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rch 7, 2015

'바뀜' 과 '나아짐'에 관하여



어느 나라는 안 그렇겠느냐마는, 한국은 내가 좀 아는 나라 중에서 절대 빠지지 않게 늘 '나아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나라다.
비판을 하든, 칭찬을 하든 늘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몇번째로 하는건지, 몇번째로 비싼지, 몇번째로 높은지, 얼마나 많은지 순위를 확인하고,(노동집약적 사업 조선사업이 당당히 1위를 지키고 있지만 조선사업을 하는 나라가 원래  몇 안된다), 다른나라와 비교해서 우울한 사람이 많은 나라라면서 우울해한다.
특히 일본이 뭘 한다고 하면 빚을 내서라도(글자 그대로) 해야하고, 양잿물도 마셔야하고(비유적으로) 전세계와 비교해서 모자라면 아시아 중에서 비교를 해서라도 한자리수 순위를 내야한다. 어른들로도 비교하고 어린이들로도 비교하고, 높이로도 무게로도, 수량로도 질로도, 개도 소도 비교를 한다.

항상 발전을 도모한다는 점에서는 나쁠 것이 없다. 다른 글을 다 쓰고도, 이 글은 막상 정신사나운 메모장만 자꾸 들여다보면서 쉽사리 시작을 못했다는 점을 주목할 때 나도 한국 사람이고, '우리' 들의 이 가멸찬 노력이 가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늘 남보다 앞서고, 나아지려고 하는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교육이나 노동시장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또 다른 날 얘기할, 혹은 얘기 안 할 문제고(나라고 늘 불평만 하고 있는 게 좋은 것이 아니다), 나는 오늘 그 과정, 그 사고 방식 자체의 오류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이른바, 뭔가를 개선하고 바꾸어 나간다는 것이 진정 '나아지는 것'인가 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개선이란 것은 늘 헌것은 버리고 새것을 쫒는다는, 끝나지도 않고 이길 수도 없는 게임이 관련되기 때문이다.

...

최근에 밀란 쿤데라의 '웃음과 망각에 대한 책'(원제 The Book of Laughter and Forgetting)을 읽었다. 밀란 쿤데라는,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러시아의 침공으로 체코에서 망명해 나온 천재 작가다. (천재라는 사랑만큼이나 흔한 상투어를 내가 붙이는 이유는 그의 책을 읽어나가다보면 내가 실제로 번번히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그의 책을 읽을 때는 그의 이런 배경을 생각해보지 않았거나, 그때는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잊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밖에 나와 사는 사람으로써 그의 책을 읽으니 감회가 새로운 부분이 있었다. 그 전에 어디선가 언급한 적이 있는 것도 같은데, 이렇게 나와 사는 사람들은 영어로 자신들을 이민자 immigrants 라는 법적신분을 가리키는 말을 쓰지 않고 exile 이나 expatriate라는 망명자나 추방자라는 말을 종종 쓴다. 모국을 버리고 나와 사는 사람들은 늘 이런 죄책감 더하기 회한같은 느낌을 가지고 사는 것 같아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쿤데라는 실제로 망명자다 보니  체코슬로바키아의 역사적 특성상 국가를 잃어본 사람의 그 감정이 이야기 하나하나에 절절하게 녹아있다.  나처럼 학교다닐 때 역사를 싫어해서 잘 모르는 사람도 체코의 역사를 훑어보면 참 파란만장하다. (그러고 보면 내가 역사와 지리에 약해서-いらっしゃいませ!! 대충 속고 산 부분이, 우리나라가 지정학적 위치때문에 특별히 침략을 자주 받고 그래서 한이 맺힌 민족입네 하는 것이다. 그런 나라는 사실 많이 있다. 그런 나라가 다 한이 맺혔는지도 모르지만 딱히 특별할 것은 없다는 말이다.) 사람이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도 내일 나의 국가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한다는 그의 지적처럼, 조국에 대한 감정은 참으로 오묘한 것이다.

그의 이야기 중에, 등장인물이 자라면서 주소들이 바뀌었지만 그런데 사실은 한 번도 이사를 하지 않았고 거리 이름만 바뀐 것이라는 씁쓸한 이야기가 있었다. 왕조가 바뀌고 오스트리아, 헝가리, 러시아 등의 침공을 받으면서 그때마다 거리 이름이 바뀌곤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문득 최근에 한국의 바뀐 주소들이 생각났다.
물론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다. 일시적으로(!) 불편할지는 모르지만 배달이 간단하게 시스템을 정리된 부분도 물론 있을 것이다. 아파트단지 쪽에는 별로 바뀌지 않은 주소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새로운 큰 거리 이름들은 물론, 주택가에는 갑자기 없는 역사적 근거를 들어, 주로 순 우리말로, 급조된 생경한 거리/골목 이름들이 붙은 주소들이 생겨났던 것이다.
일제시대도 그랬듯이 흔한 식민지 정책이 점령당한 국가의 사람들 이름도 바꾸고, 문화도 바꾸고 하는 법이라지만, 자국에서 자국의 지명 등을 느닷없이 바꾸는 것은 어떻게 생각을 해야하는지 모르겠었다.

물론 길 이름만 바뀌는 것도 아니다.
최근에 월터라는 친구가, 미안하지만 한국의 집권당이름을 까먹었다고 뭐냐고 묻길래, 걱정말라고 자꾸 바뀌어서 나도 모른다고 해준 적이 있었다. (세계기록 좋아하는 한국 이런 거나 한번 체크해보는 것 어떤가 싶다.물론 온두라스처럼 '더' 부패한 국가도, 아프리카의 나라들처럼 정신 못차리는 '나라'도 많이 있지만 말이다 ) 입시제도 얘기는 건드리지도 말고(건드렸구나), 당이름도, 정부기관이름도, 전공이름도, 회사이름만 봐도 심심하면 한번씩 바꾼다.

그리고 그 바뀌는 것들은 대개 실속 없이 내용은 없이 이름/ 껍데기 뿐인 경우가 많다.(이건 우연의 여담인데, 2005년에 한국가서 옛날에 나 살던 마포에 다시 가보니 2002 월드컵때문에 길을 넓히느라고 공사를 하는데 새로 건물을 헐고 다 다시 짓자니 보상도 크고, 시간도 많이 들고 하니 건물들을 죄다 앞면 얼굴만 깎아서 그걸 도로 막아가지고 건물을 메꾸고 길을 넓힌 적이 있었더라)

모름지기 사람이나 어떤 단체가 뭘 혁신, 쇄신한답시고 이름을 바꿀때는 뭔가 과거에 불미스러운 것을 잊게 하려고 하거나, 현재 잘 통하지 않는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고 새로 시작하는 분위기를 나게 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물론 이것이 한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최근에 도미노 피자는 간판에서 '피자'를 제거하고 샌드위치와 닭요리등을 판매하겠다고 나섰고, 얼마전에는 Radio-shack에서도 전국적으로 매장의 디자인을 바꾸겠다고 선언하고 나섰었다. 둘 다 현재 잘 안 풀리고 있는 기업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맨들도 가끔 한번씩 이름을 바꾸겠다고 나설 때는 그전에 뭔가 마음에 안드는 것이 있었기 때문인 경우가 대다수다.

한국은 이렇게, 미래를 지향한다는 명목하에 이렇게 자꾸만 과거의 흔적을 지우려는 경향을 보인다. 돌아보아서는 안된다고, 과거에 살아서는 안된다고, 그것이 진보인 양 말한다. 하지만 미래에 사는 것 또한 덧없기는 매한가지이다.
게다가, 유럽내에서도 국가마다가 다르고, 그들과 미국은 시스템이 전혀 다른데, 말끝마다 '선진국은', '선진국의 경우는' 하면서 말하는 사람의 콘셉따라, 경우따라 이 '선진국'이 유럽도 되었다가 미국도 되었다가 하면서 편리하게 바뀌고, 게다가 그렇게 '따라잡는'것을 좋아해서 도통 앞서 나가면서 스스로 길을 열 생각은 안하고, 남들 잘 하는 거 보고 있다가 잘 되는 모델 '베껴 따라갈' 궁리만 하나보다. 몇년전 이코노미스트지
에서도 그동안 따라다니면서 잘 배워 성공한 한국이 이제는 앞장서서 나아가야 할 때라고 지적한 바 있었
다.

