에 대한 내 애매한 입장을 따로 밝힐 생각이지만, 내가 떠난 조국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밖에 살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꾸 불평만 늘어놓는다고 생각하기 쉬운 당신, 일단, 내가 현대 도시생활 전반, 또 그러다보면 역시 피치 못할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때는 오히려 지극한 애정을 담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변을 올리기로 했다. 미국에 대해 불평을 하고 있을 때는 '변'이 아니라 그냥 프롤로그가 되는 것만 보아도 나의 '조국'이란 것에 대한 오묘한 애정을 엿볼수 있다.
그리고 내가 무엇에든 답을 알아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고 싶은 것이다. 현상은 명백하게 이러한데, 왜 그렇게들 행동하는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해서, 내가 감히 이런 글들을 쓰기로 결정한 이유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떠난 사람으로써 그 안에서 늘 바쁘게 바글거리고 있는 사람들은 볼 수 없지만  밖에서는 볼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다. 내가 맞다기보다는 그냥 새로운 시각으로, 어디서 건방지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저것을 한번 보라고 '가리키고' 싶었다.
그래서 한번들 보고, 누군가는 혹 조금 아프더라도 뭔가 잠깐이라도 느끼고 생각해 볼 것이 있다면, 금새 바뀌지는 않더라도 한번 돌아보는 계기도 되어 주면 좋겠고, 혹 내 말에 동의를 한다면 같이 한숨을 쉬면서 고민해보자는 뜻에서.
나는 결국, 누가 나쁘다, 틀렸다고 말하자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보아 정신없이 남들 하는데로 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다들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모두들 잠재적으로는 알고 있을, 더 행복하게, 아름답게 사는 법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고 싶은 거니까. 모두들 알고는 있지만 자주 잊고 사는, 내재하고 있는 참 아름다움을 끌어내고 싶은 것이니까.

둘째, 물론, 최근에 읽은 밀란 쿤데라도 지적했듯이(이번 책 끝나고 끊임없는 소위 '진보'를 추구하는 사회의 벙폐에 대해서 얘기할때 다시 언급할 예정) 어느 한 국가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애국심이란 것이 자동으로 생기는 것이 절대 아니지만, 아무래도 외국에서 외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생각하면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학예회 무대에 올려보낸 아이를 보는 심정으로, 모국이 잘하는 것이 있으면 잘하는 데로, 못하는 것이 있으면 안타까운데로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흔히 한국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들은 안에서 영익을 목적으로 과장을 하거나 일회성인 경우가 많아 빛좋은 개살구인 경우가 많고, 우리는 별로 자랑스럽지가 않은 경우가 많다. 가령 우리는 싸이보다는 요즘은 어느 일반수퍼를 가도 만날 수 있는 신라면이, 혹은 아는 사람만 아는 김연아보다는 맨하탄 한복판의 한국거리가 더 한국민의 파워를 보여준다고 느끼고 그래서 흐뭇하다 )
즉, 믿기지 않겠지만 실제로 나와 살기때문에 사는 사람에게는 없을지도 모르는 애국심도, 모국애도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셋째,  지방사람들이 흥분하면 사투리하듯이 내가 요즘은 흥분하면 영어가 더 나온다고 하지만(나도 이 이상한 현상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사람이 흥분한다는 말은 전투모드이고, 미국에서 살아온 내 인생의 1/3동안 서바이벌을 위한 '전투'는 영어로 하고 있었기 때문인것 같다. 즉 뭔가 따지거나 주장하는 등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곳에서 혼자 '이기기 위한 말'을 하고 있을때는 내가 영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는 말이다. 문득 애면글면 살아온 세월이 주마등처럼...훌쩍, 팽~), 여기다 뼈/가루를 묻어/날려도 나는 태생이 한국인이고, 당연히 모국어가 더 능한데도, 점점 한국을, 그 현학적이고 가부장적이고 편견이 넘쳐나는 문화를 이해하기 어려워지고, 또 그렇다는 사실을 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없는 동안 한국이 변한 부분도 그렇지만, 오히려 나는 변했는데 한국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부분들이 더 어려운 것도 많다. 어떤 것은 옛날에는 나도 당연히 여겼던 것이 지금은 정말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혼수(특히 애교예단!)나 장례절차 같은 것이 그것이다.

넷째, 내가 불평하는 부분들도 절대로 내가 더 낫거나 더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한국인임을 더 인식하고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한국인의 현재 행동들이 나 자신의 생각과 태도도 은연 중에 반영한다고 일단 가정하고, 나 스스로부터 달라지고 고쳐나가려고 생각하면서 늘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역시 이런저런 비판과 불평을 자신있게 하면서도 나아지든 못해지든 한국에 머무르는 사람들과는 달리, 떠나온 시점부터 다른 길을 가기 시작한 나의 생각과 행동, 그 갈림길에 대해 백야에 나오는 바르시니코프처럼 망명자가 가질 듯한 모종의 죄책감과 책임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불평을 할 자격도 없다는 생각이 불효자처럼 늘 마음 한구석에 있기 때문에, 조국이 불평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 되어주면 좋겠다는 역설적인 생각을 한다고 할까.

그래서 미국의 문제점에 대한 불만은 주로 정책이나 실용적인 국가 전반의 문제인데 반해, 한국에 대한 불만(인정한다)은, 나와 사는 나에게 미치는 영향도 적고 나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그런 부분보다 주로 인간관계의 레벨이다. 사회가 바뀌려면 각자가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번번히 새로이 깨닫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 하나부터 바뀌는 법 밖에 없다고 믿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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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표현으로 'Don't kill the messenger'이라는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전령을 죽이지 말라는 이말은, 흔히 소식이 마음에 안든다고 해서 정작 나쁜 소식의 '원인'도 아닌 소식을 전하는 전령일 뿐인 사람을 신경질 난다고 죽여버리고 싶어하는 인간의 심리를 말하는 것이다.
지구 기후 변화라는 불편한 진실들을 일단 인정하고 나면, 그것을 일으키는 원인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생활이 불편해지기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실을 부인하고 싶어했던 미국 공화당도 결국 진실은 인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다. 외면한다고 해서 진실이 없어지지도 잊혀지지도 않는다. '하나뿐인..'에서 내가 말했듯이 흔히 진실은 아프지만 현실을 직시하는 순간 더 자유로와진다는 것을 기억하자.
내 말은, 누가 내 글을 읽더라도, 자신에게 해당 안 되는 일은 나와 같이 불평하면 그 뿐이고, 혹 내가 하는 말들이 다소 아프다면 그 이유 자체가 어딘가 일말의 진실이 있다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고, 그런 경우는 삼초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면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내가 불만한 것에 대해 다른 곳에서 달리 말한 적도 없고, 내가 모순된 행동을 한적도 없으니까. 기껏 말을 해도 안 들은 사람들이 있을 뿐.
그리고, 혹, 치사하다, 왜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지 않느냐, 왜 그리 불만이 많느냐고 불평하는 당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아이를 정말 바람직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잘 키우는 방법은, 조건 없는 사랑 한답시고 나만 이쁘고 남들은 다 싫어할 아이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나는 가끔 정말 하기 싫은 역할을 담당해서라도 아이가 세상에서 나 없이도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가지도록 키워나가는 것이듯이,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듯이, 이것도 당신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믿어주기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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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덧없는 푸념 시리즈가 끝나고, 다음 책 끝나고 짜투리 포스트 몇개 후에는, 그동안 식도염관련 외에도 다시 꾸준한 독자층이 있는 '미국의 문제점 시리즈'를 다시 시작할 예정입니다. 불만 투성이인 본인은 한국/도시 뿐 아니라 틀림없이 미국에도 불만이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오늘 오랜만의 포스트기념 음악은 샹송가수 Laurent Volulzy의 달달한 My Song of You.
https://www.youtube.com/watch?v=31WX_kK6Z2g (아이패드는 블로그에 비디오가 직접 안 뜨길래 just in case)

현대 도시인의 고질병: 술과 사진사이(3)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중학교이후로 처음 만난 친구 하나가, 자기는 비로소 자신의 늙어가는 얼굴과 타협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부러운 일이다. 내가 달리 방법도 없는데 굳이 안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얼마전, 옛날의 내가 젊고 예쁜 줄 알았더니 그냥 젊기만 했더라는 것을 깨달은 바, 살면 살수록 아침마다 똑같아 지루함을 넘어서 점점 실망스러워지는 자신의 얼굴과 타협한다는 것은 상당한 내공이지 싶었다.

사람이 각자가 지닌 아름다움이 있고, 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 우리나이에 예쁘면 얼마나 예쁘고, 안 예쁘면 얼마나 안 예쁘겠느냐마는, 내가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 이유는, 첫째가 사진은 한 컷으로 어차피 그 사람의 살아있는 모습이 잘 안 보여 의미가 적기 때문이고, 둘째는 포샵을 해봐야 피차 아는 거짓이니 덧없고, 마지막이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로, 오랫만에 만나 소풍단체사진 찍듯 기념으로 전체 한장 찍어두는 것은 몰라도, 잘 놀다가 자꾸만 기억에 실제로 남을 사람들 얼굴이 아니라 사진기 렌즈를 바라보고 뻘쭘한 웃음을 웃어야 한다는 것이 싫어서다.

날더러 사진 찍는데 안 웃는다고 자꾸 뭐라고들 하는데, 사진기 렌즈를 보고 반가우면 웃지 말래도 웃겠지? 본래가 코미디하던 사람도 늙으면 악역을 맡는 법인데, 사람이 웃는 얼굴이 더 보기 좋은 것은 당연하지만, 렌즈가 그렇게 반가와 절로 웃음이 나올리는 없지 않는가.(그리고 미안한 말이지만 사진 찍는 것 싫다는데 찍어'주는' 사람을 보아도 그리 반가울리가 없다)

그런데 이 친구, 그러고는 한동안 매일같이 자신의 이런 사진 저런 사진을 자주 올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말해두는데, 학교다닐때 인기도 있었던 예쁜 친구다. 그런데 나는 조금 의아했다. 아마도 자신의 얼굴을 자신이 받아들이는 것과, 남들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그리고 아마도, 그래서 내가 내 사진을 보여주기 싫어할 뿐아니라 남의 사진도 솔직히 별로 보고 싶지가 않은가 보다고 생각했다. 남도 내 사진만으로는 나를 알 수 없듯이, 나도 사진 한 컷으로 남들에 대한 인상을 제대로 읽었다고 책임지고 말 할 수 없는 것 같아서다.