인간은 거의 본능적으로 자신의 삶에 voice를, narration을  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 자신의 삶을 직접 살면서도  픽션처럼 하나의 역사를 가진, 스토리로 바라보는 것이다. 우연과 불합리와, 이해가 가지 않는 실제 세상을 '말이 되도록' 스스로가 이해하려고 하는 시도이며 이런 이유에서 사람들은 말하자면 '꾸며낸' 이야기들을 쓰고 읽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소망을 말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소망만 말하지 않고, '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에 돌아보면서 웃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를 잘 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마디로 말해 이런 날은 잘 오지 않는다. 
내말은, 그런 날이 올 수는 있는데, 그런 날이 실제로 오면, 돌아보면서 웃지를 않고 다른 목표를 향해 다시 부질없이 움직여 가고 있다고 볼 수가 있다.
'지금 내가 아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터득한 지혜라는 측면에서) 이라는 후회도 소용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알았더라도 아마 많이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불행이도 나중에 잘못된 결정으로 나타났을지 모르지만, 대충 바람직한 '지혜'만으로는 그 당시에 확실하지 않은 것을 걸고 뜻밖의 결정을 했을리는 없고, 누구나 일반적으로 바람직한 결정을 순간적으로 최대한 잘 하려고 하면서 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트윗을 가만히 지켜보면 정부를 비판하는 시각은 거의 무차별적으로 보일정도로 격렬하지만 사실은 국민들도 많이 다르지 않다. 미국은(미국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비교하는 중이다. 그냥 다르다고) 단기적으로 마음먹고 세상을 둘러보는 것이라면 모를까 여름에는 매년 같은 lake house(일종의 별장 같은 곳인데, 그렇게 화려할 것은 없이, dry cabin이라고 불리는 전기나 상하수도 시설이 없기도 한 통나무집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미국에는 더러 있다. 가격도 싸고 화장실은 푸세식, 물은 물탱크에 채워놓고 쓰는 곳이다. 여름에 쓰는 곳이니 냉난방은 자연으로 해결한다.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도 있으니 사실은 한번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같은 곳으로 피서를 가는 것이 일반적인 반면 한국사람들은 늘 새로운 곳에 가야 한다. 그냥 가기만 해서는 물론 안된다. 나 거기 다녀왔다고 인증을 해야한다. 장소도 유행이 있어서 몇년전에는 다들 안가면 간첩이던 그곳에 '뒤늦게'(무엇에 늦었던지 간에) 가면 촌스러운 것이 된다. 다들 가는 새로운 그곳에 꼭 나도 가야한다.
ritual이라는 것은 흔히 종교적 의식에 쓰는 말이지만, 여러사람이 함께 같은 행위를 반복해서 함으로써 가지는 평안함을 찾는 어떤 일반적인 의식 또한 가리키는 말로 쓰일 수 있다. 그렇게 사는 것의 메릿을 알고보니 이 리추얼의 가치를 아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늘 남들 가는, 그 유명한 것, 새로운 그 무엇을 배우고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익숙하고 편안한 것의 가치를 아는 것도 기억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현재를 살라'는 말은 하도 되풀이 되어서 그 말이 주는 신선한 느낌이 전혀 없는 식상한 말이 되었다. 쓸데없는 기억을 많이도 가지고 있다는 나도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래서 과거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한다.
이전의 블로그를 버리기 전 마지막으로 쓴 글에, 내가 그때도 어떤 책을 읽고 '과거에 희망을 가진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얼핏 역설적인 것 같은 이 말은, 미래에 나를 결정하는 것은 현재의 나이기도 하지만 당연히 과거의 나이기도 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가 Somewhere in my youth or childhood, I must have done something good 어렸을때 내가 뭔가 잘 한 일이 있었나봐요(이렇게 당신을 만나 사랑에 빠지다니)이라고 노래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쿤데라는(그리고 역사의 이런 아이러닉한 점을 지적한 사람은 많다-기본적으로 대충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진다'는 말은 여러버전으로 동서고금에 존재하는 근진리다) 개인이든 국가이든 힘을 가지려는 사람들은 얼핏 미래를 좌지우지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과거를 바꾸려는 힘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지적한다.
스티븐 핑커도 그의 최신작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에서, 통계숫자 상 전쟁도 줄고, 질병도 줄고, 불의도 줄어드는 등 인간이 어떻든 '나아지'고는 있지만(그것이 사실상 책의 주제다), 역사의 실수로부터 우리가 정말 잘 배웠다면 전쟁이라는 것은 지구상에서 아주 없어졌어야 한다는 점을 말했듯이, 나약한 인간에게 있어 과거의 실수를 덮는 방법은 그야말로 과거를 내 마음대로 꾸며내는 방법, 역사를 새로 쓰는 방법 밖에는 없고 그것이 힘을 가지려고 하는 이유인 것이다. 

한국의 정치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실제로 과거로부터 배울 생각은 하지 않고, 흔히 우격다짐으로 내 마음에 맞는 역사를 쓸 궁리들만 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에는 역사적인 가치를 몰라서 건물이며 국보급 보물들을 훼손했다고 치더라도, 여전히 무엇무엇 명승지(?)으로 지정된다는데 국가적으로 사기나 당하고, 남들이 훌륭하다고 해야만 뒤늦게 그 가치를 알아보는 것은 여전하고, 옥새는 누구 집 안방에 놓였는지 다 사라지고 없고, 현정권 잡은 사람들의 입맛대로 이런저런 '사업'으로 자꾸만 '변화'가 진행 중에 있나보다. 항상 한번씩 한국에 가보면 이런 저런 새로운 것들로 서울만 보아도 몰라보게 바뀌어있고 다들 그것들을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끊임없이 개선될 것은 개선해나간다는 것은 문제가 없다. 아니, 마땅히 해야 할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무엇을, 왜, 바꾸는지는 이따금 멈추고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막연히 기억하는 것과, 기린다는 것도 다르고, 후회하는 것과 회고하는 것도 다른데 말이다. 한국이 한계령도 아니고 왜 국민들에게 항상, 잊으라 잊어버려라 하고,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는지 나는 그걸 모르겠다.

...

많은 사람들이 평생을 다른 사람들 처럼 되려고 노력하면서 산다. 하지만 살아갈수록 우리가 바뀌고 안 바뀌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와 비교해서는 누구도, 언제든, 어떻게 해서도 만족할 수가 없다.
쿤데라는, 다른 나라 밑에 있는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나을 가망이 희박한 병을 가지고 일단 상아가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옛날에 반장 부반장(기분이다. 아쉬운대로 꽈대나 회장도 포함시켜주자) 한번 안 한 사람없는데 자랑질 지루하게도 만날천날 옛날에 금송아지 있던 시절을 자랑하자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지만, 흙다시 만져보던 감흥은 다 잊고, 한 국가와 그 국민들이 자국과 스스로의 역사를 모두 부인하고 자꾸만 껍데기만 새로 다시 태어나고 싶기만 할 때는 뭔가 문제가 있다.

그래서 밖에서 조국을 바라보노라면, 과연, 무조건 껍데기를 '바꾸어 나간다'는 것이 '나아진다'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정작 '여성(의 권리 아니고)에 대한 시각자체'나 '허례허식' 등 바뀔것은 안 바뀌고, 서울은 분칠한 퇴기처럼 방문할 때마다 생경한 곳이 되어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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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책 끝난 기념 한 차례 끄적이기 마무리하고, 내일 부지런히 보고서 하나 반나절 쓰고 나면, 새로 장만한 그레파이트로 표정연구 프로젝트를 할 예정이다.
책이 마침 끝난 것은 다행이지만 하루종일 한가로운 토요일 중 그 반나절을 보고서 따위에 써야 하다니 좀 억울한데, 뭐 가끔 돈도 좀 벌어야 또 쓰지 하는 중. 더구나 요즘은 펜 그림에 또 꽂혀서 지금 잉크 몇병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또 고민 중이니 ㅎ
그렇게 쉬고 나면, 먼저 일주일이 꼬박 걸린 책이 좀 무거웠어서 이번에는 조금 가벼운 책으로 다시 시작할 생각인데 독일어를 번역한 책이라 어떨지 모르겠다. 먼저 책도 그랬지만 유럽 쪽 책들은 대개 영국에서 영국 영어로 번역이 되어 있어서 또 다른 어려움이 이중이다.
그리고 나서 다시 책이 끝나면, 지난 주말에 드디어 파스텔 픽세이티브를 사왔으니 먼저 시작한 파스텔 프로젝트를 마무리 할지, 아니면 펜 디테일 스터디를 먼저 할지 모르겠다. 그 때 가서 살살 느껴보고 결정하기로 :)
머리속에서 맴도는 네가지 생각이 아직 정리가 안되서 일단 오늘 이렇게 쏟아놓고나면 이 끄적이기도, 이제 언제나 다시 시작할지 잘 모르겠다. '미국의 문제점 연재'는 언제 재개 하는거냐...

어떻든, 오늘의 책씻이 기념 비디오는,
니콜라이 루간스키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콘체르토 no. 3 1st mvt
Ashkenazy의 연주 바이닐 음반을 지금 두 주 째 틈만 나면 듣고 있는데 질리지를 않는다. 요 1악장 알레그로가 특히 좋다. :)
유툽에는 아쉬케나지 것은 연주 장면이 없어서 요즘 안 그래도 인기 좋은 니콜라이 루간스키것으로 올린다. https://www.youtube.com/watch?v=HwDYWwWGKAw&index=567&list=WL
일껏 예술에 이런 소리하는 것을 혹자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사람이 피아노를 열정적으로 연주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피아노 '치는' 것도 보통 힘으로는 안되겠다, 밥 많이 먹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당연한 말이지만 참 쉬운 일은 없다 싶다.




그리움의 색깔

내가 한국을 그리워 한다고 하면 흔히 한국사람들은
족보 애매한 북촌 한옥마을,
썪어가는 전주 한옥식당가,
국적불명 소위 퓨전한식집을 가 볼 만한 곳으로 내어 놓는다.

하지만 내가 그리워 하는 것은,

건강에 해로울지 몰라도 약간은 그림도 더러 벗겨진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짜장면을, 찰칵찰칵 소독저로 비비는 찰진 소리,(좋은 젓가락이나 근사한 그릇 사절)
한여름 저녁 아스파트 식는 매캐한 냄새
동이 트면서 아직 더위가 미처 시작하기 전, 하지만 살같에 엷게 덮이는, 더위를 예고하는 수분들, 거의 무게가 느껴지는 습도,
버스 뒤 꽁무니에서 나는, 느닷없는 철썩, 김 빠지는 소리,
가족들이 모여 앉은 상에서 들리는 달가닥 거리는 수저, 밥상에 옮겨다니는 그릇소리,
인도에 툭툭, 텅텅 울리는 이른 아침 출근길 구둣발 소리,
비오는 밤, 불빛이 반사되는 검은 찻길에 차 연달아 지나가는 소리,
고가도로 밑에서 보이는 얼룩진 시멘트 아랫배,
어스름 저녁, 모퉁이를 돌아들어가는 차의 빨간 후미등,
군인들이나 고딩들은 지겹다고 할, 수련회나 수학여행의 약간은 탄내가 묻은 찐쌀밥과 밍밍한 북어국 냄새,
껍질이 더러 벗겨지고 볼펜 낙서가 있는 버스 비니루 의자 커버
전철이 츨발할 때 나는, 찌~~~~~ 우우우우우우우우웅~~~~~ 소리


이런것들을 적으면서 문득 눈물이 나는 나를,
이런 나를 알면,
감히 나의 삶을 안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살지마라 조언을 해도 좋다.
고개 숙여 들으리라 .

그래도
무엇을 그리워 해야하는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보다는 내가 낫지 하고 억지로 위안하며 산다.


'살'에 관하여

라커룸에 한 발자욱 들어서는 순간 일순, 절로 제자리에 우뚝 설뻔 했다.

캐비넷들 사이에 놓인 2미터가 채 못되는 쇠 벤치위에, 정말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전신나체의 여인 하나가 아주 단아하고도 푸짐하고 여유롭게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딘가 틀림없이 존재하고 있을 내부의 신체 해부학적 지형지물의 증거는 찾아보기 힘들게 허연 살덩어리가 벤치위에 켜켜히 두루뭉술하게 쌓여있는 것 같은 형태의 그녀는, 금방 씻고 나왔는지 어딘가 안흥찐빵처럼 김까지 무럭무럭 나고 있는 것 같았고, 얼핏 고스트버스터에 나오는 마시멜로우 고스트를 연상케도 하고, 미쉐린 타이어 마스코트를 떠올리게도 했다.

같은 동양이라도 한국/일본/중국의 목욕문화 차이도 존재하듯이, 미국의 대중목욕문화는 당연히 우리와 다르다. 흔히 한국 목욕탕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이 한국 목욕탕에 와서 당황하듯이, 여태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밖에서는 평상시는 노출수위가 한국에 비해 높은 미국인들도 수영장에서는 옷 갈아 입는 사람들이 벗고 활개치고 돌아다니지는 않고, 샤워도 칸막이가 없는 곳에서는 수영복 입은 채로 대충 물만 끼얹고 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무래도 운동복도 갈아입고 운동 후 샤워도 하는 여자끼리의 라커룸이니까 나체 자체가 딱히 문제는 당연히 아니었다. 그리고, 세상은 넓고 먹고 싶은 것도 많은데 내가 앞날을 어찌알고 현재 누가 우연히 살이 조금 넉넉하다고 해서 치사하게 딱히 오늘 그걸 비난하자는 것도 아니다. Straight 인 사람으로써 동성끼리 이런 모습을 문득 맞닥드리는 것에 새삼스레 뭐 앗 누드다, 어머 야하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그저, 마치 나이아가라 폭포라도 보는 듯이, 자연적 현상의 경이를  목격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아, 그 말로만 듣던 것이 실제로 보면 바로 저런 모습이구나 뭐 이런...(전혀 아이러니 없이 정색으로 말하고 있음)

그러나, 무엇보다 실용적인 이유의 문제는 단순히, 이런 사람일수록(그 이후로도 비슷한 일이 한번씩 발생했음) 주변을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꼭, 한 쪽도 아니고 벤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앉아 도대체 뭘 하는지 오랫동안 꿈쩍을 하지 않기 때문에, 양쪽에 나같은 사람이 엉덩이 살짝 걸치고 앉아 바지하나를 갈아 입을 자리도 안 나게 된다.(*이 글을 마지막 에디팅 하고 있는 현재는 날씨가 많이 푸근해져서 반바지를 집에서부터 입고 가기 때문에 이 부분이 많이 수월해졌다)

어떻든, 마침 나처럼 할 수 없이 서서 바지를 꿰느라고, 손이가요 손이가 자꾸만 손이가는 새우깡 재료처럼 꼬부랑 깡충거리고 있는 다른 한 여인과 그녀 주변을 맴돌며 준비를 하고 있노라니, 무라까미 하루끼의  Hard-Boiled Wonderland and the End of the World 에 나오는  비중있는 조연이지만 이름도 없이 그저 '뚱뚱한 소녀' 인 캐릭터 생각도,  미야자끼 감독의 千と千尋の神隠し(せんとちひろのかみかくし센또  치히로노  카미카쿠시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영어 제목: Spirited Away)에 나오는, 해태처럼 아무거나 먹어치우며 두루뭉술하게 커져버린 괴물도 생각나고,  내가 너무 오래 한국 목욕탕에 안 갔나보다 이런걸로 놀래다니(찜방/목욕탕 가면 어지러워서 즐기지 않음 ㅠ 그러고보니 찜방 간지 10년됐나?) 하는 생각 등, 아무튼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 하는 가운데, 막상 그녀 본인은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손이나 다른 어떤 것으로든 가리려 하거나 서두르는 기색도 전혀 없이, 아주 천천히 시간을 들여, 옷을 입는다기 보다, 이런저런 옷가지에다 살을 다 누르고 달래고 이끌어 들여보내는데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느닷없는 이제이 영어 한마디 시간 : 옷을 안 입고 있는 것을 영어로, in one's birthday suit이라고 한다. 얼핏 생일 파티라도 해서 화려하게 챙겨입었다는 말인 것 같지만, 태어났을 때 아무것도 안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법 흔하게 쓰인다. 노골적인 naked 라는 말보다 덜 자극적이어서 그런 것 같다.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나체'라는 것을 강조하는, 홀딱 벗었다는 말은 어원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buck naked 라고 하고 최근에는 엉덩이를 가리키는 butt을 쓴 butt naked 라는 말로도 진화중이다. )

...

그동안 나름대로 운동은 꾸준히 해왔지만, 작년 11월말에 이런저런 계기로 내가 처음 gym을 등록했을 때는, 미국사람들의 평균 비만도 감안(현재CDC 통계상 미국의 20세 이상 과체중자는 69퍼센트에 달한다-소아비만까지 더하면 더 심하다), 생각보다 왜소할 정도로 날씬한 사람들이 많아서 놀랬었다. 
아무리 동양인도 이제 많이 비만해졌다고 하지만, 미국사람들(특히 경제 하류층)에 대면 한국 웬만한 사람들은 깜찍하게 통통한 것에 불과하다. 게다가 밀리언년 후 외계인에 의해 샤킬오닐과 나의 해골이 나란히 발굴이 되면 다른 종으로 분류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할 정도로 동양인들은 평균 골격자체가 아무래도 작다. 
그러나 특히 내가 크지 않은 편인데도, 운동하느라고 왔다갔다 하면서 한쪽 벽을 차지하는 거울로 얼핏 보아도, 내가 비교적으로 절대로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다들 남녀노소 매우 체격적으로 날렵하고 단단하게 생긴 사람들이어서, 이거 방심하면 안되겠다, 지금부터 꾸준히 관리하자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었었다. 

물론 주로 연초에 반짝 붐비는 곳의 하나가 체육관이라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연말에 보신각종 소리나 들어보려고 평소에는 보지도 않는 한국뉴스를 하나 찾아 보니, 한국사람들 연초 소원/결심이라는 것이 1.2.3위가 외국어배우기, 외국여행, 책 읽기  등이라서, 뭬야 느이들 내가 그리 부러운거야? 하고 으핫핫 '혼자' 웃었지만, 이 소원/결심이라는 것이 무릇 잘 안 이루어지는 것이라서 계획이 아니라 소원/결심이라 불리는 것을 감안하면 내가 왜 재한국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불로초를 구하러다닌 진시황은 아니더라도 동서고금으로 다들 본능적으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을  것이다보니, 연초 결심 순위에 들어가는 또 하나가 다이어트나/운동(다이어트는 식단조절, 운동은 운동 : 피트니스, 카디오, 엑서사이즈)이다. 따라서 미국인들도 크리스마스에 선물도 짐 사용권등을 주고 받고, 다들 굳은/물렁한 신년의 결심들을 하고 대략 크리스마스 칠면조가 소화되는데로 일단 다들 짐으로 기어 달려 나오곤 하는 것이다. 
솜씨없는 목공이 연장 탓한다고 짐이 아니면 운동을 못한다고 생각하며 차 타고, 에스컬레이터타고, 엘리베이터타고 짐에가서 스테퍼하는 것 자체는 그냥 눈감아 주자. 

그래서, 연초가 되면  곧 사람들이 더 많아지리라고 생각하고 마음의 각오를 하고는 있었긴 하다. 실제로, 연초부터 예상했던데로 파킹 스페이스 도 부족하기 시작했고, 운동기구가 모자랄 정도로는 아니었지만 제법 사람들이 넉넉히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런데, 실제로 살을 조금 없애는 것이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바람직할 것으로(!) 사료되는 사람들도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부분도, 그리고 운동을 하러오는 사람이 다 운동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생각 못 했던일이었다고 하겠다. 

물론 어떤 계기로든 대단한 각오를 하고 확실히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현재의 몸 상태가 대충 그동안의 생활방식을 보여주는 것이 사실이어서, 이런 여분의 일용할 양식이 몸에 축적되어 있는 사람들은 드디어 무슨 동기에서든 짐에까지 도착을 해서도 주로 라커룸에서 여기저기 편한 의자에 펑퍼짐하게 앉아 스맛폰을 들여다보거나, 마사지 체어나 태닝머신만 즐기거나, 운동을 하러 나가서도 트레드밀에 올라가 낮은 속도로 어슬렁어슬렁거리고 있고, 웨이트 트레이닝은 힘드니까(!) 잘 안하고 그러는 경향이 있다. 

달초에 한번 저녁 때 피자주는 날은 사람들이 물론 더 많이 온다. 
술만 없었지 거의 파티분위기다.  야참으로 그렇게 피자 가볍게 두쪽 먹으면(보통 라지 하나를 여섯쪽으로 가르면 한쪽이 300칼로리) 웬만한 운동 조금 한 거 아무 소용이 없을텐데 싶지만, 어떻든 이런 사람들은 그래놓고 운동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기만할 것이다. 이 전국체인인 짐이 인테리어를 럭셔리하게 유지하고 이렇게 피자나잇을 여는 이유도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한달에 한번 와서 마사지 체어에 앉아 피자만 먹고 가면서도 뭔가 짐으로부터 얻은 것이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운동도 하지 않으면서 다시 등록 갱신하도록 만들려는 것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사람이 적게 와야 관리비가 적게 드니, 짐은 등록한 사람이 많이 오지 않을 수록 좋다는 경영의 모순이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저런 사람들을 보아도 자극이 되는 부분이 있다. 자연히, 나는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메타볼리즘은 나이가 들수록 계속 떨어져, 계속 똑같이 먹던데로 먹으면 일년에 평균 일파운드씩 몸무게가 늘게 되어있다고 하는데, 나같은 사람은 졸지에 워낙 기본 무게가 많지 않아서 내 몸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칼로리 양이 상당히 적다는 것이 걸림돌이긴 하다. 
작년까지 자고 일어나면 몸무게 푹푹 줄어 큰병인가 걱정한 적도 있는 내가 얄팍하게 딱히 살을 빼자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거울보기 무섭게(실제로 피치못할 사정!이 있지 않으면 안 보고 있음) 하루가 달리 덧없이 늙어가는데(무서워서 귀도 못뚫은 내가 칼은 못 대겠고, 중력이 없는 달나라에 가서 살기라도 해야하겠..지만 그러면 또 뼈의 밀도가 떨어지는 등 부작용이 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하기로.) 없는 '몸매 유지'하자는 것도 아니라ㅠ, 우리 엄마쪽에 stroke이 두분, 아빠쪽에 한분이 계시기 때문에, 살이 너무 많이 붙는 것은 좋지 않으니, 몸이 기능을 다 하도록 먹고도 남아돌아 두덕두덕 몸에 쌓이지 않도록 하는 양을 말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죽으면 다행이지, 반신불수가 되거나 여기저기 자꾸 아파서 남들에게 짐이 되면서 무책임하게 살아가고 싶지는 않은 게 다다.  