그래서 나는 모임있다고 사진 올려달라고 한 적도 없다.(말했지만 나는 빈말은 못하고, 따라서 내가 실수로-!- 저절로 나오는 칭찬을 하면 진심이거니 믿어도 좋다. 내가 한번이라도 모임 사진 올려달라고 한 증거를 가져오면 경품드립니다) 더구나 얼핏 여건상 나처럼 자주 직접 못 만나는 사람은 사진이라도 더 자주 보고 싶을 것 같지만, 위에 말했듯이 사진은 순간적인 한 컷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가장 예쁜 모습을 볼 수가 없어서 싫다. 아무리 잘 나온 사진이라도 내가 아는 예쁜 모습이 사진 한장에 담기기는 정말 어렵다. 즉 내가 보기 싫다는 것은 어쩌면, 더 보기 좋은 모습을 알고 있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어떤 좋은 사람을 생각하면 기억하는 모습은 어쩌다 사진속에서 본 가장 최근의 모습이 아니라, 마지막 직접 보았을때 만나서 반가운 표정을 짓던 그 얼굴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자꾸 어색한 사진만 보느니 먼저 만났을때의 고운 모습을 간직하고 다시 보고 싶다 생각하면서 생각하는 것이 더 낫다. 설명을 해도 이것을 이해해 주는 사람은 뜻밖에 참 드물다.
물론 한참 점점 예뻐지는 20대가 아니고서야 세월이 지나서 만나면 더 늙었을 것이고, 무조건 하나도 안 변했다고 생각해줄 수도, 그것을 기대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 모습이 '보기 싫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늙어간다는 것이 조금 서글퍼서 그런 것 뿐이지, 그래도 아끼는 친구들은 실제로 모습이 많이 변한 친구들도 마음속에 간직한 고운 모습들이 그 사람의 에센스를 담은 실체로 가슴속에 남아 있다는 것을 나도 이번에 깨달았다.(그리고 깜짝놀랄 포토제닉도 틀림없이 있지만 대부분은 실물이 더 낫다-이 포토제닉들이 사진 찍는 것 좋아하는 마음은 당연히 이해함!)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이런모습 저런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별로 가깝지 않은 사람들은 한두번 요즘 모습 어떤가 보고 나면, 직접 만나 실제 모습을 서로 보지도 못하는 거, 사진만으로는 별로 보고 싶지도, 보여주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실제로 모두의 얼굴은 객관적인 눈으로 보는게 아니니까 같은 얼굴이라도 의미없는 남이 보면 달리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가 나이가 들수록, 내가 예쁘게 나온 사진보다 얼굴이 혹 제대로 안 나왔어도 전체 분위기가 행복해보이고 좋은 사진이 좋아진다.

내가 최근에 한국을 무기한 접은 이유 중의 하나도 같은 맥락이다. 메신저로만, 사진으로만으로는 영 실체가 없더라. 내가 상상력이 부족한지 몰라도 그렇게는 존재가 느껴지지 않더라. 아니, 사진 속의 모습은 나와 그들이 다르게 살고 있다는 것을 더 보여주어 점점 더 멀게 느껴지게 하더라.

...

그런데 여기서 술이 사진을 마중을 나오면 문제가 더 악화된다는 거다. 여기서 오늘의 주제인 비와 찻잔 사이가 아니라 술과 사진사이가 나온다.

다시 말하지만 나도 가족과 아끼는 사람들 얼굴은 자주 보고 싶다. 화상통화는 사람의 표정을 읽을 수 있고, 상호작용을 할 수 있고, 목소리도 들을 수 있어서 사진은 싫어하는 나도 가족들과의 화상통화는 애용하는 편이다. 그리고, 어디서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보니 엄마 사진이 없더라는 이야기를 듣고나서부터는 딸이 찍자고 할때마다 싫은 것을 참고 열심히 찍어주는 편이다. 내가 남들처럼 애정표시(!)를 드러나게 하지는 않아 얼핏 쌀쌀 맞은 것 같아도 나의 깊은 사랑을 아무에게나 주기 아까와서 그렇지 내사람들로 결정한 소수의 몇몇에게는 또 나름 진득하다.

한데,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으면 또 틀림없이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폭넓게 자주, 많이 '보고' 싶어하는 덕망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런 사람이 있으면 또 자주 많이 '보여주고' 싶은 너그러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이 사진 잔치가 벌어지기 시작했거니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스맛폰때문에 사진기가 항상 있어서 그렇다고 분석할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사람들이 그런 것을 좋아했으니까 단순한 수요와 공급의 원리로 사진 기능이 그리 진화를 했다고 볼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그게 얼굴이든 풍경이든 음식이든, 이빨빠질 냉수담을 '그릇'이든)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도 일종의 사랑이라고 할수 있다. 흔해질 수록 사랑의 값어치는 떨어지긴 하지만.

그리고,
일단 내가 술을 많이 마시든 안 마시든, 술자리 가지는 것 자체도 천분 만분 밀리언분 이해한다.
소위 '스트레스성 질환' 하나 없는 사람 없는 도시생활에 늘 힘든 당신, 술을 먹고 '잊는다'고 괴롭히는 그게 실제로 '없어지'는거면 부디 많이 마셔라. 내가 매일같이 새벽이슬 맞고 지게지고 나가 말술을 받아다 주리라. 사람 몸이라는 것은 참으로 복잡다단한 것이라서, 담배도 참느니 그게 더 병되는 사람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없어지는것은 둘째고 실제로 잊어지기라도 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다음날 속 뒤집어지면 그게 더 잊고 싶을텐데.)
그냥 한잔 마시면 기분 좋고 릴랙스가 되서 마신다고 하면 좋다. 차마실 자리가 있고 술 마실 자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술자리, 나쁠 것 없다.

(물론, 각자 자기 페이스대로 살살 마시면서, 오징어든 상사든 맛있는 안주를 먹으면서 분위기 좋게 천천히 취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십전대보탕도 아닌 것을, 누가 쫒아오는 것처럼, 억지게임을 해서라도 순식간에 서로  앞다투어 퍼 먹고 인사불성이 되어야 하는 이유부터 시작해서, 나이가 몇갠데 먹고 싶으면 많든 적든 각자 먹지 누가 먹여서 먹은 것처럼 구는 것도, 아니면 무슨 술마실 핑계가 필요한 것도, 그럴거면서 각자 집에서 마시지 왜 만나서 마시는지는 논리적으로 이해를 잘 못하겠긴 하다.
그러나, 이것도 시골뜨기의 푸념이라고 치자. 시골쥐가 도시쥐의 높은 뜻을 알리가 있는가. )

그런데 이 사진도 술기운을 빌려야 한다는 것이 딱하다.
사진 찍는것이 좋으면(good for you!!) 모이는데로 초장에 기념촬영으로 끝내고, 그냥 얼굴 마주보고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지 않고서리(혹시 별로 마주보고 싶지 않으면 술잔과 안주를 열심히 들여다보든가) 가만히 잘 놀다가, 다들 조금 취하면 그때서야 사진을 찍기 시작하는건 뭔지 모르겠다.
내가 나는 사진 안 찍는다고 하니까 누가 그러더라,
'이건 우리 술버릇이야. 그냥 니가 이해해'
보통 처음에 술 먹을때 한 것이 술 버릇이 되니까 어른들께 술을 배워야 한다고 했는데, 울고, 말싸움걸고, 주먹다짐하고, 자고, 토하고, 웃고, 말 많아지고, 말 없어지고, 욕하고, 신체접촉 늘고 등등 많은 술버릇에 이어, 많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아버지 앞에 무릎꿇고 술을 배우며 사진을 찍었나보다.

나도 원래 사진 찍기 싫은 사람이니까 꼭 해야한다면(?) 술기운 빌려야 하겠는 마음을 이해하려고 해도(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러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보여줄 용기도 안나는 얼굴을 왜 보여줘야 하느냐고 시작하고 싶지만 스탑!), 술기운을 빌어 사랑 고백하는 것도 아니고, 헤어진 애인한테 술먹고 전화하는 것도 아니고 (오늘의 느닷없는 이제이 영어 한마디:  영어로 이것을 drunk dial 이라고 한다. 동사로 He drunk dialed Jane again. 걔 또 술먹고 제인한테 전화했대! 라고 하면 된다.) 도대체 누가 술먹은 얼굴을 보여달라고 했어야 말이지.
가만 아니지, 전여친도 전화하라고 안했지 참 ㅠ

술 먹고 얼굴색 변한 사진은 정말이지 안미안하지만 그 자리에 없던 사람들에게까지 무작위로 안 보여줘도 된다. (다시 느닷없는 이제이 영어 한마디: 그냥 '사양할께요' No thank you. 말고, '말은 고맙지만 됐어요'를 Thanks but no thanks 라고 한다.) 흔히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다 사진 안 찍으면 후회한다고도 하는데, 그게, 술먹은 얼굴이 오늘의 모습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술깨고 하루 더 있다 찍어도 많이 늦지 않는다.

우리 이제 꽃단장하고 찍은 사진 포샵하고 뿌옇게 처리해도 별로인 나이인데, 실상은 인터넷초반부터 이미 술먹은 사진이 보기좋은 사람 별로 없었고,(지금은 낫살먹어 배나 째지 그때는 어설픈 나이라, 처음에 모임 사진들 보고 친구들이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가 한국에 없어 그런 사진 안 찍혀도 되는것이 너무 다행스러웠다면 또 쌀쌀 맞다고 구박할라나?) 지금 한창인 젊은 애들도 술먹고 찍은 사진은 별로다. 그 자리에서 분위기 좋을때 서로 직접 보는 것하고 사진으로 남기는 것은 다르다. 내 의견을 무시하고 싶으면 지금 온라인 이미지를 살짝 검색해서 남 술 먹은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기 좋거들랑 당신의 사진도 올려라.
내가 하도 궁금해서 여기저기 물어봤는데 자기들도 보기 싫은데 말도 못하고 있는 거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내가 솔직하게 말하면 party pooper이라고 하겠지? 그래서 불굴의 덕담정신으로 다들 참아야 하는거지. 나만 못된거지ㅠ

이게 다 나만 늙어가는 것이 서럽고, 예쁜 사람들이 너무 배가 아파서 하는 말이니까, 그냥 각자 거울속의 자신에 도취해서 조용히 살아 가자는 말이다. (이정도 말하면 더럽고 치사해서라도 죽어도 온라인에 술먹고 사진 안 올려야 하는데 그래도 또 올릴 사람들 틀림없이 있다는데 한표)

현대 도시인의 고질병: 자랑질에 관하여(1)


이 '질'도 우리 없는 사이에 한국 사람들이 많이 쓰기 시작한 말이다.
별로 듣기 좋지 않고, 가끔은 잘못된 용도로 사용되는 것은 나도 거슬린다.
하지만 이 자랑질이란 말은, 누구나 이따금 너무 기쁜 일이 있어 저절로 나누고 싶은 마음에 결과적으로 남에게 자랑을 하게되는 것을 넘어서서, 습관적으로, 혹은 거의 반의무적으로 자랑을 '일삼는다'는 점에서 적절한 것 같아서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 같지만, 혹시 누가 자랑을 좀 하더라도 별로 부추켜 세워주고 싶지 않으면 고개나 끄덕여주고 입 다물고 말지 꼭 자랑질이라고 놀려 머쓱하게 만드는 것은 안 했으면 좋겠다.(더 나아가, 놀린다고 기분 나빠하면 농담인데 그런다며 속 좁은 사람 만드는 것도 안 했으면 좋겠다. 때리면서 아프지 말라는 게 말이 되나? 말한 사람만 웃으면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도대체 언제 깨닫는지ㅠ)

...

내가 위에서 말했듯이 내가 말하는 자랑질은, 주로 이 '의무적인' 자랑질, 아무도 시키지 않고, 즐기지도 않지만, 듣는 사람은 물론 하는 사람들도 왜 하는지 아무도 모르면서, 피리부는 소년을 따라 강물로 뛰어드는 쥐들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도시 생활이란 것이 아무래도 경쟁이 심하다보니 그런지, 무리가 커지다 보면 그 안에서 덩달아 자랑을 하지 않다가는 뒤떨어지는 느낌이 드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논리적으로' 봐서도, 남들이 그릇자랑하는데 가만히 있으면, 나는 그런거 없다, 나는 그런거 모른다는 것처럼 보이고(그렇게 보이면 왜 안되는지는 본인의 가치관에 대한 일이지만), 남들 유럽여행 얘기하는데 거기 참 좋더라고 한마디 안 거들면 유럽 여행 가 본 티가 안 나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물론, 언제든지 내가 더 부정적이고 삐딱한 사람일지도 모르는 위험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그냥 조촐한 집밥 보여준건데 그릇도 보인 것 뿐이라고, 그냥 애가 상 받은 것이 흐뭇해서 얘기한 것 뿐이라고 하면 내가 반성할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일껏 한국 먹거리보고  군침을 흘리고 있는데 다들 갑자기 음식이 아니라 예쁜 그릇 '이름'을 알아봐 줘야 하는 이유도 모르겠고, 그러면 또 너도나도 앞을 다투어 사진도 없는 다른 '이름' 과 가격대까지 들고 나오는 이유도 그저 정보공유 차원으로 나도 정말 믿어주고 싶은데, 실제로 가까운 친구들에게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그릇 이야기가 나오면 즉석검색을 해서라도 대화에 끼려고 하는 사람들 많고, 아이가 공부를 잘 못하면 입시철에는 갑자기 잠적을 해야한다는 서글픈 이야기를 들어서 하는 말이다. (참고로 내가 부러워 할 그릇은 종이로 만든 양념치킨 그릇이며, 건강에 해롭게 그림도 조금 벗겨진 싸구려 플라스틱 짜장면 그릇이다. 이런거 자주 자랑해 달라!)