완전 게을러족보단 낫지만 역시 왜 오는지 잘 모르겠는 사람들도 있다. 
체격이나 나이 대비 한계에 한참 못 미치는 속도의 운동을 하며 전방 콘솔들에 있는 스포츠경기에 정신만 팔리거나, 운동 중간중간에 앉아 스맛폰을 들여다보며 괜히 운동기구 자리를 차지하고 있거나, 매트에 친구와 나란히 누워 프로틴드링크를 즐기며 노닥거리거나, 몸매를 자랑하러 왔는지 주로 몸매를 드러내는 옷을 예쁘게 잘 갖추어입고 전방에 사람들이 보기 쉬운 운동기구 근처에서 이런저런 운동기구들을 가볍게 만지작거리며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다. 맨 마지막 부류는 운동하면서도 실상 운동에는 관심이 없고 거울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어있다.(눈치챘겠지만 순전히 부러워서 하는 말이다)

운동을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물론 거의 중독자같은 사람들은 또 다른 문제가 약간 있어보이긴 하다. 
나보다 한 열살은 많아보이는 여자 하나는, 거의 짐에 와서 사는 것 같은 것이, 이런저런일로 시간을 바꾸어 가며 가도 거의 항상 만날 수 있는데다, 일립티칼하다 마사지 췌어에 앉아 조금 쉬다가 또 스테퍼하는 식이고, 덤벨도 근육질 남자들이 하는 수준의 무게를 들었다 놨다 한다. 살도 없고, 몸집도 별로 안 큰 여자라서 남자들처럼 울퉁불퉁한 그런 근육이 아니고 등위에, 팔에 아름다운 잔근육이 뱀들처럼 뼈들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 보여 보기 좋기는 하다. 
흔히 한국 사람들은 여자가 근육이 있다고 하면 조혜련이나 개콘의 근육질 개그우먼같은 모습을 상상하는데, 그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워낙 타고난 몸이 다부지게 생겨서 그런 것 뿐이다. 남자도 일껏 근육 붙였더니 캘빈클라인 향수모델이 아니라 이승윤이 되어버리는 사람이 있듯이, 여자도 마찬가지로 근육이 예쁘게 붙도록 태어난 몸매가 있다.(물론 근육을 그렇게 무거울 정도로 붙이려면 그냥 운동만 해서는 안되고 프로틴 드링크를 먹고 근육 붙이는 약도 먹어야 하지만 이 약이 또 위장에 안좋다고 하더라) 
여자도 군살없이 근육 잘 붙으면 정말 그 선이 아름답다. 많은 사람들이 여자 몸의 미를 논할때 둥근 곡선에 관심이 많은데, 실제로 사람 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곡선보다는 뼈가 적당히 드러나 있는 부분, 예를 들어 쇄골(흔히 미인뼈라고 하는)이나 견갑골(등뒤의 세모진 날개뼈), 발목 안쪽의 푸른 정맥이 흘러지나가는 근육과 뼈가 맞대어 있는 부분, 어깨와 팔 사이의 둥근 관절들이 대리석조각처럼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또, 신기하게 운동한 흔적이 전혀 안 남는 사람들도 있다. 역시 나보다 나이 많아보이는(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거울 본지가 오래되서 나보다 어릴지도ㅠ)아주머니 하나는  다음 운동기구로 옮겨간 다음 보면 나의 조촐한 25-40파운드 덤벨이 무색하게 250파운드를 들었다놨다 한 흔적이 있는데, 머리에 테니스 헤드 밴드까지 두르고 짐과 집을 오가는 길에 한끼씩을 더 드시는지 넉넉한 살집에는 항상 변함이 없어 보인다. 


...

혹여, 건강을 위한 운동도 좋지만 일단 확실히 몸무게를 줄이는 것이 목적인 당신, 기본 원칙은 안타깝게도(!) 운동만 해도, 덜 먹기만 해도 안 되고 둘 다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잠깐 운동이야기 외에 식단조절(다이어트)도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운동하는 것 외에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서는 영양의 균형을 갖춘 식단을 유지하...기가 사실 상당히 어렵다! 일단 빼고 봐야하니, 몸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아쉬운데로 영양제나 챙겨먹고 일단 무게를 줄이는 데 전념하도록 한다. 
살이 남는다는 것은 간단하게 말해 이미 영양가가 남아돈다는 이야긴데, 한 두달 만에 골다공증 생겨 변기에 앉다가 뼈 자끈동 사태가 일어... 날 정도로 안 먹을 자신도 없을 거 아닌가? 
단, 프로틴을 전혀 섭취하지 않으면 심장등 무작위로 근육에서 뽑아쓰기 때문에 단백질은 반드시 섭취하도록 하고, 탄수화물을 전혀 섭취하지 않으면 특히 여성의 경우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고 하니 감안하도록 한다. 

참고로, 섭취하면 '소모'되는 순서는 탄수화물과 알콜이 제일 먼저고, 그 다음이 지방이고 프로틴이라고 한다. 프로틴은 주로 에너지음식이라기보다는 근육을 만드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하나라도 섭취하지 않으면 다른 쪽에서 끌어다 쓰기 때문에 칼로리 측면에서만 보면 사실 좋은 칼로리 나쁜 칼로리가 따로 없다고 보면 된다. 사과하나나 오레오 쿠키 하나나 같은 칼로리이고 너무 많이 먹으면 몸에 쌓이는 것은 매한가지다. 그냥 소모 순서 문제고, 칼로리 외에 비타민이나 미네랄 등 다른 좋은 것이 같이 얼마나 들어있는가, 그리고 그램당 칼로기가 다르기때문에 오는 같은 량 대비 포만감의 문제다. 포만감으로만 생각하면 야채나 프로틴을 먹는 것이 지방이나 탄수화물을 먹는 것보다 만족도가 높게 된다. 

허나, 여기도 함정은 있다. 물론 약간의 개인차가 있겠지만, 인간은 본래 현대인처럼 쉽게 고칼로리를 섭취하면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기회만 닿으면 고칼로리 음식을 선호해서 몸에 실제로 축적을 하려고 하도록 프로그램 되어있다. 수렵 채집 시절부터 본능적으로 단것이나 지방이 들은 음식을 좋아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음식을 먹으면 포만감은 적을지 모르지만 뇌에서 도파민같은 기분 좋으면 나오는 물질이 분비되는 것으로 포상을 하게 되어있다. 이 잔재로 인해 현대에서는 필요없는, 심지어 해가 되는 고칼로리 음식들을 추구하게 된다. 
애개, 나는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걸 이라고 말하는 당신, 혹 빵돌이 빵순이, 혹은 주당이 아닌가 한번 생각해보라. 빵과 설탕, 알콜은 무늬만 다른 실상은 같은 물건이다. 

별로 그렇게 '지나치게' 오래 살고 싶은 사람도 없겠지만(있나?), 우리보다도 더 장수국가인 일본인들은 소식으로 유명한데, 이 노친네들이 모두 영양실조로 비틀거린다거나 아침저녁으로 지진날때마다 뼈가 부러져가면서 살지는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고 마음을 편하게 먹도록 하자. 
오히려 지방이나 탄수화물 안 먹고 단백질만 먹는다고 닭가슴살과 벨페퍼(파프리카는 피망 혹은 bell pepper에서 만들어진 '향신료'를 가리키는 말인데 한국에서는 웬지 벨페퍼를 파프리카라고 하더라.)만 먹고 있는 것이 더 문제라는 사실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한국에서 흔히 황제다이어트라고 하는 앳킨 다이어트는 탄수화물을 조금이라도 먹지 말아야지 조금이라도 먹는 순간 포인트가 없어지는데 말이 그렇지 탄수화물을 전혀 안 먹기는 힘들다.(이 골다공증도 고지혈증이나 혈압처럼 나이들면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을 약 팔아먹으려고 질병화 시킨 것 중의 하나인데... 이 또한 다른 날 따로 할 얘기다.)
기본적으로 균형을 갖추고 싶으면, 적은 양이라도 그냥 알록달록하게 먹으면 된다. 영양소는 각각의 색이 다 있기 때문에 식탁이 알록달록 하면 골고루 먹는다고 보면 된다. 가령 고기만 구워먹으면 당연히 색이 안 예쁘겠지만, 한두가지 야채와 잡곡밥만 섞아도 양심의 가책으로 잠 못이루지는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

요즘은 좋은 앱도 많이 나와 있지만 일단, 먼저 적절한 감량의 골을 설정하는데 있어 현재 자신의 체지방률을 계산 하고 바람직한 체지방률이 되려면 얼마를 감량해야 하는지 알아 보도록 한다. 
WEBMD의 계산기가 가장 깔끔한데 
http://www.webmd.com/diet/body-bmi-calculator
미국외 국가에서 메트릭 시스템을 쓰고 싶으면 아쉬운데로
http://www.nhlbi.nih.gov/health/educational/lose_wt/BMI/bmicalc.htm
를 사용하여, 일단 너무 욕심내지 말고 적정한 선에서 한 두 달 안에 목표를 달성 할 수 있는 양을 찾도록 한다. 이렇게 일단 한두달 단위로 단계적 목표를 달성하면 다시 잡아나가는 식으로 목표를 잡아야 하는 이유는 두가지다. 
첫째, 일단 시작 몸무게에 따라 운동시간당 태우는 열량이 달라지니 몸무게가 줄수록 다시 섭취 열량을 조절해야 계속 감량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한참 잘 빠지다 갑자기 더이상 몸무게가 줄지 않는데서 오는 요요로 인한, 더 심각한 '포기현상'(!!)을 피할 수 있다. 
둘째는, 흔히 갑자기 많이 빼면 좋지 않다고 하니 얼핏 천천히 '꾸준히' 이어서 빼면 좋을것도 같지만, 그러면 무게가 줄어가는 모습도 잘 안 보이니 재미가 없어 좌절해서 포기하기도 쉽고,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사람이 지속적으로 오랫동안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살면 괜히 억울하고 재미 없는, 이른바 '사흘 굶은 시어머니' 현상이 생겨서(!!) 안된다. 

그러므로 확실하게 한 두달 안에 이 악물고 노력해서 일단 다소 눈에 띄는 양을 줄이고 나서(묵고잡은 것도 못 묵고 살아봐라 니, 한두달도 길데이~ 마, 한두달이 뭐꼬? 하루이틀도 길다. 내가 다 안데이~~), 일반적으로 뺄 때보다는 200칼로리정도 더 먹을 수 있는 유지모드로 들어가는 것이 낫다는 의견이다. 
힘들게 뺀거 도로 찔 생각이 없다면 천천히 빼든 빨리 빼든 그런 식생활에 적응을 해야하는 건 달라지지 않으니까. 