...

일단, 자랑을 꼭 해야만 한다면 그 주체는 대략 본인에 한정되는 것이 좋겠다.
사실 듣는 사람에게 별로 상관없는 것이라면 기본적으로 직접 내 일도 아닌 가족의 일도 자랑 아니라 어떤 이야기도 하고 싶은 이유자체를 잘 모르겠지만, 경제학적인 입장에서 사회 현상을 재미있게 분석한 Freakonomics에서(시간나면 한번 읽어보시라 재미있다) 통계상 에미애비가 아이에게 가장 크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바람직한 배우자 찾아 최상의 유전자 물려주는 것이 대충 다라고도 하듯이, 결국 즈이들이 알아서 할 일인 직계자손님들의 안녕에 대한 자랑도 의미없긴 매한가지다.
내가 낳은 내 새끼 자랑 왜 안되냐고?
그 이유는 간단하다.
최선의 경우, 가족처럼 정말 기뻐해줄 사람들이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내 새끼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자기 아이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플정도로 자기눈에 예쁘면 딱 그만큼에 반비례해서 남들 아이들은 웬만해서는 별로 예쁘지 않다. 그것을 자기는 느끼면서도 남들이 그러는 건 뜻밖에들 잊는다. 내맘 같거니 하고 남의 자식사랑을 이해해주는 것 하고, 실제로 나도 남의 자식을 부모처럼 예쁘게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또, 내 아이가 내게 세상에서 가장 예쁜 녀석인 것은 그렇다치고, 정말 세상에서 객관적으로 제일 '예쁘게 생겼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른 문제다. 영 콩깎지 안씌면 나 나쁜 엄마인가?
애개, 그게 최선이면 최악의 경우는? 가족들처럼 정말 기뻐해 줄 사람들이 아니면, 자랑해봐야 본능적으로 배나 아프고 못 되기나 바라는 법이다.
You do know it's true. Face it!

그러므로 그래도 기본적으로 가장 가까운 가족이 아닌 에게의 정상적인(?) 자랑은, 주로 자신이 애쓴 결과로 무엇을 성취했을때 나누는 정도가 바람직 할 것이다. 결혼을 한다거나, 승진을 했다거나, 합격을 했다거나, 취직을 했다거나 하는 '마땅히 궁금해 할 소식을 전하'는 것의 일환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디 놀러갔다고 너무 좋아서 보여주고 싶어 올리는 사진도 까이꺼 괜찮고, 정보공유 차원에서 유명한 맛집에서 먹어본 소감을 올리는 것도, 친구들끼리 모였다고 기념 사진 찍어올리는 것도, 객관적으로 미인이거나 아니거나 술 안 먹고 다들 심신이 건강하고 반듯한  얼굴일때만 찍는 다는 조건하에, '기본적'으로는 괜찮다. (나중에 '술과 사진 사이'에서 다시 이야기합시다)

따라서, 자랑 한 만큼 나눌 것 아니면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생긴 것'에 대한 자랑은 하지 말아야 한다.
듣는 사람 나눠 줄 것 아니면 얼결에 뭐 선물 받았다고 보여 줄 필요 없고, 한턱 낼 것 아니면 사업 대박 터졌다고 자랑하는 것도 의미없으며, 다들 초대해서 나눌 것 아니면 배우자님, 자녀분들이 이렇게 저렇게 잘해주시는 거 자랑도 그만 해야 한다. 지금, 엇 나는 꼭 자랑할 것이 있는데 싶은 당신, 감축 드린다. 그렇게 자랑 할 것 많은 당신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다 흐뭇하다. 그래서 굳이 해야겠다는데 내가 말릴 길은 없다. 그저 남들이 당신 본인 마음처럼 그닥 기쁘지는 않다는 것이나 알고 하시라는 말이다. 안다고? 그러면 참 이상하다. 자랑할 일도 못되면 왜하며, 정말 자랑할 만한 일이라면 남 염장질러서 무슨 좋은 일이 생기나.

마찬가지로 스스로가 자기 배우자나 자기 아이들에게 이렇게 잘한다 하는 자랑도 제 상투 올리는 짓이다.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여기며 조용히 잘 하고 있을 일들을 본인이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대상도 그리 생각하는지는 거기다 물어볼 일이다. 요리 좀 한다는 남자일수록 와이프 음식에 잔소리 많은 법이고, 자식교육 잘 시켜서  공부 잘한다고 흐뭇해하며 자랑하는 부모일수록 전인교육한답시고 어차피 요즘세상에 잘 보지도 않는 애먼 티비 없애 애들 정신적 압박감이나 주고, 퇴근하고 집에가서 아이 잘까봐 감시하느라고 자기도 잠을 못자면서, 내가 이렇게 니 자랑을 해놓았는데ㅠ 니가 잘못되면 무슨 망신이냐며 아이를 잡더라.

자랑할 거리가 아닌데 자랑하는 것도 이해가 안간다.
자기가 개인취향으로 선택한 종교인데, 그 신을 잘 믿는다는 사실이 어떻게 자랑할 일이 되는지 틈만 나면 자신의 믿음(의 파워)을 자랑하는 것도 이상하고, 소위 현모양처라는 말의 정의도, 그냥 자기가 맡은 역할 나누어서 최선을 다해 하는 것이 자랑할 거리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흑백으로 말 할 수는 없지만, 뭔가를 자랑한다는 것 자체가 '나쁘지 않고 좋다'는 의사표현일텐데, 하나가 좋은거면 다른 하나는 안 좋은 것이어야 하지 않나?  '그 분의 힘으로 큰일을 해 낸' 사람이 훌륭한 거면, 그 종교 안 믿어 '그 분'이 없는 사람은 뭐며, 현모양처가 칭찬할 일이면 바쁘게 직장다니는 와이프는 나쁜가? 반대로 살림에 보탬이 되는 일하는 아내가 자랑할 일이면 살림하는 아내는 집구석에서 밥만 축내는건가? 왜 우리는 그냥 자꾸 자기 삶이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고 하는 합리화가 필요한가?
사람이 자기 사는 것 가지고 별로 자랑스러워 할 일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하는 사람대로,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또 그 사람들대로, 집에서 살림하는 사람들은 또 그 나름대로, 누구나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 다 아름다운 것이라서, 다 자랑스러운 일이라서, 누구라도 특별히 내가 무엇무엇을 하고 있다고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셈이라는 말이다.
그냥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는 것이 각자 눈부시게 훌륭한 것이니까.

다들 좋아서 모여서 같이 놀면서 재미있으면 됐지 자꾸만 우리 모임 정말 좋지 않니? 착하고 좋은 아이(?!)들이지 않니? 하고 확인하려 드는 것도 딱하다.
하도 '우리'들은 또래 모임들과 달리 곱게 늙어간다고 흐뭇해들 해서, 거울보기 싫고 미국산골에 살아 배우 말고는 우리또래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생겨야 하는 줄 모르고 살았던 쑥맥인 나는 다른 사람들은 우리나이에 엄청나게 다르게 생긴 줄 알았다.(진심ㅠ) 그러다 다른 친구들이 즈이들 속한 온라인 커뮤니티나 친구들 모임 사진 보여주는데 보니 세상에 '남들'(!)도 다들  예쁘기만 하더라.
내가 이러저런 비판을 해댄다고 성격이 삐딱하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안다고 주장한다고 생각하는 당신의 마음을 돌이킬 방법은 없는데, 이게 다 처음에 곧이 곧대로 듣고, 말하는대로 믿었다가 나중에 뒤통수 맞고, 등에 칼맞고, 발등 찍히고 나서 배운 교훈들이다. 실상은 내가 남보다 몇십배 더 둔하고 멍청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달라.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찍힌 발등 싸매고 계속 그 도끼로 도끼질을 하는데, 나는 나 찍는 도끼 싫어서 그냥 나무 안 베고 잔가지 때면서 살기로 했다는 점 뿐이다.

자랑도 빈말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워낙 소셜기능상 빈말이 많은 도시생활이라고 하지만 심지어 자랑도 말은 이렇게 하고, 행동은 저렇게 하는 것이다!
아이가 이뻐 죽겠다고 틈만 나면 자랑이면서, 얼마나 아이가 순식간에 자라 집을 떠나는 줄은 모르고 맨날 똑같은 사람들이랑 술 먹는다고 집에 안 들어가는 사람들은 뭔지(이래놓고 나중에 아이가 크면 '이유없이' 자기를 우습게 안다 그러겠지), 여동들에게는 자기가 남편 눈치만 본다고 틈만 나면 하소연이면서 맨날 방방곡곡 술자리는 다 찾아나와 남동들 술안주까지 입어 넣어주는 사람은 뭔지, 어정쩡한 우리나이에 인생을 즐기려 회사를 갑자기 관두었다고 자랑하는 것을 다들 믿어주는 척 하느라고 힘들어 죽겠는데, 다시 덜썩 재취업을 했다고 또 자랑하면 뭐라고 말하라는 건지, 자기는 사진 찍는거 싫어한다면서 술먹어서 얼굴색 변한 사진 자꾸 찍어올리는 사람은 뭔지(자기 얼굴 자기 마음대로 올리고 싶으면 올리는 건 좋은데 괜히 말로 싫어한다 그래서 황당하게 만들지 말자고).

오고가는 자랑속에 초코파이처럼 싹트는 정이라고?
글쎄, 내가 아는 한,
알고 싶지도 않은거, 별로 부럽지도 않은거 괜히 보여주고 자랑하면,
다들 또 억지로, 예쁘네, 좋겠네, 자랑스럽겠네, 부럽네, 맛있겠네 하고 또 귀찮게 맞덕담해줘야 하고,
또 대충 맞덕담인 줄 알면서도 다시, 고맙다, 니꺼가 더 좋잖냐, 쑥스럽네 하고 답덕담을 해야 해서
다들 뒤마당들에 천하에 흥부박씨라도  싹트고 계신가 나는 모르겠다.
어마마 느이 애들 귀엽다고 예쁘다고 사진 올리라고 막 그래놓고 진짜 올린다고 오프모임에서 흉보는 것도 정말 모르고,  술자리에서 분위기상 조금 망가지고 그랬던 걸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들은 오해 할 수 있는 '후기'랍시고  올리는 글에 들은 뼈들이 전혀 안 느껴지나보다.