그렇게 목표 몸무게를 설정한 다음, 
몸무게와 성별 나이 대비, 일정기간동안, 일정 몸무게를 빼는데(혹은 늘리는데) 하루에 필요한 칼로리를 계산해주는 사이트를 방문하도록 한다. 
워낙 많지만 미국식 시스템과 메트릭을 둘 다 사용할 수 있는 사이트는:
 http://www.healthyweightforum.org/eng/calculators/calories-required/
칼로리정보는 음식당 칼로리도 제공하고 일일 칼로리 섭취량을 계산해주는 좋은 앱을 하나 다운 받도록 하면 좋지만, 스맛폰에 셀카봉으로 찍은 예쁜 사진 잔뜩 들어 앱들어갈 자리 없다는 당신은,  요즘엔 구글하면 칼로리 정보 차고도 넘치고, 과자나 음료수 포장을 봐도 노안으로는 읽을 수 없는 크기의 글자로 치사하게 적은 양대비를 제시해놓은 함정만 피하면(일테면 라면 반그릇 끓여먹는 사람은 드물텐데 반 그릇대비 열량이 표기되어있고, 과자는 크지도 않은 봉투를 7인분으로 계산해서 1/7봉투에 해당하는 칼로리가 씌여있는 것은 양반이고, 그램으로 표기된건 뭐냐. 누가 집에 음식용 저울로 그런 걸 달고 있다고ㅠ) 조금만 신경을 쓰면 얼마든지 해결 할 수가 있다. 미스 코리아 대회는 못 나가도 늙어서 내 발로 걸어다니자는데 그 정도도 못하겠는가!  
귀찮아도 처음에 조금만 신경을 써서 조금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대충 음식을 보면 칼로리가 나온다. 밥한공기가 280 칼로리라는 것을 알면 김밥 크기를보면 대충 한 줄에 600 이상은 훌쩍 넘는 다는 것을 아는 것 같은 것이다. 거기다 컵 라면(280-320)을 더하면, 2천칼로리로 계산을 해도 
축하합니다!!! 당신은 금방 가볍게 오늘 하루 칼로리의 반을 섭취하셨습니다. 짝짝짝!


일차 목표를 달성한 후에는 마무리로 다시 위의 사이트를 방문하여, 그 무게를 '유지'할 수 있는 칼로리를 다시 확인하여 꾸준히 지켜나가도록 하면 좋다. 
흔히 요요 현상이라는 것이 이것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목표량에 한참 못 미치는 칼로리를 지속적으로 먹고 있지 않았다면, 몸무게를 줄이고 나면 그 무게까지 도달하기 위해 필요했던 칼로리는 현재 몸무게로는 다시 남아도는 것이 되기 때문에 다시 몸에 쌓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제 지인 아들 돌잔치가서 정신을 잃고 버페 테이블을 세번 도셨는데 아침에 달아보니 다행이 몸무게가 늘지 않았다고 기뻐하는 당신, 메타볼리즘이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서 칼로리가 몸에 쌓이거나 몸의 지방이 다시 칼로리로 소모되는데는, 역시 개인차는 있겠지만 평균 24-48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어제 드신 것이 몸무게로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 이때 기쁜 마음으로 먹어도 괜찮구나 싶어서 넉넉히 먹기 시작하면 며칠 있다가 틀림없이 '딱히' 많이 먹지도 않은 날 아침 체중계가 실망을 시키게 되어있다. 

그런 경우, 화장실을 안 가서 무게가 많이 나왔나 보다고 자신을 위안을 하는 것을 즐겨하는 당신, 변은 장에 오래 머무를 수록 장벽으로 수분이 흡수가 더 되어 단단해지고 그러면 총무게가 줄어든다는 것을 기억하시라. 변비가 생기면 변이 장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져 변이 되어지면서 변보기가 힘들어지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오히려 붓기나 소변으로 인해 1-2파운드는 좋이 좌지우지 할 수 있다. 바람직하지 않아서 그렇지 권투선수가 체중조절을 위해 땀을 빼면 무게가 현저히 줄어드는 이유가 그것이다. 

먹는 것을 줄이면 변비가 걸린다는 것도 근거가 적다. 
변은 우리가 먹은 음식의 절대 부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변에는 일단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중에, 식물들의 세포벽을 구성하는 섬유질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파랗고 싱싱한 큼직한 야채들은 사실 거의 환상으로 세포벽안에 들어있는 수분이 대부분이다. 그 벽들이 무너지는 소리가 아삭아삭하는 소리인 것이다. 
그리고 변에는 우리 몸에서 피부와 피 등 죽은 세포들 중 재활용(그렇다. 몸은 매우 효율적인 기계다)가능 하지 않은 것들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하루에 죽어나가는 세포는 500-700개인 것을 감안하면 별로 먹지 않아도 내 몸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기능만 해도 장은 충분히 바쁘다. 음식물이 일단 위장에서 지내는 시간은 2-3시간 정도에 불과하지만, 대장 소장으로 넘어가 밖으로 나오기까지는 이틀정도가 걸린다. 즉, 어제 먹은것은 내일이나 되어야 나온다. 
역시 여담으로, 먼저 '제2의 뇌'에서도 말했지만, 변비는 현재까지 원인도 모르는 불치병중의 하나이다. 즉 변비는 대략 장의 운동의 문제에서 일어나는 병정상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면 매일 규칙적으로 화장실에 가는 것은 적게 먹고 많이 먹는 것의 문제가 아니다. 
(다행이도 나는 현재까지는-나이가 들수록 장의 운동도 줄어들게 된다고 함-아니지만, 겪는 사람들을 보면 상당히 괴로운 '병'임에 틀림없다. 흔히 독기가 몸으로 퍼지고 그런다는 것은 잘못 알려져 있는 것이지만, 장이 잘 운동을 안하면 변 보는 자체도 매우 괴로운 일이되고, 그런 과정에서 장벽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천공도 생길 수 있는 등 위험하다.) 

몸무게 당 유지할 수 있는 칼로리 결정 요소 중,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물론 성별은 안 바뀔지 모르지만(!) 나이는 꾸준히 먹기 때문에, 서글프게도 몇년 후에 다시 확인하면 같은 몸무게를 유지하기 위한 섭취가능 칼로리는 다시 줄어들게 되어있는 것이 또 아쉬움이다. 

가령(오늘 총대 맨다, 내가), 성인 평균 일일 권장량이 남자는 2000 여자는 1800인데, 나는 키/ 몸무게/나이/성별 감안 하루 필요량이 고작 1200kcal 정도이고 BMI(체지방률)은 19.2로 대충 정상인데, 밥 한'컵'(공기 아님)이 280이고 (조선이 대식국이라 불리었듯이 한국사람들은 주변 아시아국가들 대비 아무튼 다른 것도 아니고 이 '밥'을 이상하게 많이 먹는 경향이 있긴하다.  http://seehint.com/hint.asp?md=204&no=13628)  이름만 크지 실제로는 크지도 않은 빅맥이 467kcal (콜라와 프렌치프라이는 포함하지도 않았음)인 것을 감안하면 1200은 두끼니만 대충 잘 챙겨 먹어도 금새 차버려 커피에 half and half 크림넣기도 후덜덜인 분량이다. 
게다가 반복 또 반복 하듯이, 같은 운동을 해도 몸무게당 소모 칼로리가 달라지니 나같은 사람은 건강이나 유지하고 가끔 좋아하는 초콜릿 케익이나 먹을 수 있자는 거지 운동을 해도 어차피 칼로리소모에는 별로 도움이 안된다. 

사실 사람이 사는데 가장 칼로리 소모가 많이 되는 부분이 체온유지나 호흡, 소화등 생명유지기능이라서 움직이는 것은, 익숙해지면 더구나, 별로 소모가 안된다는 것에 주목하자. 
자, 일일 필요량이 1200이라는 이야기는 그걸 몸무게 증가 없이 어떻든 내 몸이 하루에 다 소모를 한다는 말인데, 전철역까지 30분 어슬렁어슬렁도 아니고 '씩씩하게' 걸어가봐야 고작 80칼로리 소모된다.(80이면 공기밥1/3공기도 안되고 초컬릿 한조각 정도이다. 만인이 좋아하는 베이글 아무것도 안 발라도 245인데 그러면 가뿐하게 라면 반그릇이다. 막상 아침으로 가볍게 라면 반그릇 칼로리 먹고 별로 배도 안 부르니 서운하재?)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살이 조금 넉넉한 사람들이 어슬렁 거리고 스맛폰 보며 숨만 쌕쌕 쉬어도 내가 얄궂은 운동한 것보다는 칼로리가 소모가 더 많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운동만으로는 감량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니 더더욱 방심을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되어있다.(가만, 칼로리소모가 잘 되려면 일단 몸무게를 늘리면 되겠...what?)

...

짐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들 중, 연초빤짝류를 넘어서 꾸준히 오는 사람들은 어떻든 루틴이 잡혀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오는데로 워터 파운틴에서 생수 한 병 받아들고, 늘 하던 순서대로 운동을 꾸준히 해나가고, 짐의 성격상 아무래도 몸이 드러나는 옷을 입은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이성에도, 그들의 시선에도 관심이 없이 그저 묵묵히 운동기구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이다.  

나도 매일 겨우 한시간 운동을 하고 나면 완전히 녹초가 되어 정말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일립티칼은 힘도 들지만, 매일같이 같은 운동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지겨운 일이라 아무리 좋아하는 음악이라도 매일 한시간씩 음악만으로 버티기에는 조금 힘들다. 시간도 아무래도 좀 아깝다. 
그래서 운동을 하기로 결정하면 그 시간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 것인지도 미리 준비를 하면 좋다. 나도 처음에는 음악만 듣다가, 조금 거추장스럽지만 아이패드로 미리 평소에 책 읽는 시간외에는 아까와서 담아두기만 했던 Tedtalk이나 podcast들을 챙겨보는 시간으로 활용해보았더니 그동안 밀린 Vsauce도 따라잡을 수가 있고(vsauce는 현재까지는 나와 정신세계가 가장 비슷한 사람으로 간주되는 사람이 만드는 10분정도의 비디오 시리즈인데 한번 찾아서들 보시라.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  유튭에서 글렌 굴드나 루간스키 등의 연주장면들도 볼 수가 있는 알찬 시간이 되었다.(연주하는 것을 보는 것은 소리로만 듣는것하고는 참 다르다. 사람은 참으로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이참에 오페라들도 찬찬히 챙겨보고, 운동하면서는 땀이나서 책은 보기가 힘들다고 고려하지 않던 것을 e book 이나 audio book 정보를 모아 본격적으로 책도 더 많이 볼 수 있는 시간으로도 만들려고 계획하고 보니 이제 시간도 덜 아깝고 좋다. 