내가 이런 거짓들에 넌더리가 나서 도시를 일단 닫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은 등뒤에서 흉 봐가면서도 대충 만나며 사는가 모르겠는데, 나는 무리가 내 친구 흉보면 혼자 나서서라도 방어해야 하고, 누구 흉보고 싶을 정도로 싫으면 그냥 안 만나고 만다. 그리고 안 만나도 된다. 세금도 더 안내더라. 그런 사람들 만나는게 더 외롭지, 싫은 사람 안 만난다고 더 외롭지도 않더라.(Believe me. I  know)
속좁고 고지식한 것도 있고, 나는 그냥 재주가 없어서 두 얼굴 잘 못한다. 기본적으로 이적지 '거짓으로 웃는 법'은 배울 기회가 없었다.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조언할 줄 알고 있는데, 나 같이 그렇게 답답하게 안 살고 처세술 능한 당신, 그래서 정말 행복한가?
빈말이 나쁜 말 하는 것보다 좋고, 서로 좋은 말 해주며 좋은게 좋자는 것 같지만 빈말이 거짓의 다른 얼굴인 것은 왜 부인하는가? 빈말 잘하는 사람치고 진실 된 사람 못봤고, 그런 사람일 수록 앞에서 웃는얼굴로 사탕발림하고 뒤에서 뒷말하기 즐겨하더라. 자기는 누가 싫을 수록 앞에서는 더 잘해준다는 사람 앞에 앉아서, '완전'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 그러니까 니가 내가 좋다는 거냐 싫다는 거냐 하고 속으로 반문 안 할 수가 있나? 그건 덕스러운 거고 나는 모나서 안된단건가?(안됨말구)

아무튼, 일껏 하늘이 아름다와서 문득 보여주고 싶어 사진 올렸더니 풍경 예쁘다 안 그러고 '사진' 잘 찍는다, 기종이 뭐냐 그래서 맥빠지고, 멋진 사진이 있길래 님도 내 맘같은 줄 알고 풍경 좋다 말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아니 블라블라 기종으로 뭐라뭐라 수법으로 찍은 사진인가본데 하고 아는척을 하기 시작하면 그게 아니었어? 싶어 또 머쓱한 건 나만 그럴지도 모른다.

처음에 말 했듯이 다들 정신없이 이러고 사는 이유는 단순하고 뻔하다. (내가 남들 가십을 전하고 다니지는 않아도-혹은 그래서 그런지- 듣기는 많이 들어서 좀 안다)
자랑 안하면 또 남들이 부정적으로 넘겨 짚으니까 그런거다.
애 자랑 안 하는거보니 공부 별로 못하나보다, 어째 조용한거 보니 애 후진 대학갔든지 대학 떨어졌나보다, 신랑 자랑 안 하는거보니 돈 별로 못 벌어다 주나보다, 와이프 자랑 안하는거 보면 내조 잘 못하는 모양이다, 배우자나 애들 사진 안 보여주는거보니 못 생겼나보다, 입 다물고 있는거 보니 저 메이커 이름도 모르는 모양이다, 어쩐지 지난 번에 보니 좀 없어보이긴 하더라.
처참하다, 그지?
그렇지만 잘 들어라.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건 남들 문제다. 이런저런 자랑해봐야 비교해서 어차피 밀리는(!) 것도 시간문제고, 내가 이길만 해도(!) 그거 뻥일꺼라고 남들이 안 믿고 입 삐죽여버리면 그뿐이다. 내가 어떻게 (잘) 사는가를 남에게 증명해야 할 이유도 사실 방법도 없다. 자랑을 꼭 해야 행복해진다면 그것 자체가 사실 당신의 삶의 어딘가 부족하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혼자서, 아주 작은 것에 가만히 아 좋다~ 하고 미소짓는 순간이 있다면 남의 인정 전혀 필요없이 그걸로 스스로 잘 살고 있는 것이지 않나.

...

아는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원래 잘 모르는 사람들이 모이면 어설픈 비교질에 자랑질을 하고, 정말 가까운 친구들끼리 만나면 걱정이나 불평을 늘어놓게 되어있다.
먼저 쓴 글에 나오는 '짠함 혜택자'들처럼 불평도 과하면 별로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어떻든 마음이 편한 사람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와,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견제를 하는 분위기는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진화론자인 내가 안 집고 넘어 갈 수 없는 부분은, 인류가 애초에 자랑을 좋아 하도록 진화한 이유는, 근본적으로 이성을 유혹하여 자손을 번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사냥 채집 시기에 정보를 공유하는 데 유용했기(꿀벌의 댄스)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자랑의 기능(!)에서 볼 수 있듯이 자기에게 별로 실질적으로 도움이 안되는 것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게 되어있다.
사람들이 가십 좋아하고 흔히 소문에 기웃거리는 것과 얼핏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은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의 자랑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자랑 '못할 것'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주목하자.
꿀이 어디있는지 알려줄 것이 아니면 관심없고, 저 수컷사슴에 비해 '내 뿔이 더 큰 것'이 중요한 것이다.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캐내는 이유자체가 나와 비교해서 나보다 니가 못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일것이다. 어설픈 자랑해봐야 항상 나보다 더 큰 뿔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은 잊는다.
그러니 사람들이 별로 남의 자랑을 듣고 싶어하지는 않으면서도 자기는 계속 불포화지방산, 트랜스지방만 가득들고 영양가도 없는 이 자랑이 하고 싶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 자랑질은 그런면에서 꼬리뼈나 아가미처럼 기능이 퇴화되었고, 마땅히 퇴화되어야 하는 셈이다.
. http://www.epjournal.net/wp-content/uploads/ep06386392.pdf,  http://web.stanford.edu/~rbird/rbird/Publications_files/showoff.pdf

자랑하는것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냥 뭘 자랑하기 전에, 세상은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나를 좀 알지만 실제로 내가 자랑하는 것들에는 별로 관심없는 사람들,
그리고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
<세종대왕형양녕대군십팔대손차녀실록지리지 오십페이지 넷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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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February 25, 2015

현대 도시인의 고질병: 후광효과에 관하여 (2)



고등학교 때, 입만 열면 자기 '가족' 자랑을 하는 아이가 있었다.
얼핏, 자기 자신이 아니라 가족을 자랑하다니 가족 사람이 지대한 착한 아이인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가족이 아무튼 직계가족 뿐 아니라, 삼촌이 디자인 하시는데 참여하셨다는 건물이며, 남동생의 친구 잘 생긴 것에 이르기 까지 다른 사람이 알아서 아무 소용이 없는 것들의 소소함과 그 빈도가 상당한 것이, 아직 덜 여문 나의 의식에는 신기한 일이었고, 틀림없이 본인 자랑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듣기가 싫은지 나도 잘 모르겠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좀 혼란 스럽던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어느 국사 선생님이 들어오셔서는, (아마도 선생도 사람이다보니 본인이 주변사람과 뭔가 수틀리는 일이 있어서 그랬지 싶은데) 괜히 자기 주변 사람 자랑 해대는 사람은 자기 자랑하는 사람보다 더 시시한 사람이라고 하셨다. 어려서부터 무조건 교사라고 해서 존경심을 품기가 어려웠던 천생반골 내가 그 양반 말씀이 곧 진리라고 생각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아이들이 일제히 눈에 띄게 고개를 돌려 그 아이를 쳐다보던 것이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고 하겠다. 그래서, 아,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었구나 싶으면서도 내가 다 민망했었던 기억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 이후로 그 아이의 그런 습관이 바뀌지는 않았다. -  - ;;

...

나중에 자라서야 딱히 가족이 아니라도 주변의 빛을 얻어 본인이 빛나고자 하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더러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이런 사람들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이른바 Halo effect 후광효과를 노리는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1. The halo effect is a cognitive bias in which an observer's overall impression of a person, company, brand, or product influences the observer's feelings and thoughts about that entity's character or properties. It was named by psychologist Edward Thorndike in reference to a person being perceived as having a halo.
후광효과란, 후광이 뒤에서(앞에서도 아니다) 얼굴을 비추듯이, 어떤 사람의 성품이나 자질등을 판단하는데 있어, 그 사람의 주변사람, 직장, 가진 물건등이 보는 사람에게 부가적인 편견을 주는 현상이며, 심리학자 에드워드 쏜다이크가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남들의 좋은 점은 좀 배우지 않고서 근거없이 저 잘난 맛에 사는 사람도 많고, 주변사람 깎아 내리면서 딛고 올라가는 사람도 있는 세상에서 남 칭찬해가며 사는 것이 얼핏 덕스러운 면인 것 같지만,  적게는 명품백이나 비싼 차를 탐으로써 근사해보이려는 덧없는 노력에서부터, 잘난(?!) 주변사람들에 묻어 자기까지 덩달아 괜찮아 보이려고 하는 이 자랑질의 특화된 형태인후광효과를 노리는 사람들의  문제는, 아이러닉하게도 그런 사람일수록 주로 본인의 자존감은 떨어진다는 것이겠다. 물론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플 이유도 없지만, 나는 수저 하나 꽂을 땅도 없으면 사촌땅을 자랑스러워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느냐의 동기라면 물론, 자신이 가진 것만으로는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에 주변의 레퍼런스를 가져다 댄다고 보면 간단하고, (우리 형 싸움 잘해!) 옷이 날개라는 말도 있듯이, 누구나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아쉬운데로 조금은 이런 것을 추구하게 되니까, 똑같은 약인데도 유명 상표를 달면 더 잘 팔리고 인맥도 그리 중요하게들 여기는 것이겠지만, 이상하게도 멀쩡한 본인은 제쳐두고 주변 부각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자기 주변 인맥이나 덧없이 가진 것들로 자신을 포장하고 자랑을 일삼는 이런 사람들은, 보통 남에게 해는 입히지 않았으니 잘못한 것도 없고, 남에 대해서도 좋은 점만 늘어놓았으니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라고 만족스럽게 생각할런지 모르지만, 혼자서 항상 좋은 사람의 후광만 받고 나의 후광을 아무에게도 줄 생각이 없다면 이기적이라고도 볼 수가 있다.
좋은 사람들이 있어 정말 그 가치를 느낀다면 관심도 없는( Trust me, they don't care!) 3자에게 칭찬하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돈드는 것도 아닌데 받은만큼  당사자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하면 되는거 아닌가? 애초에 받은만큼 돌려 줄 생각이 없기 때문에 안전하게 그 그늘만 지키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부차적인 부작용이라면, 이런 사람들은 늘 누구와 있든지 자기가 아는 제 3자에 대한 자랑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막상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는 늘 나로써는 부족하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자신에게 그런 훌륭한 아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해서 듣는사람등에게 자신이 덩달아 훌륭해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실제로 있어주는 사람만 얼떨걸에 잃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옛날에 간호학 들을 때 질병의 증세중 하나가 그 몸의 일부가 존재하는 것이 인식이 된다고 배웠다. (시험에 나와서 기억이 나는 것 같다 ㅎ) 보통 무엇이 당연히 있으면 그 존재가 인식이 되지 않는다. 평화도, 돈도, 건강도, 부모님도, 없어지고 나야 그 없어진 자리가 나는 법이다. 나도 원래 좋아하지도 않던 짜장면인데, 없으니까 먹고 싶은것이지  매일 먹는 것이 짜장면이면 아마 다를 것이다.
건강을 잃어보니 맛있게 진한 커피 한잔을 마셔도 매번 더 밀려오는 감동이 있고, 갑자기 시어머님이 돌아가셔보니 부모님이 나이드신것을 더 절실히 깨닫고, 늘 자라면서 책이 부족하던 나다보니 미국에 와서 도서관 가득한 책들을 더 귀하게 여기고, 가난한 유학생활을 해보니 아이에게 대학등록금이라도 내 줄 수 있는 것을 감사하는 것처럼, 무엇이 없어봐야 '없다'는 것이 뭔지 정말 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혼자 조용히 감사하는 것은 좋은데, 그것이 한여름 아침에 무더위 시작되기 전의 잠깐의 서늘함처럼 감사하는 마음으로 있을 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빠진 이자리에 자꾸 혀가는 것처럼 어쩌면 이미 없어진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전전긍긍하는 것이어서야 안되지 않나 싶은 생각이다. 재차 자기가 가진(?) 그 좋은 것들을 스스로 믿지 못하고 남들에게 강조하고 증명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혹 그 좋은 것들이 정말 내게 항상 있어 줄것이라고  편하게 믿을 수 없어서 번번히 확인해야 하는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생기는 까닭이다.
사실이 그렇다면, 나도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것들을 귀하게 생각하고 감사하는 것을 넘어서 남들에게 '내것'으로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지 않나.

'자랑질에 관하여(1)'에서 말했지만, 냉수도 안 담아마실 그릇자랑은 물론이고, 주변에 이런 이런 훌륭한 사람이 있다고 말해서 내가  덩달아 좀 '있어 보일' 것(x)이라고 생각하거나,
정신병자가 자기 미쳤다고 안 하고,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들일수록 주로 자기가 미움 받는 줄도 모르게 마련인데,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아 좋다고 '본인이 주장하는' 것이 본인의 가치를 높인다(x)고 생각하
는 것도 나는 사실 논리적으로 신빙성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주변에 그 훌륭한 사람이 많다고해서 실질적으로 도움(x)이 되는지도 의문이다.(애도 이만하면 나없이 지 앞가림은 할 정도로 다 컸겠다, 어차피 죽으면 썩어질 몸, 남의 신세져가면서 살게되면 차라리 그냥 굶어죽으리라 생각하면서 사는 나로써 누가 실제로 남의 아닌 덕을 봐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다들 인맥이 그렇게 중요들 하다니 말이다)

내가 살면서 번번이 느낀 것이, 돈도 쫒으면 안되고 따라오게 해야 하듯이, 결국 내게 가장 도움이 많이 된 사람들은 오다가다 만난 사람들이었던 것처럼, 사람도 내가 쫒는 것이 아니라 나를 따라오게 해야 하는 것이었다. 늘 나의 부모님은 염려하시지만, 잃을 것도 별로 없는 나라서 그렇겠지만 이적지 그 유용하다는 '인맥'이 무슨 아기돼지 삼형제 통나무집도 아니고 '쌓으려고' 해 본 적도 없고, 내가 그렇게 안해서 피해본 적도 없고, 나도 애써 잘보이려고 접근해 오는 사람들보다는 어쩌다가 생판 남에게 뜻밖의 도움을 주게 되더라 이말이다.

...

어떻든, 이런 지나친 후광효과 추구자들은 다름아닌 스스로의 아이덴티티의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말하자면,
언제나 실제 자신이 현재 실제로 열심히 하고 있는, 그래서 그 자체로 훌륭하고 값진 일, 그리고 그와 관련된 사람들과 일이 아니라, 자신이 되고 싶어하는 멋진 사람들과, 그들의 일들만 막연히 동경하고, 실제 자신이 아니라 그 이상과 자신을 동화하려고 는 사람,
그 자체로 아름답고 소중한 실제의 자신이 아니라, 언제나 '남이 좋게 생각하는', 혹은 남들이 좋게 생각'할 만한 가치가 있다' 고 믿어지는 자신으로 이루어져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의 자부심보다 '남들이' 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가장 중요하고, 나아가 자신의 삶의 전반을 남의 시각으로 평가한다. 누구나, 남들이 나에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내가 어떻게 살아았는가를 생각해보게 되는 경향이 다소 있겠지만(다단계좀 하다보니 주변에 사람들이 하나도 안 남았다든가 ㅠ : 그런데 이런 사람들일 수록 또 남들이 더 안 도와준다고 서운해 하기만 하고, 자기가 주변에 피해준 것에 대해 전혀 미안한 것을 모르더라만서도ㅠ) 그리고 어느정도는 자기 삶을 돌아보는데 있어 한번씩 그런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지만, 그 정도가 '매우 심한'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다시말해, 무슨 이유에서든,
자신의 중심이 자신이 아니고 외부인 사람들.
자기가 생각할때 주변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은 자신은 자신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
실제로 존재가치가 있는 '실제'의 자신, 자신의 아름다운 '본연의 모습'은 부인하고 싶은 사람들,
자신이 자신이 아니고 싶은 사람들,
자신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사람들,
결과적으로/원인적으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공자가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쳐다본다고, 이런 사람들은 후광이 곧 자신이라고 여기고 있으니, 안타깝게도, 실제 자신이 아닌 '껍데기' 후광들을 넘어서 자신을 자신으로 보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것을 그 자체로 감사히 기쁘게 받아들이기보다 역으로 그들이 자신의 가장 가치있는 부분(후광)을 거부한다고 느끼고, 심지어 불쾌해하게 된다.
자기는 보지말고 후광을 보아달라고 하는 것이다!

패션모델이 갖추어야 하는 요건이 배우와는 다른 것이, 모델은 얼굴이 개성이 너무 강해 눈에 띄면 옷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배우도 이따금 시상식장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너무 요란한 옷을 입으면 본인이 가려져버리고 웃음거리가 된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빛나고 싶으면 자신만의 단순하고 개성있는 옷을 입고 스스로를 내 보일 일이다. 주변으로 반사광을 받으려 하지말고 스스로의 빛으로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믿으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위에서 '무슨 이유에서든' 이라고 내가 얼렁뚱땅 넘어간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부분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해답을 찾아야 하는 부분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누가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없는 까닭이다.
아무리 진정한 사랑을 받아도, 사랑한다는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말만 중요하고, 그 '사랑받는 본인의 가치'는 정작 깨닫지 못하는데, 그 빈 줄도 모르는 빈자리를 채울 방법은 없지 않는가.
정작 스스로가, 사랑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면, 정작 본인은 허름한 누더기를 걸치고, 얹혀 살고 있는 훌륭한 궁궐을 자랑하며 돌아다니며 만족하고 있는 장님과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Thursday, February 5, 2015

하나뿐인 지구 vs 하나뿐인 나

최근에 오바마 대통령이 알라스카에 야생동물 보호구역 지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오일 발굴을 제한하는 안건을 내서 요즘 알라스카인들이 반발이 심하다
http://www.nola.com/politics/index.ssf/2015/01/where_the_wild_things_are_obam.html

아직 장기 실업인구가 많이 남아있고, 부동산 건설 및 가격상승률 등이 미미한 가운데, 개개인이 어떻게 느끼든지간에 통계수치로만 보면 부시임기가 끝나가면서 본격화되기 시작한 미국경기의 침체가 요즘 겨우 회복추세라고는 한다. 그러나, 중동오일생산지역의 기름값 인하 정책으로 기름값이 너무 내려서, 기름값 내렸다고 신이나서,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하고 황사없는 날을 노려 들로 산으로 놀러가는 사람들은 좋은지 몰라도, 기존 방식으로 오일을 생산하는 알라스카, 텍사스, 그리고 역시 텍사스, 노스다코타 등 프래킹으로 오일 생산하는 지역은 뒤늦게 외려 경제적으로 별로 좋지 않은 상태인 것은 관련자가 아니면 잘 모르는 일일 것이다. 

그 중, 관광사업 외에는 오일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알라스카 역시, 최근 오일때문에 적자가 나고 있는데다, 최근 해외 파병이 늘어 주둔 군인들 수가 줄어들어들 전망이고(군인들이 줄어들면 그 가족들 및 그들의 수입에 의존하던 사업들도 기울기 때문에 절대 무시 못할 인구이다. 미부대가 사라진, 그러나 부대찌개는 안 남은 의정부를 생각해보면 된다)미국 전반 경기가 다소 회복되면서 고등학교나 대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전선으로 뛰어드는 학생수가 늘어나니 대학교육에 투자하는 사람들 수가 외려 줄어들고, 인구는 주밖으로 이동하니 주립대 수익도 줄어드는 등, 안 그래도 주정부가 상대적으로 뒤늦게 곤란한 형편인데 자연보호구역이다 뭐다해서 그나마 오일 생산량이 더 줄어들면 좋을 리가 없는지  원성이 높은 부분이 있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로, 무릇, 대통령이 임기 말년이 되어가면 뭔가 그럴듯한, 교과서에 실릴만한, 그리고 시험에도 살짝 꼬여 나올만한, 업적이 필요하고, 그런 경우에 루즈벨트 이후로 시작된  소위 '자연 보호정책'이, 따로  돈도 안들고 때깔도 좋은 것으로 가장 자주 사용되는 만만한 정책 중 하나다. 이미 우리나라도 아시안 게임정도는 동네잔치가 된 분위기긴 하더라만, 대통령이 하야(!)하시고 나면 이름을 단 도서관이 건립되는 것 말고도, 대한민국 5공 올림픽유치에 필적하는 그 찬란한 뭔가가 필요할 뿐이다. 
그러니 사실 빛좋은 개살구 허울일 뿐인 부분도 있고문제가 지역은 그리 크지 않은 부분이라서 실제로 그렇게까지는 영향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또 정치인들은 이런 일이 있을 가만히 있으면 지역경제에 무관심하다는 인상을 풍기기 때문에도 그렇고, 이참에 전국방송도 타서 고등학교때 나 무시하던 녀석에게도 으스댈 수 있는 좋은 기회이므로, '우리는 어떻게 살라는 얘기냐, 못살겠다 갈아보자' 나날이 튀기는 분위기인 것이다.

오일관련은, 오일생산국도 아닌 한국인들은 관심도 없고, 관심이 있어도 사는 사람만큼 동감을 하기도 어려운 주제긴 하다. 우리도 많이 다르지 않다. 5년마다 옮겨다닌 전력으로는 알라스카에 가장 오래 살았고 우리가 한국보다는 미국 경제전반에 많이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일단 현재 알라스카 경기가 좋거나 말거나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 살이라 그렇기도 하고, 내가 미국에 살아도 한국사람이고, 알라스카 살아도 도시사람이라서도 그렇고 뭐 그렇게 미국의 경제나 알라스카 환경에 충성을 다짐할 필요는 없다. 그저 누구나 지구의 주민인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자연보호'에 전혀 무관심 할 수도 없는 정도다. 

하지만 오늘은 자연보호에 관한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그보다, 사람의 심리와 행동에 관심이 있는 나로써는,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벌어지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자는 것이.



이스트섬의 거석상을 다들 아실 것이다. 리더스다이제스트 판 10대 불가사의니 뭐니 해서 흔히 외계인이 와서 건설하고 것이 정설인 회자되고 있지만,  Jared Diamond 베스트 셀러 난픽션 Guns, Steels, and Germs 읽으면 사실은 하나도 불가사의  것이 없다(한국에도 번역이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고 강추도서이다. 책을 읽으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또 하나 '신비롭게' 여겨지던 마야 잉카 유적도 알고보니, 그저 전쟁에 지친 주민들이 서울 주변에 신도시 생기듯 더 살기 좋은 인근 지역으로 떠나간 것에 불과한 것이어서 쓴 입맛이 다져질 정도였다.