이 글을 시작한 지난 주에는, 오랫만에 반가운 감기로 기침에 목도 완전히 쉬어버렸었지만 앓아 누워버리면 다시는 못 일어날것 같아서 그냥 운동을 매일 갔다. 그리고 돌아올 때마다 내일은 정말 쉬어야 하나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젖은 머리를 시원하게 겨울공기에 흩으며 집에 돌아오면, 그리고 운동한 김에 기분좋게 가벼운 간식을 먹고는, 속에 좋은 느릅나무 티를 끓여 감싸안고, 포근한 슬리퍼에 발을 집어넣고, 탁상등의 둥그런 불빛 아래 책과 함께 들어가 지쳐 잠이 들때까지 또 열심히 읽다보면, 다음날 다시 그 시간에는 어김없이 새로  기운을 내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일주일을 하고 나니 몸이 나아지면서야 아 내가 진짜 아팠구나, 어쩐지 어지럽더라니 하고 또(!!!) 깨닫게 되더라. 
(이게 내 고질병이다.ㅠ 아프면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고 나를 마구 내몰다가는, 낫고 나서야 내가 진짜 아팠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 즉, 용감하고 씩씩해서 그러고 있는것이 아니라 내가 겁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내가 아플때의 모습은 대략 연약한 사슴 총 맞은 곰이 공포와 혼란으로 뿌얘진 시야를 가지고 비틀비틀 집으로 돌아와 상처를 핥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다시 말하지만 루틴, 어떻게 내가 결심한 것들을 삶의 일부로 만들어 나가 의사결정 과정을 안 걸치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삶을 단순하게 만들려면 스스로에게 옵션을 안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3월도 중순에 접어들었으니, 곧 날이 풀리면서 반짝무리들이 이런저런 합리화로 하나씩 둘씩 사라져갈때 꾸준한 무리는 남을 것이다. 그리고 연말에 나타나는 나같은 얼빵한 새내기에게 열심히 하자고 묵언의 응원을 해 줄 것이다. 
그 무리에 함께 '우리'가 되고 싶다. 
우리 사는 다른  모든 것도 그런 것 같다. 순간순간 몸 편한데로 살아가면서, 이런핑계 저런 핑계를 대거나, 계속 생각만 하고 미루거나, 말부터, 혹은 말로만 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내가 하기로 결심한 것을 행동으로 조용히 지켜나가면서 소란스럽지 않게 그렇게 꾸준히, 열심히 살아가려고 한다. 
나라를 구하지는 않았어도 그 정도면 다음 생에 지렁이로 태어나 토룡탕이 되지는 않겠지. 

이미 이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버렸는데 토룡탕이 되어선 안 될 이유는 또 무엇이겠느냐마는. 허허.




'언어'에 관하여(끝나지 않는 숙제)



그 전에는 친구와 가족말고는 한국사람은 팔로우를 전혀 안하던 트윗에서 최근 일부러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을 팔로우 하기 시작했다.('한국'을 알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한글'을 알고 싶다는 것이라서 너무 정치적 냄새를 띄면 언팔함) 내가 잘 쓴 한글을 너무 오래 접하지 않아서 갈수록 내가 한글이 영어보다 어렵다고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몇몇 사람들의 글을 따라가다 보니, 한글이 무조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쓸데없는 관념적이고 상투적인 어려운 한자어들을 줄줄 꿰어놓은 것 같은 글을 쓰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써놓으면 글은 짧아지고 농도가 걸쭉해지는 지 모르겠지만, 단어 하나하나는 알겠는데 전체 문장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 글이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흔히 좀 씁네 하는데 사실은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를 하고 있고, 어떤 사람은 몇자 안되는 쉬운 말로 깜짝 놀랄 정도로 '좋은' 한글을 구사 하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몇자 안되는 말'로 순전히 남을 감동 시키기 위한 상투적이고 그럴싸한 말장난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전자를 현학적이라고 하면 후자는 현감적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현학적인 글을 쓰는 사람일수록 트윗 한칸으로 할말을 다 못하고 줄줄이 자기 트윗에 자기 댓글로 '글'을 쓰는 모습을 보여 트윗의 본연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지만 그것도 그냥 개인 취향이라고 해두자)

애초에 한글이 한자어가 많아진 것은 물론 중국의 속국이었던 단순 역사관련도 틀림없이 있지만, 사회전반이 아는 체, 난 체를 좋아하다 보니 어려운 단어를 많이 써야 있어보이는 이유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현재는 그렇지 않지만 고대의 유럽 학자들은 라틴어를 많이 썼다든가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영어단어중에서도 용도에 따라 하층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쓰던 Germanic language (독일어와 전혀 상관 없이, 인도-유럽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던 언어를 가리키는 말이다) 에서 온 말들이 있고(pig, cow, chicken etc.) 라틴어에서 온 단어들이 온 이유가 있는 것처럼 (pork, beef, poultry etc.) 아무래도 언어가 사회계층을 나누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쉽게 말 할 수 있는 것을 어렵게 밖에 말 못하는 것도 재주가 모자라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특히 한국의 사람들 인터뷰하는 장면을 보면  문득 유식해 보이려고 그러는지 그런 현상이 더 강하다.

당장 지금 트윗으로 넘어가 하나 살짝 따오자면,
박호라는 분이 쓰신
'그리고 이는 단순히 성차별 문제를 넘어 매체 신뢰도에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주는 행위다. 향후 경향이 소위 진보매체를 표방하며 어떤 입장을 취하든 이 사건을 잊지 않고 계속 주시하겠다.' 라는 말은, 
'그리고 이는 단순히 남녀차별 문제를 넘어서 장기적으로는 사람들이 언론을 믿지 못하게 만든다. 앞으로 언론이 표면적으로 소위 '진보'의 태도를 취하는 입장을 취하더라도 이 사건을 잊지 않고 계속 지켜보겠다'
고 하면 더 쉽지 않나.
글을 못 썼다거나(내가 감히 그럴리가. 그동안 정말 한국말을 많이 잃어버려서 이런 문장을 보면 한국말이 이런거구나 하고 번번히 놀란다) 틀렸다는 것이 절대절대절대 아니라 정말 단순히 나같이 무식한 사람들 위한 더 쉬운 말이 틀림없이 있을텐데 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 문장은 지금 당장 제일 먼저 잡히는 것을 집은 것이지 더 난해하고 뭔소린지 몰라 내가 지금 '번역'(!!!)을 못하겠는 문장도 많다.
'이런건 썪는 게 아니니까', 하고 말하면 될 것을 '이 제품은 유효기간이 존재하지 않는 연유'라고 하는 식이다.

현학적이라고 하지만, 일단 그렇게 한자어를 많이 쓰는 한국말의 구조상 영어로 big word 라고 하는 소위 '어려운 말'을 쓰면 짧은 글안에 함축된 뜻을 집어넣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160자의 짧은 트윗에서는 또 더할 나위없이 좋은 도구이기도 한 것같긴 하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어떤 관념적인 난해한 단어들은 쓴 사람이 정말 뜻을 알고 쓰고 있는지 그냥 많이들 쓰니까 덩달아 가져다 쓰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을 때가 많다.
좋지 않은 번역은 번역자가 문장을 이해하지 못해서거나(모르긴 몰라도 그렇다면 그런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 같지만 돈 때문이라면...) 직역을 해놓았을 경우일 수도 있지만, 흔히 자신의 머리로는 이해한 문장을 읽는 사람 입장에서 이해가도록 쓰는 과정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듯이 듣는 사람이 이해를 하지 못한 것은 말한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

내가 '영어가 쉽다'고 하면 내가 영어를 읽는게 쉽고 안 쉽고의 '내' 언어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영어자체가 배우고 사용하기 쉬운 언어라는 것이고,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기 보다는 쉽게 풀어쓰는 습관을 가지기 쉽다는 것이다.
영어는 글 안에 같은 뜻의 단어를 여러번 쓰게되면 각각 다른 단어를 쓰도록 하기 때문에 처음에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매우 피곤하게 생각하기 쉽다. 일껏 사전을 찾으면(요즘은 전자가 되지 옛날에는 직접 뒤적여 찾는 수고가 더 컸다) 또 같은 뜻의 단어고, 또 같은 뜻의 단어라고 하소연을 하는 사람이 많다. btdt(이제이 영어 한마디 : Been there, Done that. 의 줄임말로 다 가보고 다 해본일이야~ 즉 내가 다 안데이~ 란 말이다)
이 때문에 영어는 thesaurus 동의어 사전의 사용이 매우 빈번하지만, 자칫 잘못 사용하면 우스꽝스러운 문장이 될 수가 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쇼 Friends 에서 무식한 Joey가 친구들이 아이를 입양하는데 추천장을 써주는데, 유식한 것처럼 보일려고 동의어 사전을 찾아 '사람'을 '호모 사피엔스'라고 쓴 장면이 유명하다. 다. https://www.youtube.com/watch?v=9s0LqZMsfTQ


그런데 한글은, 같은 단어를, 심한 경우 같은 문장안에서도 무슨 주문처럼 반복해서 사용함으로써 자칫 문장이 무겁기 쉽고, 이따금 아주 단순한 단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상하게 생긴 것 같이 느끼는 현상처럼 나중에는 그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모르게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영미가 강국이어서인것도 크지만, 영어를 전세계가 널리 사용하게 된 이유가 언어가 사용하기 쉬워서라고 생각하다 보니, 어쩌면 반대로 사용하기 쉬운 언어를 가지고 있어서 강국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언어는 그만큼 중요하다.
대중 상대의 책이라고는 해도 하버드(정말이지 상투적인 레퍼런스를 끌어대고 싶지는 않지만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교수인 언어학자 Steven Pinker나 곤충학자 E.O. Wilson 의  책을 읽어보면 정말 쉬워서 문외한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다. 흔한 쉬운 어쩌구, 재미있는 저쩌구 이야기 식으로 나오는 한국책들은 안타깝게도 흔히 쉽지도 재미있지도 않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영어는 관심만 있으면 문외한도 필요한 대중상대가 아닌 논문도 대충 재미로 읽을 수가 있다.