역사는 승자가 쓰는 것이라고 하듯이, 아무리 결과가 인류의 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아도 흔히 역할을 한 인간적 요소요소는 '어쩌다가'로 점철되어 있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혼탁한 스토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허탈하기 짝이없지만, 모든 것을 깔끔한 인과관계로 설명하려 드는 것은, 모든 원인을 분석하여 주식시장을 완벽하게 예측하거나, 모든 합격생의 코와 입 사이의 거리를 재어 입시결과를 예측하려고 하는 것만큼이나 덧없는 일이다.  
하여, 
어쩌다가, 
섬의 정치인(?!) 들이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터무니 없는 거석상들을 짓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여러가지 용도로 아무 생각없이 (Come to think of it, you can't really blame them, considering we are not any better.) 나무를 베기 시작했고
섬은 결국 마지막 하나 남은 나무까지 베는 순간 사람들이 없는 불모지가 되었고
따라서 사람들이 떠나고/죽고 거석상만 남은 미스테리(!) 섬이 되고 것이다
나도 천생 도시사람이라 잘은 모르지만 인간이 나무 없이 풀만 가지고는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quasi 여담으로 한국은 우리 없는새에 여전히 나무는 별로 없이 어디 베트남분위기 비슷하게 사방에 잡풀만 무성하게 되었던데 생태계는 어찌변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워낙 산이 많은 나라라 온국민이 엄마야누나야 골프장 가자 분위기인데도 인구대비 늘 모자라는 골프장 짓는다고 산 좀 깎는다는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이해한다는 것과 지지한다는 것은 다르고 나는 골프바지 입기 싫어서라도 골프 안침-, 일껏 여의도 광장 없애고 나무 꽂아 억지 공원 조성해놓고는, 교통혼잡한 남대문, 광화문등에 블락쳐서 녹지도 아니고 그늘도 없는 메마른 '공간' 점령해놓은 건 무슨 컨셉인지 모르겠다. 설마 월드컵때 모여 같이 응원하자고 만든건 아닐테고... 하지만 이쯤에서 주제관련 적은 의문은 일단 스탑)

문득, 여기서 내가 결국은 자연보호주의자(영어로는 흔히 약간 빈정거리는 분위기로 대략 '나무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tree hugger 이라고 부른다) 분위기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보다 나는, 하나의 종으로써의 인간과, 다시 그 개개 구성원, 그리고 지구와의 관계에서 이 '자연보호개념'자체를 바라보자는 이야기다. 이왕 인간이 훼손하고 있다는 이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면, 과연 인간은 지구를 위해 어디까지 희생해야만 하며, 희생해야한다면 누가, 그리고 누가 그 희생대상을 결정해야 하는가 하는가 말이다. 간단히 말하면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다. 

한명이 죽으면 비극이고, 수십명이 죽으면 통계일 뿐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한 세계가 끝난다는 말도 있다. 
나는 본래가, 마치, 비행기나 빌딩에서 단체로 죽으면 비극이고 기억되어야 일이고 개인적인 죽음은 사소한 일인 것 같이 생각되는 것이 불만이다. 9.11 피해자들도 물론 애통하지만, 음주운전 피해자도 똑 같이 애통한데 전자는 따로 더 추모를 받는 것이 생각해보면 불공평하다는 말이다. 안전관리를 잘 해서 다시는 배가 사고나지 않도록 하는데는 누구나 적극 동조하고 힘을 모으지만, '살짝 한잔'하고 차를 몰고갈지 아닐지가 심지어 고려의 대상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불감하기 쉽다. 뭔가 큰게 터지면 다들 목소리만 높이지 각자 변해야 하는 부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그때 뿐인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인생 한번 살다가 가면 그 뿐이라지만 누가 어디서 어떻게 죽든 개인의 목숨은 그 개인에게는 하나 뿐이므로 숫자로는 계산 될 수 없는 것이고, 한 사람이 죽으면 남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개인의 역사는 그걸로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나와 내가 아는 사람 뿐 아니라 사회나 인류 '전체의 안녕'도 도모하려 하는 것일까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볼 일이다. 

이 소위 altruistic behavior '이타적인 행동'이란 것을 들여다 보자. 
흔히 사회의 기능이나 종교를 강조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타적인 행동은 high virtue이거나 종교적인 선행인 것처럼 설파되어진다. 하지만, 전혀 이런 쪽의 '가르침' 없는 동물이나 원시인들도 종종 어떤 목적으로든 이타적인 행동 보인다. 따라서 거의 동물적인 본능으로도 간주 있는 이타적인 행동을 인간들이 보인다고 해서 과연 정말 이타적인 motive 의도/목적에서 오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없다. 최소한 다같이 잘 살자, 너 살고 나살자이지 너살고 나 죽자는 아니니까 말이다. (http://goodnature.nathab.com/is-animal-altruism-real/) 
동료를 구하자고 몸을 날려 수류탄을 덮고 장렬히 전사한 군인 이야기를 안 하더라도, 남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식을 위해서 부모가 하는 일이 아니라면 개인이 어떻게 해서 남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결정을 내리는 가에 대해서는 사회, 순간적/장기적 심리, 양육, 교육, 역사 등등의 다양하고 복잡한 모티브가 들어가기때문에 한마디로 설명 할 수는 없고 여기서 말하는 희생이라 함은 예외적인 장렬한 희생의 경우보다는 조금 손해를 보는 일반적인 희생으로 국한시키도록 하자. 

사람이 세명만 모이면 그 중에 리더가 나온다고 한다. (리더/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기도 하고, 리더가 많아지면 당파가 갈리는 것도 사실이고, 따라서 말하자면 배가 산으로 가는 과정이 민주주의라는 것은 아이러닉하다고 하겠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모이면 각자 자기가 맡은 역할이 생기기 시작한다는 것이다.(나의 지난포스트 '사회속 인간 참조') (http://cookingak.blogspot.com/2014/09/blog-post_19.html) 
마찬가지로 게임이론의 파생실험에 의하면, 무리가 있으면 항상 일정 부분의 사람들은 이기적/이타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고 한다. ABCD 그룹에서 가장 이기적인 사람들을 모아 그룹  E 만들면 그룹 안에서 다시 게중 이타적인 사람들이 나오고, 마찬가지로 이타적인 행동을 한 사람들끼리 모아 그룹을 만들면 그중에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타적인 행동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일련의 인과관계로 생기는 어떤 패턴이라고 수가 있다. , 엄청나게 간단하게 말하면, 누가 매우 훌륭한 분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또!) '어쩌다 보니' 그렇게 것이라는 것이다
'착한 당신' , 양념반 튀김반이 아닌, 양육반 환경반의 조건에 의해 그런 사람이 거의 우연히 것에 불과한 것이지 딱히 훌륭한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태어나거나, 개인의 뛰어난 노력과 역량으로 인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닐 확률이 . (http://www.pnas.org/content/75/1/385.full.pdf)
  
실제로, 이 이타적인 행동으로 보이는 행동은 박테리아 단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행동은 ,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주는 것이 모든 개체의 기본 존재 목적인 소위 '이기적인 유전자' 원칙을 깨는 행동(?!)으로써, 아무리 애균정신을 발휘하여 과대평가를 하려고 해도, 이들이 의식적으로 무슨 카미카제처럼 머리에 センニンバリ千人針 천땀 띠라도 동여매고 하는 짓도 아닐테고, 뇌도 따로 없는 균에게  의식적일 결정인 '희생'이란 개념자체를 부여하기는 참으로 힘들
이쯤되면 사실, 쉽게 남을 판단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이기적인 사람들은, 특정 Canis lupus familiaris 종(쉬운말로 '개'라고도 한다)이나, 벌레만도 못한 것이 아니라 병균만도 못한 사람이 된!(http://www.nature.com/nature/journal/v430/n7003/full/nature02744.html)

그런 시각에서 볼 때, 따끈따끈한 군고구마같은 마음으로 야생동물 보호에 일조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마치 본인들이 지구를 구하기 위한 거룩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줄 착각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따지고 보면 사실은, 자연보호단체에 의해 감정적 착취를 당하고 있을 뿐인 경우도 많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들은 눈크고, 덩치 크고, 귀여운 동물들에 애착을 가진다고 한다. 미키마우스 그림도 세월에 따라 점점 귀여운 얼굴로 진화를(!) 했듯이 보기 좋은떡이 먹기도 좋다고,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못생기고, 징그러운 파충류나 곤충(곤충도 '동물'이라는 사실)들을 보호하자고 하면 콧방귀도   사람들이 이런 동물들을 보호하자고 해야만 비로소 야생동물보호단체등에 돈을 주기때문에, 흔히 이들이 밀고 있는 동물들은 북극곰이나 고래같은 것들에 치중되어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벌레라도 장수하늘소(이야~~이름 봐라!)쯤이나 되야 보호하고 싶지 눈에 띨까 말까한 풀벌레는 보호해야 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다. 빌어먹을 세상, 걸그룹만 아니라 동물도 잘생기고 볼 일이다. 그리고 요즘 인터넷에서 가장 인기있는 사진이 고양이라고 하지만, 이 깜찍한 야옹이가 사실은 북미나 대부분 사람이 사는 지역에는 invasive species(외래종?) 이며 해마다 무슨 농약등의 적나라한 피해보다는 고양이에 물려 죽어가는 야생동물의 수가 엄청나, 실제로 33종의 새들의 멸종에 이르게까지 한 주범이라는 것은 아는 사람이 드물다. (다시 말하지만 현실은 아프다)
 (http://www.livescience.com/4314-penguins-cute-cute.html,  , http://faculty.uca.edu/benw/biol4415/papers/Mickey.pdf , 
http://www.wildlifemanagementinstitute.org/index.php?option=com_content&id=610:new-research-suggests-outdoor-cats-kill-more-wildlife-than-thought&catid=34:ONB%20Articles&Itemid=54)  

그런데 통계 의하면, 그나마 잘한다는 보호단체도, 기부한 돈의 작게는 70프로 미만이 실제 명목상의 기부혜택자나 연구비등으로 쓰이고 나머지는 그 이름도 찬란한 '운영비' 들어간다. 그나마 한자리수나 갈까말까 소소한 유사사기 단체도 물론 많다 (투자를 받아 운영적자를 내면 더 남는 장사라는 궤변을 바탕으로 한 뮤지칼 '프로듀서'를 연상하게 된다) , 기부금의 상당부가 걷는 사람들의 돼지갈비 회식비 등 활동비(?!)로 들어간다는 것이고,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기부한 돈으로 명목상의 혜택자가 아니라 걷는 사람들이 먹고 산다는 것이다. (http://charity.lovetoknow.com/What_Percentage_of_Donations_Go_to_Charity)
*강조를 하자는 것이지 물론 돼지갈비만 먹는 것이 아니라 사무실 전기료도 내고 직원들 교통비 및 돈을 뜯는 요청하는 데 사용된 전화비용도 도 당연히 감안을 해야한다. 물론, 이 중에는 자연 보호한답시고다고 특히 기상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개인 제트기를 대한민국 중고딩 버스타고 학원다니듯 하는 사람이 있지만 다들 지구를 구하려는 거룩한 목적일 것이라고 믿어주자 (http://en.wikipedia.org/wiki/Environmental_impact_of_aviation ) 

혹자는, 그나마  사람들이 없으면 한자리 수의 돈이라도 걷혔을 것이라고 반박하겠지만, 그래도 엉뚱한 곳으로 돈의 통계숫자를 보고 나면 지갑 열리는 속도가 조금 줄어들게 되어있다. 실제로 나도 일전에 그나마 overhead가 적다는 카톨릭 단체에 무슨 이유로 기부를 조금 후로는 얼마나 사방데서 쓸데없는 동전이나 조각 초등을 보내며 돈을 달라고 하는지, 이미 내가 이상의 비용을 넘어선 것으로 판단된 후로 나는 기부단체에는 무명으로 있는 곳만 하거나(처음에는 세금 때문에 실수로 주소를 적은 것이 실수였음), 어차피 푼돈, 그냥 아예 기부단체 자체를 접고 내가 좋아하는 pod cast 같은데 기부를 하는 것으로 가고 있다.

그러니 여기서 다시, 이런 단체의 ulterior motive 숨은 의도를 생각해보지 않을 없고, 그들의 딱히 숨지 '않은' 의도도 생각해보지 않을 없다. 우리는 자연/야생동물을 보호하려고 하는가? 더 나아가 우리의  지구를 보호하려는 시도는 얼마나 의미가 있는?

사실은 대충 이렇다.
('사실'은 종종 그렇게 아름답지도 않고 아프기 쉽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인간은 개체수가 가장 많은 종도가장 진화적으로 적응을 잘하고 있는 종도 아니다
쥐나 바퀴벌레는 물론 대다수의  , 인간들이 기운 센 천하장사 마징가제트도 아니면서 기껏 지구를 지킨다고 안간힘 쓰는 사이에 수명을 다하고 치사하게 태양이 죽어버리는, 지금으로부터 가뿐한 5 billion 우리가  '가고나서도 한동안은 콧노래를(코가 있는 종이라면부르며 해먹에 누워(등을 바닥에 대고 누울  있는 종이라면 먹고   종들은 많이 있다. (http://www.enchantedlearning.com/subjects/astronomy/sun/sundeath.shtml)

또한, 진화의 방향이 그렇다 보니(다른 프레데터들에 반해 몸도 약하고 하니 도구를 개발해야했다는 것) 인간이 제일 머리가  돌아가는 종이라고는 하지만인간 다음으로 똑똑한 동물이  영장류가 아니라, 2위는 돌고래이고 5위와 6위는 (까마귀와 앵무새과), 이며 7위는 돼지라는 것을 생각하면 다음에 새대가리라든가새됐다(사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직도 잘 모름. 어디다 물어봐야 하나...) 소리를 할때 다시한번 멈추고 생각을 하게  것이다

우리가 사는  '하나 뿐인 지구'에는 나날이 새로운 종이 멸종을 하고 있고 발견되고, 아마도 어느 구석엔가 진화를 통해 생겨나기도 하고 있을 것이다
웹에서 떠도는, 차가운 바다의 외로운 빙산을 타고 있는 북극곰을 보며 문득 눈물이 핑도는 당신은 북극곰이 처음부터 따뜻한데 가서 안 살고 찬 바다에서 빙산타고 살도록 진화했다는 사실도 잊고 있고, 북극곰수가 최근에 증가세인줄도 모르며, 하얀털이 북술북슬 귀여운 이들이 배고프면 사람도 잡아 먹는 다는 사실도 간과하기 쉽다.(http://www.canadiangeographic.ca/magazine/dec12/polar_bears.asp) 
그리고, 예를 들어부리에 점이 한개 대신에 두개 찍힌 '새로운새가 발견된다고 하자. 그러면 그 새는 엄마가 지어주신 이름이 아니라  새를 처음으로 '발견' 조류학자의 이름이 붙을 것이다또한 학자의 논문출간에 도움이 되고 학자 밑에서 대학원을 다닌 학생에게는 박사학위를 받는 수단이 될 것이다이것이 그들의 피나는-때로는 글자 그대로 실제의 피도 나는-노력에 비하면  정도는 까이꺼 당연한  같지만번연히 native American-a.k.a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 이미 존재하는 땅을 '발견하시어 이름을 붙이고 차지해버린 유럽과 미국의 역사를 생각할 때는 그렇게 당연하지만은 않은 일이다
또 동시에어디 아마존 오지에서 아침마다 꽃단장을 하고 하염없이 발견되기만을 기다리어도 기다리어도  발견이 안되고 있는 수지를 닮은 아리따운 도마뱀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도 사람들은  모른다.

또, 인간만이 생각을 하네, 언어가 있네, 인간만이 사랑을 하네, 웃을 수가 있네 등등 hubris에서 나온 여러가지 덕담들도 많지만, 반면 negative 쪽으로는동물은 순전히 미워서 죽이지 않는다, 인간만이 살인을 한다고도 하지만대장멍키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과 실제 미움이란 감정의 차이를 구분하기란 어려운 일이니(mens rea. It's all about motives, baby.) 막말로 인간이 가장 못된 종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따라서결론적으로는포식동물과 먹이동물의 관련상 전체구도를 보면그동안의 전과를 볼때인간은 좌우지간 그저, '아무 생각없이 다른 /식물들을 가장 많이 먹어치운 '이라는 말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공룡의 멸종도초대 운석설이 현재도 가장 우세하지만(모든 입증이  되는 것은 '' 불과하다-공룡이   죽었는지는 영원히  길이 없으니까 ''이라는 것이지 내가 갑자기 창조설에 조금이라도 무게를 두자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운석이 국지적인 이벤트에 불과 하였을 것에 반해점차적으로 결과적으로 모든 대륙에 골고루 모두 멸종한 것은 인간이 등장해서 엄마아빠 모셔다가 맛있게도 냠냠  먹어치웠다(!!) 가설도 우세설 중의 하나이다

...

암이 무섭다는 것이 바로 인간의 지구 점령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기적인 유전자는 개체로 하여금 유전자를 가장 많이, 확실하게 물려주는 쪽으로 행동하도록하므로, 먹이가 있는 한 자꾸 번식을 하며 퍼져나가게 되어있을 뿐이다
(흔히 사람들이 혼동하는 것이 '이기적인' 유전자라고 하니까 무슨 유전자가 마징가제트 위에 올라탄 조종사 카부토 코지라고 착각을 하는 수가 있는데, 유전자 자체는 아무 생각(!)이 없고-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아는 한-, 유전자에 의해 개체가 그렇게 행동을 하도록 프로그램-그렇다!- 되어지는 것 뿐이다. 당신 마음은 생각보다 상당 부분 당신도 모른다. 아니라고 주장하려는 당신, 다음에 왜 오늘은 늘 먹던 짜장면을 안 먹고 짬뽕을 먹고 싶냐는 의문에 '그냥'이라는 답을 하게 될때  이 글을 기억해주시라)

영화 메이트릭스에서 에이전트가 몰피어스를 고문하는 장면에서 언급되었듯이(사담인데, 니오를 잡으려고 그랬는가 보지만, 개인적으로 에이전트들의 매우 불필요한 amateurish 행동이었다고 생각함), 인간들은 이따금 번져나가는 세균하고도 비유가 되어지는데, 지구점령 방식을 이야기 할 때는 그보다는 암의 비유가 더 맞는 것 같다

세균의 번식 행태는 자신의 입지를 늘려나가기 위해 다른 숙주를 찾아나가는 수단 쪽(기침, 재채기, 콧물 유발)에 많은 무게를 두게 되어 숙주를 개체단위로 행동을 하게 하는데 반해, 암세포는 시력없는 두더쥐처럼 그저 먹을 것이 있는 한 그 라인을 따라서 따라서 어떻든 숙주(이 경우는 지구)가 죽을 때까지 먹어대는 것이 대략 하는 짓의 다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유전자특화 암치료법 개발도 암세포의 먹이가 되는 라인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디자인이 되고 있다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어도 군사들이 밥심이 있어야 넘어간 다음에 점령까지를 할 수가 있을 텐데 손자병법에도 나오듯이 식량배급을 차단하면, 암이 아니라, 모시느니 차라리 방에다 황소를 키운다는 암의 홀시아버지라도 버틸 요량 없이 '이 산이 아닌가베'를 내뱉으며 포기하는 수 밖에 없는 까닭이다
(https://www.facebook.com/idefence/posts/622051901191979)

무식하게 숙주(지구)가 죽도록 먹어대는 암세포(인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최근 이볼라 바이러스의 위협도 대략 마무리가 되었듯이 흔히 영화에서 보는 끔찍한 병균에 의한 재난이 다행히(!) 생각보다 쉽게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보통 정말 잘 디자인 된(?!) 병균은 공생이나 기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다음 차로 갈아탈 때까지 숙주를 죽이지 않고 살려두는 방향을 추구하게 된다. 보통 열이 나고 목이 아프다가, 콧물이 나오면서 재채기를 하기 시작하면 감기가 끝나가는 신호인 것이 그런 까닭이다병균이 1번 숙주의 침과 콧물 로켓을 타고 다음 숙주로 넘어갈 준비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니 아픈데 약기운에 나가 돌아다니게 되면 균이 번식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된다. 약 먹는 것은 좋은데 그 기운으로 돌아다니지 말고 스스로 격리 수용을 도모하자.)

반면, 너무 성질급하게 변이(세균들의 life span은 매우 짧기때문에 인간들에게는 아주 짧은 시간에 글자 그대로 '진화'를 한다)한 넘들은 숙주를 너무 초기 단계에서 일찍 죽여버리게 되니 번식의 기회를 잃고 근근히 몇개 숙주를 건너다 멸종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때문에, 두려워하는 대규모의 재난deadly outbreak와 간단한 독감유행기 flue season의 발란스가 아슬아슬하게, 그러나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겠다. 그리고 혹여 이런일이 발생하더라도 약보다는 개인의 면역성이 중요하므로 언제든 '남들은 다 걸렸는데 나는 괜찮은' 극소수의 사람들이 있게 되어있고, 그런 사람들이 살아 남아 우주선 바깥에 들러붙은 에이리언처럼 끈질기게 또 번식을 도모하게 될 것이므로 지금까지도 정말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시는 것이라고 주장하시는 당신, 걱정은 일단 그 1시간 반동안 무한 리필 해주는 대신이 질이 좀 떨어진준다는 고깃집 기둥에 붙들어 매시라.  

그러나, 역시도 만약에 이런 일이 천만에 하나, 만만의 콩떡으로 일어난다면, 인간들이 무기용으로 개발한 병균에 의한 것이 될 것만은 틀림없다
(안 그래도 이볼라 위협에 관해 훨씬 만연한 말라리아나 심지어 독감은 다 놔두고 생뚱맞은 흔하지도 않은 병을 가지고 애먼 사람들을 겁준 것이 콘스피러시가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지만, 아무리 민주주의 맞는지, 정상적인 자본주의 맞는지 가끔 의혹이 가는 한국보다는 대략 21-내 생일 숫자이지 아무 근거는 없다, - 정도는 투명한 것 같은 미국도 언제든 '촌놈 겁주는 일'은 컨스피러시의 의혹이 있게 마련이다. (http://www.thefiscaltimes.com/2014/10/08/Virus-Thats-More-Likely-Kill-You-Ebola) -뭔가(?)를 가리기 위해서나, 뭔가(??)로부터 주의를 돌리거나, 그쪽으로 funding이 필요한 사람들이 바람을 잡았거나, 내가 볼때는 실질적 4대악중-나머지는 제약회사, 정치인들, 종교빙자파워게임플레이어들- 의 하나인 미디아가 한가한 철에 뉴스거리 찾다가 벌린 일이던가...- )

인간은 어떤 면에서든 좌우지간 '가장 뛰어난 종이 아니다' 사실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인간은 그냥  중의 하나  뿐이다.

우주는 말할 것도 없이 지구 전반의 역사로 보면 찰나를 차지할 뿐인그리고 생태계의 개체수로 나누면 아주 작은 모래알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일 인간은하나 뿐인 지구후세에게 물려주자는 슬로건에 있어서끝까지 살아남을 경우의 수도 적고어떻게 생각하면 그럴 이유도 없다는 결론이다.

 아름다운 푸른 지구다른 살아 남을 아무 종에게나 '물려주'어도 된다.(처음부터 인간 '소유' 어디 동사무소 -뭐지? 뚱뚱한 개그맨 대라고 하면 김준현이 아니라 이기동 댈것 같은 이 분위기주민센터에 등기가 되어있지도 않았지만 어떻든
그래서그들이 두뇌가  발달하고( 뇌의 크기가 커질 필요는 없다두뇌크기 비율 보면 가장 똑똑해야 하는 동물은 인간이 아니라 개미고, 인간의 바로  순위는 작은 새들이다. http://en.wikipedia.org/wiki/Brain-to-body_mass_ratio)  새소설과새콘체르토를 작곡하고개미성당을 짓고 개미전쟁을 하고서로서로 미워서 죽이고남아 있는 것들을  먹어치운 다음 멸망한다고 해서 인간이 그렇게 하는 것과 뭐 다를 것이 있느냐는 말이다우리가  죽고   지구를 뒤덮는 개미나 새들을 상상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다.