좋은 영화의 편집은 전체 분위기를 설정하는 풍경은 놓아두고 대화장면을 잘 잘라내는데 반해 나쁜 영화 편집은 이야기 관련 없다고 전자의 장면을 잘라낸다고 했다. 그런 것 처럼,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독자에게 전체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한 얼핏 보아 쓸데없어보이는 장면을 집어 넣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최근에 읽은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에 나오는 인물 묘사를 몇개 예로 들자면, 한 사람이 들어오는데 '그 사람과 부츠도 같이 들어왔다'고 했다. 잘 맞지 않는 너무 큰 부츠를 신고 있다는 것을 해학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겨드랑이가 너무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이따금 몸을 움직거리고 있다거나, 어머니가 아들을 만나 반가움에 펑펑 울고난 후, '머리를 한쪽으로, 그리고 다시 다른 쪽으로 기울이며 눈물을 닦는다'는 절묘한 묘사도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한글의 평균 길이를 보면 그런 것들을 집어 넣을 자리는 많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더 어렵고 내가 재주가 없다고 글쓰기를 포기하게 만든 부분이다. 그동안 몇번 말했듯이, 흔히 한글로는 장편이라고 해도 영어로는 잘해야 노벨라 정도이고, 최근 신춘문예기준 단편소설의 길이(원고지 80장)의 작품들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산문시에 가깝다고 볼 수가 있을 정도다. 군더더기가 조금도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사람의 몸으로 비유하면 그냥 날씬 한것도 모자라 근육으로 빈틈없이 다져진 몸이라고 하겠다.

한글의 독자 readership들이 lazy 한 것도 있다.(천성이 '게으른 사람' 들이라는 것이 아니라-나처럼 놀고 먹는 사람이 그런말을 할 자격이 없다- 영어로 lazy란 말을 이렇게 쓰면 그냥 전반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기 싫어한다는 의미의 말이 된다.)
방금도 lazy라는 말의 용도를 설명해야 했듯이, 영어를 직역이 아닌 한글로 '알아 들을 수 있게 잘' 번역하면 글이 기본적으로 길어지기도 하지만, 한국사람들은 워낙에 두꺼운 잔 글씨 책을 읽는것에 익숙치 않아서 여러 권이 되기 쉽다. 나누어서 여러 권으로 팔아먹으려는 출판사의 상흔도 있지만 영어로 800-1000 페이지 책을 한국의 좋은 종이, 구조상 영어보다 크기 쉬운 활자 책으로 한권으로 집어넣는 것은 물리적으로 상당히 힘들기는 할 것이다. (한국에서 맞춰 온 내 멀티포컬 안경이 한국활자를 기준으로 잡아준 것이라 그런지 영어 활자 중 잔 것은 조금 힘들다.)
어떻든, 한국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절대 길이가 긴 글을 읽을 준비가 잘 안 되어있다. 올리버 삭스(뉴욕의대 신경학교수)나 리차드 도킨스(옥스포드대 명예교수)같이 자기 의견 많은 사람들은(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긴 해도 정말이지 말이 많은 사람들이다!) 책도 많이 쓰지만, 가끔 아티클을 하나 써도 몇페이지고 줄줄줄줄 써내려가지만 전혀 어렵지는 않은데, 한국의 아티클들을 기준으로 예측컨데 한글로 그런 길이를 쓰면 아무리 인기있고 존경스러운 사람이 써도 많이 읽지 않을 것이다.

어떻든, 나는 그동안 영어로 읽으면서 배운 장사가 쉽게 쓰는 것이라서 최대한으로 글을 풀어 쓰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그렇게 쓰다보면 우선 글의 절대 길이도 길어져 짧은 글에 익숙한 한국사람들을 읽을 엄두가 안나게 하는 경향이 있긴 하다. 그리고, 아무도 읽어주지 않아도 나는 그저 내가 잘 쓰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뿐이라는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글이 지저분해지는 것도 스스로 불만이다. 그것을 해결하고 중간점을 찾는 것이 나의 끊임없는 숙제라고 할 수 있겠다.

...

*내가 넘은 못 쓰고 나는 잘 쓴다는 말 하자는게 아니라는 증거로, 내가 나이 상관없이 철푸덕 엎드려 절을 하거나 손을 한번 잡아보고 싶게 하는 정말 한국말 잘 하는 사람들 몇 명을 남긴다.

먼저 백석의 시도 그랬지만, 서정주의 시도 '국화옆에서'는 그의 시 중 가장 dull 한 것이다는 것을 http://fr.catholic.or.kr/jhkh59/poem&music/poem13.htm 에서 볼 수 있다. '문둥이' 와 '눈물 나네' 같은 것은 어머, 내가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

거장들은 선입견이 있어서 그렇다고 할 당신을 위해 최근에 창비 문학 블로그에서 주운  주옥같은 시 하나 더,(그러고 보니 이 시를 올린 창비 팀장이라는 박신규란 사람도 글 잘 쓰고 함께 있는 다른 시들도 좋구나...당췌 한국에는 아는 이름이 없어서 이런 사람들을 '발견'하면 뭐랄까, 글을 잘 써주어서 고맙다고나 할까? 그런 발칙한 느낌...)



비가 오려 할 때
                                    문태준

비가 오려 할 때
그녀가 손등으로 눈을 꾹 눌러 닦아 울려고 할 때
바람의 살들이 청보리밭을 술렁이게 할 때
소심한 공증인처럼 굴던 까만 염소가 멀리서 이끌려 돌아 올 때
절름발이 학수형님이 비료를 지고 열무밭으로 나갈 때
먼저 온 빗방울들이 개울물 위에 둥근 우산을 펼 때

                                                 <맨발> 시집 중에서





Thursday, February 26, 2015

'현대도시인의 고질병' 시리즈의 변

먼저 '누가 누구를 짠하다고 하는가'에서 시작된 것이 어쩌다보니 그 사이에 포스트 세개의 시리즈가 되고 말았다.

주로 시리즈가 시작되는 이유 자체가, 정말 딱 한마디만 하려던 것이 자꾸 길어지면서, 그러면서 주제가 자꾸 나누어 지면서 어쩌다가 일어나는 일인지라, 이번에도 예측 못한 일이었기 때문에 일단 번호는 여기서부터 붙이기로 하겠다.
(그전에도 어딘가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내게 있어 뭔가를 쓴다는 것은, 책을 읽는 동안 맴돌던 생각을 머리에서 치워 다시 다음 책을 읽을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과정이다. 책을 읽으면서 뭔가 생각이 나면 방해가 되니까 일단 메모만 해놓았다가, 책이 끝나는데로  옆에다 비록 decaf : caf  비율이 2:1 인 커피나마 french presser  한 가득 채워 가져다 놓고 일단 시작하는데, 곧잘 길이와 주제에 따라 창이 자꾸 열리면서, 급기야 한꺼번에 창을 댓개 열어놓고 여기갔다 저기갔다 하면서 마구 머릿속에 있는 것을 내려놓기 시작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무슨 오케스트라 지휘자 처럼 정신을 집중하고 모든 것을 서로 아귀가 맞게 제자리에 내려 놓는데 따로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아직 완성이 안된 상태에서 버튼이 잘못 눌러져서ㅠ 일순 포스트가 올라갔다 내려가는 일이 있었다. 그 중, 먼저 '하나뿐인 지구, 하나뿐인 나'처럼 너무 길어 가르지도 못하고 이왕 올라간 것, 심각하지 않은 미흡한 부분은 차차 수정을 해나가는  것으로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전혀 준비가 안 된 것의 경우는 허둥지둥 바로 도로 내려간 일이 있었고, 아마 그 사이에 들어오신 분들은 갑자기 포스트가 사라져서 의아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이 blogspot.com 블로그는 누가 읽는지는 알 수 없으나 관리자가 포스트 조회수는 알 수 있음)

조만간 다시 책이 끝나는데로(지난 포스트 후로 세권이 지났으나, 다음 책은 조금 오래 걸릴 것 같아서 특별히 시간을 들여 어제 오늘 하고 싶었던 일러스트레이션들도 하고, 그동안 쌓인 포스트를 폭풍정리하며 열심히 '놀고' 있음) 뒤늦게 다시 시작할 예정인 '미국의 문제점' 시리즈의 프롤로그에서 다시 미국에 대한 내 애매한 입장을 따로 밝힐 생각이지만, 내가 떠난 조국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밖에 살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꾸 불평만 늘어놓는다고 생각하기 쉬운 당신, 일단, 내가 현대 도시생활 전반, 또 그러다보면 역시 피치 못할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때는 오히려 지극한 애정을 담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변을 올리기로 했다. 미국에 대해 불평을 하고 있을 때는 '변'이 아니라 그냥 프롤로그가 되는 것만 보아도 나의 '조국'이란 것에 대한 오묘한 애정을 엿볼수 있다.
그리고 내가 무엇에든 답을 알아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고 싶은 것이다. 현상은 명백하게 이러한데, 왜 그렇게들 행동하는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해서, 내가 감히 이런 글들을 쓰기로 결정한 이유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떠난 사람으로써 그 안에서 늘 바쁘게 바글거리고 있는 사람들은 볼 수 없지만  밖에서는 볼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다. 내가 맞다기보다는 그냥 새로운 시각으로, 어디서 건방지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저것을 한번 보라고 '가리키고' 싶었다.
그래서 한번들 보고, 누군가는 혹 조금 아프더라도 뭔가 잠깐이라도 느끼고 생각해 볼 것이 있다면, 금새 바뀌지는 않더라도 한번 돌아보는 계기도 되어 주면 좋겠고, 혹 내 말에 동의를 한다면 같이 한숨을 쉬면서 고민해보자는 뜻에서.
나는 결국, 누가 나쁘다, 틀렸다고 말하자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보아 정신없이 남들 하는데로 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다들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모두들 잠재적으로는 알고 있을, 더 행복하게, 아름답게 사는 법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고 싶은 거니까. 모두들 알고는 있지만 자주 잊고 사는, 내재하고 있는 참 아름다움을 끌어내고 싶은 것이니까.