아니정말 지구를 아낀다면이미 그동안 지구기후변화설을 인정하지 않았던 공화당조차 인정하기 시작한 지구를 훼손하는 주범인 인간은 마땅히, 반드시 멸망을 해야 한다. (알라스카가 따뜻해져서 좋은 것은 또 다른 이슈이지만, 나의 유전자 반을 가진 개체-a.k.a지야-도 이미 다른 주에서 터전마련을 도모 중이고 나야 여기서 어느 산자락에 뼈/뼈가루야 묻을지 모르지만 한민족 자손만대 여기서 번성도모 할 것 아닌 바에야 그 또한 내 상관할 바 아니다)

하기사외계인이 오면 당연히 미국 대통령을 접촉하리라는 흔한 미국만세 영화의 오류처럼처음부터 근본적으로 누가 이런 한심한 종이 뭘 안다고 누가 누구에게  지구를 물려줄지의 executive 결정권을  척하는 것은열두고개 넘도록  빼앗아 먹은 호랑이가 결국 엄마를 잡아먹고 오누이까지 먹으러 가는 심보라고  수가 있다. (늘 앞장서서, 다른 나라가 무기 목적으로 핵을 가지면 위험해서 안된다고 주장하는 나라가 역사상 유일하게 핵폭탄을 투하한 적이 있는 나라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만.)

...

여기서 잠깐이스트 섬의 마지막 남은 주민 이모씨를 상상해보자
그리고  섬에는 나무가   그루 남아있다텐트움막혹은 영화 겨울왕국에 나오는 으리으리한 성이든 뭐든 이모씨가 살고 있는 집에서 버클리에서 진화중인 생선 목을 따는 연구를(!) 하고 있어야 할 아이는 난데없이 밥 달라고 울고 있고이모씨는 하나 남은 나무를  것인가  것인가 심각한 고민을,

거의  한다.
그냥 벤다. 몸이 약해서, 의지가 약해서,(いらっしゃいませ!!) 머리가 나빠서  미래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이기도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별로 의미없는 고민이기 때문이다 나무 하나 남겨 놓고 이모씨가 장렬히 목숨을 희생한다고 해도 최고의 영광은 신격화 되는  뿐이고(TO HELL WITH IT!),  처음  글의 주요 맥락에서 밝힌  있듯이 내가(웁스)이모씨그리고 이모씨가 유전자를 물려줄 베이비가 죽으면 희말라야의 표범처럼 21세기가 간절히 원한 이모씨의 존재이유는 그걸로 끝이다
자신은 하나뿐인 지구를 구하기 위해, 후세에 꽃봉오리에서 태어났다는 설화를 가지고, 사람들 목마다 달린 메달에 새겨질 얼굴로 남기 위해 아이와 함께 장렬히 희생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당신 마지막 나무를  이모씨에게 돌을 던져라! (rhetorical question이다부디 너무 진지하게 실행에 옮기지 말아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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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보호주의자/자연'사랑'주의자 이념의 배경은 흔히 두가지 부류가 있다고 한다

'아마존은 지구의 허파절대 보호해야해!' 하는강아지 보호한다고 보신탕집 노부부 주인 테러하는 부류
혹은, '자연완전 아름답지 않니그걸로  아니니?' 하는바로  풀숲에서는 사자가 어린 사슴의 에미를 맛있게도 냠냠 먹어치우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대책없는 순진파
이런 부류들은 또한 무조건 문명이 악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오류도 보인다. 풀치마를 두르고 있는 이들은 모두 평화를 사랑하고 쿰바야를 부르며 살아가리라는 착각이다. 역사적으로 보아 물론 유럽인들이 치사하게 질병을 의도적으로 사용할 정도로 잔인하게 마야잉카를 지배한 바가 있지만 그렇다고 정복을 당했던 그들이 또 순진문구청정하게 살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힘이 센 것들은 그 힘을 사용하게 되어있게 되어있어 잉카인들의 주변 정복사 또한 한 잔인 했던 것을 간과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까지 멀리 안가도, 뭐 옛날에는, 시골에서 사는 사람들은 더 순박(whatever that means) 하다고 근거없는 믿음 가진 사람 많이 있다
(http://www.historywiz.com/anc-america.htm)

내게는   뭔가를 놓치고 있던가무시하고 있다고 보인다
나도 항상, 작고하신 시어머님께서 더 알뜰하면 큰일난다고 하셨을 정도로 에너지도 나름 최대한 아껴쓰고자연 훼손 안하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고그런 움직임을 지지하지만( 글의 목적은 자연이고 뭐고 오일 캐자는 것이 아니다다시 한번 말해두지만  알라스카가 오일을 캐든  캐든 별로 상관이 없다),  알고 행동하지 않으면 무식과 순진은 흔히 같은  애들이라고 본다. (나의 naivety 대한 지난 포스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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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지적능력을 과소평가하고 굳이 요약하자면,
어차피임기말년 교과서에 이름 하나 올려볼까하는 사심에서또한 차기 민주당 대통령 후보감 힐러리에게 약진의 발판이나 되어줄까 하는 정당적인 어젠다에서 나온 얄궂은 환경보호 정책을 펼치는 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경기부흥의 명목으로(시장확대지구 훼손의 주범인 인간의 개체수를 늘리기위한 출산장려정책을 펼치는 오바마 대통령이나,(참고로 '아직나는 오바마의 민주당지지자이다흔히 수입이 많아지면 세금을 적게 걷자는 공화당으로 변신을 한다는데 아마 조금  벌어야 하려나 보다 ),
기름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자연이 회손되는지 안되는지, 5년이 넘도록 구경도 못한 백곰은 커녕 갈색곰도 송유관건설로 인해 도대체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는 장기적으로는 두고 봐야  일이겠으나자연을 다소 훼손하면서도 기름을 캐서 면세점 명품백은  사도겨울에 하와이 여행은 가야하는  아니겠느냐, 느이가 여기사냐 왜 남의 제삿상에 북어놔라 조기놔라 하느냐는 알라스카 주민들도,
알라스카 하나 희생해서 하나뿐인 지구 지키자는 환경보호단체 다른  사람들도,
이참에 자연보호 부르짖어서    걷어서마침 홈쇼핑 채널 세일중인 그 산뜻한 책걸상으로 사무실 단장 기회를 노리는 자연보호단체직원도,
별로 직접적인 영향도 없는데 이참에 표밭 일구는데 여념이 없는 티비출연용 분단장한 정치인들도,
미국의 fracking (shale gas 추출 방식중단시키려고 기름 생산량 터무니 없이 늘려 기름값 떨어뜨리고, 일을 복잡하게 만든 중동 OECD국가들도
모두 
이스트 섬에 하나 남은 나무그늘에 앉은 이모씨처럼, 그저 자기들 (혹은 국수)공기(혹은 접시), 자기입만 생각하는  뿐인데
그것에 이리 놀아나고 저리 놀아나는 새우들만 조침문의 작가 유씨부인 손에서 부러진 바늘 허리처럼 오호라 자끈동 신세가 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 '' 하나 뿐이기 때문이다.

...

어떤 생명체가 살아있는 징후는대략  생명체가 
먹거나싸거나숨을 쉬거나새끼를 치거나, 스스로 움직이거나
라고 했다이중의 하나만 있어도 '살아있다' 간주한다는 것이다. 오페라를 작곡하거나, 달나라를 하루만에 가는 로케트를 발명하거나, 만인이 우러러볼 이타적인 희생을 하거나 등등의 소위 '문화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일련의 행동이 우리가 생존하는원칙이고정의라고 까지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보다는 낫지 않느냐고살아 남는 것이그게 정말 다냐고?

그럼 아닌가?
그게 나쁜가?


-


p.s. 학교다닐때 생물시간에 배운 토끼와 여우의 생태계 개체수 그래프만 up and down 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도 맞물리면  똑같다.
벌써 기름값이 기록적으로 내려서(그전에 더 쌌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실 99년 당시 갤론당 99센트까지 한 적이 있으니 '기록적'이라는 것 역시 표현에 불과하지만) ->
그동안 혼자 독야청청 승승장구하던 노스다코타 주의 프래킹사업도 좋지 않으니 ->
장기적으로 보면  때문에 순익이 맞지 않게 되어프래킹사업으로 잘나가던 노닥이나 텍사스가 이미 사업을 접고있고, 따라서 그쪽에 일자리도 줄어들고, 예산도 줄고 있지만 ->
오일 생산량이 줄어들어 기름값이 다시 올라가면 ->
사돈이   배아픈  같던 중동은 다시 올타쿠나 기름 생산량을 줄일 것이고 ->
그러면 다시 알라스카는 지가 언제 불평을 했대유 하고 감이  떫던 시절 잊어버리는 소리  것이지만,
아무려나 그건 그때 가서 다시 쾌잡은 정치인들이 입에 거품  일이고, 나는 910 페이지 짜리 책 두주걸려 읽느라고 음악도 못듣고 머리속에서 붕붕거리기만 하던 생각 다 내려놓았으니, 머리도 싹 비었겠다 이제 가서 커피나 진하게 한잔 우려먹으며, 맘먹고 Lazar Berman (Ла́зарь Нау́мович Бе́рман )이 연주하는 피아노곡 Rachmaninoff Moments Musicaux op16 전곡이나 들을 일이다내일부터 다시 시작할 책 'Donald Barthelme' 'The dead Father' 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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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링크 모음: 사람이 기억이 늘 정확한 것도 아니고, 또 남의 생각을 자기것인양 도용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나는 copy write 를 확실하게 하기위해 꼭 링크를 달려고 노력하는 바이다. 또한 은근슬쩍 구렁이 담 넘어가는 화법으로 혹세무민하는 사람도 많은 세상에 늘 누가 뭐라고 주장하면 근거자료를 꼭 확인해주기 바란다는 의미에서, 늘 부탁드리는 바이지만 조금이라도 의문이 생기는 부분은 링크를 확인해주시기 바란다 

http://www.nola.com/politics/index.ssf/2015/01/where_the_wild_things_are_obam.html


http://goodnature.nathab.com/is-animal-altruism-real/

http://cookingak.blogspot.com/2014/09/blog-post_19.html

http://www.pnas.org/content/75/1/385.full.pdf

http://www.nature.com/nature/journal/v430/n7003/full/nature02744.html

http://www.livescience.com/4314-penguins-cute-cute.html

http://faculty.uca.edu/benw/biol4415/papers/Mickey.pdf

http://www.wildlifemanagementinstitute.org/index.php?option=com_content&id=610:new-research-suggests-outdoor-cats-kill-more-wildlife-than-thought&catid=34:ONB%20Articles&Itemid=54

http://charity.lovetoknow.com/What_Percentage_of_Donations_Go_to_Charity

http://www.canadiangeographic.ca/magazine/dec12/polar_bears.asp

http://en.wikipedia.org/wiki/Environmental_impact_of_aviation

https://www.facebook.com/idefence/posts/622051901191979

http://www.enchantedlearning.com/subjects/astronomy/sun/sundeath.shtml

http://www.thefiscaltimes.com/2014/10/08/Virus-Thats-More-Likely-Kill-You-Ebola

http://en.wikipedia.org/wiki/Brain-to-body_mass_ratio

http://www.historywiz.com/anc-america.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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