둘째, 물론, 최근에 읽은 밀란 쿤데라도 지적했듯이(이번 책 끝나고 끊임없는 소위 '진보'를 추구하는 사회의 벙폐에 대해서 얘기할때 다시 언급할 예정) 어느 한 국가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애국심이란 것이 자동으로 생기는 것이 절대 아니지만, 아무래도 외국에서 외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생각하면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학예회 무대에 올려보낸 아이를 보는 심정으로, 모국이 잘하는 것이 있으면 잘하는 데로, 못하는 것이 있으면 안타까운데로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흔히 한국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들은 안에서 영익을 목적으로 과장을 하거나 일회성인 경우가 많아 빛좋은 개살구인 경우가 많고, 우리는 별로 자랑스럽지가 않은 경우가 많다. 가령 우리는 싸이보다는 요즘은 어느 일반수퍼를 가도 만날 수 있는 신라면이, 혹은 아는 사람만 아는 김연아보다는 맨하탄 한복판의 한국거리가 더 한국민의 파워를 보여준다고 느끼고 그래서 흐뭇하다 )
즉, 믿기지 않겠지만 실제로 나와 살기때문에 사는 사람에게는 없을지도 모르는 애국심도, 모국애도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셋째,  지방사람들이 흥분하면 사투리하듯이 내가 요즘은 흥분하면 영어가 더 나온다고 하지만(나도 이 이상한 현상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사람이 흥분한다는 말은 전투모드이고, 미국에서 살아온 내 인생의 1/3동안 서바이벌을 위한 '전투'는 영어로 하고 있었기 때문인것 같다. 즉 뭔가 따지거나 주장하는 등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곳에서 혼자 '이기기 위한 말'을 하고 있을때는 내가 영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는 말이다. 문득 애면글면 살아온 세월이 주마등처럼...훌쩍, 팽~), 여기다 뼈/가루를 묻어/날려도 나는 태생이 한국인이고, 당연히 모국어가 더 능한데도, 점점 한국을, 그 현학적이고 가부장적이고 편견이 넘쳐나는 문화를 이해하기 어려워지고, 또 그렇다는 사실을 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없는 동안 한국이 변한 부분도 그렇지만, 오히려 나는 변했는데 한국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부분들이 더 어려운 것도 많다. 어떤 것은 옛날에는 나도 당연히 여겼던 것이 지금은 정말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혼수(특히 애교예단!)나 장례절차 같은 것이 그것이다.

넷째, 내가 불평하는 부분들도 절대로 내가 더 낫거나 더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한국인임을 더 인식하고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한국인의 현재 행동들이 나 자신의 생각과 태도도 은연 중에 반영한다고 일단 가정하고, 나 스스로부터 달라지고 고쳐나가려고 생각하면서 늘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역시 이런저런 비판과 불평을 자신있게 하면서도 나아지든 못해지든 한국에 머무르는 사람들과는 달리, 떠나온 시점부터 다른 길을 가기 시작한 나의 생각과 행동, 그 갈림길에 대해 백야에 나오는 바르시니코프처럼 망명자가 가질 듯한 모종의 죄책감과 책임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불평을 할 자격도 없다는 생각이 불효자처럼 늘 마음 한구석에 있기 때문에, 조국이 불평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 되어주면 좋겠다는 역설적인 생각을 한다고 할까.

그래서 미국의 문제점에 대한 불만은 주로 정책이나 실용적인 국가 전반의 문제인데 반해, 한국에 대한 불만(인정한다)은, 나와 사는 나에게 미치는 영향도 적고 나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그런 부분보다 주로 인간관계의 레벨이다. 사회가 바뀌려면 각자가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번번히 새로이 깨닫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 하나부터 바뀌는 법 밖에 없다고 믿는 까닭이다.

...

영어 표현으로 'Don't kill the messenger'이라는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전령을 죽이지 말라는 이말은, 흔히 소식이 마음에 안든다고 해서 정작 나쁜 소식의 '원인'도 아닌 소식을 전하는 전령일 뿐인 사람을 신경질 난다고 죽여버리고 싶어하는 인간의 심리를 말하는 것이다.
지구 기후 변화라는 불편한 진실들을 일단 인정하고 나면, 그것을 일으키는 원인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생활이 불편해지기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실을 부인하고 싶어했던 미국 공화당도 결국 진실은 인정을 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다. 외면한다고 해서 진실이 없어지지도 잊혀지지도 않는다. '하나뿐인..'에서 내가 말했듯이 흔히 진실은 아프지만 현실을 직시하는 순간 더 자유로와진다는 것을 기억하자.
내 말은, 누가 내 글을 읽더라도, 자신에게 해당 안 되는 일은 나와 같이 불평하면 그 뿐이고, 혹 내가 하는 말들이 다소 아프다면 그 이유 자체가 어딘가 일말의 진실이 있다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고, 그런 경우는 삼초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면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내가 불만한 것에 대해 다른 곳에서 달리 말한 적도 없고, 내가 모순된 행동을 한적도 없으니까. 기껏 말을 해도 안 들은 사람들이 있을 뿐.
그리고, 혹, 치사하다, 왜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지 않느냐, 왜 그리 불만이 많느냐고 불평하는 당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아이를 정말 바람직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잘 키우는 방법은, 조건 없는 사랑 한답시고 나만 이쁘고 남들은 다 싫어할 아이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나는 가끔 정말 하기 싫은 역할을 담당해서라도 아이가 세상에서 나 없이도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가지도록 키워나가는 것이듯이,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듯이, 이것도 당신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믿어주기 바랄 뿐이다.

...


이 덧없는 푸념 시리즈가 끝나고, 다음 책 끝나고 짜투리 포스트 몇개 후에는, 그동안 식도염관련 외에도 다시 꾸준한 독자층이 있는 '미국의 문제점 시리즈'를 다시 시작할 예정입니다. 불만 투성이인 본인은 한국/도시 뿐 아니라 틀림없이 미국에도 불만이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오늘 오랜만의 포스트기념 음악은 샹송가수 Laurent Volulzy의 달달한 My Song of You.
https://www.youtube.com/watch?v=31WX_kK6Z2g (아이패드는 블로그에 비디오가 직접 안 뜨길래 just in case)

현대 도시인의 고질병: 술과 사진사이(3)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중학교이후로 처음 만난 친구 하나가, 자기는 비로소 자신의 늙어가는 얼굴과 타협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부러운 일이다. 내가 달리 방법도 없는데 굳이 안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얼마전, 옛날의 내가 젊고 예쁜 줄 알았더니 그냥 젊기만 했더라는 것을 깨달은 바, 살면 살수록 아침마다 똑같아 지루함을 넘어서 점점 실망스러워지는 자신의 얼굴과 타협한다는 것은 상당한 내공이지 싶었다.

사람이 각자가 지닌 아름다움이 있고, 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 우리나이에 예쁘면 얼마나 예쁘고, 안 예쁘면 얼마나 안 예쁘겠느냐마는, 내가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 이유는, 첫째가 사진은 한 컷으로 어차피 그 사람의 살아있는 모습이 잘 안 보여 의미가 적기 때문이고, 둘째는 포샵을 해봐야 피차 아는 거짓이니 덧없고, 마지막이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로, 오랫만에 만나 소풍단체사진 찍듯 기념으로 전체 한장 찍어두는 것은 몰라도, 잘 놀다가 자꾸만 기억에 실제로 남을 사람들 얼굴이 아니라 사진기 렌즈를 바라보고 뻘쭘한 웃음을 웃어야 한다는 것이 싫어서다.

날더러 사진 찍는데 안 웃는다고 자꾸 뭐라고들 하는데, 사진기 렌즈를 보고 반가우면 웃지 말래도 웃겠지? 본래가 코미디하던 사람도 늙으면 악역을 맡는 법인데, 사람이 웃는 얼굴이 더 보기 좋은 것은 당연하지만, 렌즈가 그렇게 반가와 절로 웃음이 나올리는 없지 않는가.(그리고 미안한 말이지만 사진 찍는 것 싫다는데 찍어'주는' 사람을 보아도 그리 반가울리가 없다)

그런데 이 친구, 그러고는 한동안 매일같이 자신의 이런 사진 저런 사진을 자주 올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말해두는데, 학교다닐때 인기도 있었던 예쁜 친구다. 그런데 나는 조금 의아했다. 아마도 자신의 얼굴을 자신이 받아들이는 것과, 남들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그리고 아마도, 그래서 내가 내 사진을 보여주기 싫어할 뿐아니라 남의 사진도 솔직히 별로 보고 싶지가 않은가 보다고 생각했다. 남도 내 사진만으로는 나를 알 수 없듯이, 나도 사진 한 컷으로 남들에 대한 인상을 제대로 읽었다고 책임지고 말 할 수 없는 것 같아서다.

그래서 나는 모임있다고 사진 올려달라고 한 적도 없다.(말했지만 나는 빈말은 못하고, 따라서 내가 실수로-!- 저절로 나오는 칭찬을 하면 진심이거니 믿어도 좋다. 내가 한번이라도 모임 사진 올려달라고 한 증거를 가져오면 경품드립니다) 더구나 얼핏 여건상 나처럼 자주 직접 못 만나는 사람은 사진이라도 더 자주 보고 싶을 것 같지만, 위에 말했듯이 사진은 순간적인 한 컷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가장 예쁜 모습을 볼 수가 없어서 싫다. 아무리 잘 나온 사진이라도 내가 아는 예쁜 모습이 사진 한장에 담기기는 정말 어렵다. 즉 내가 보기 싫다는 것은 어쩌면, 더 보기 좋은 모습을 알고 있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어떤 좋은 사람을 생각하면 기억하는 모습은 어쩌다 사진속에서 본 가장 최근의 모습이 아니라, 마지막 직접 보았을때 만나서 반가운 표정을 짓던 그 얼굴이게 마련이다. 그래서, 자꾸 어색한 사진만 보느니 먼저 만났을때의 고운 모습을 간직하고 다시 보고 싶다 생각하면서 생각하는 것이 더 낫다. 설명을 해도 이것을 이해해 주는 사람은 뜻밖에 참 드물다.
물론 한참 점점 예뻐지는 20대가 아니고서야 세월이 지나서 만나면 더 늙었을 것이고, 무조건 하나도 안 변했다고 생각해줄 수도, 그것을 기대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 모습이 '보기 싫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늙어간다는 것이 조금 서글퍼서 그런 것 뿐이지, 그래도 아끼는 친구들은 실제로 모습이 많이 변한 친구들도 마음속에 간직한 고운 모습들이 그 사람의 에센스를 담은 실체로 가슴속에 남아 있다는 것을 나도 이번에 깨달았다.(그리고 깜짝놀랄 포토제닉도 틀림없이 있지만 대부분은 실물이 더 낫다-이 포토제닉들이 사진 찍는 것 좋아하는 마음은 당연히 이해함!)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이런모습 저런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별로 가깝지 않은 사람들은 한두번 요즘 모습 어떤가 보고 나면, 직접 만나 실제 모습을 서로 보지도 못하는 거, 사진만으로는 별로 보고 싶지도, 보여주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실제로 모두의 얼굴은 객관적인 눈으로 보는게 아니니까 같은 얼굴이라도 의미없는 남이 보면 달리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가 나이가 들수록, 내가 예쁘게 나온 사진보다 얼굴이 혹 제대로 안 나왔어도 전체 분위기가 행복해보이고 좋은 사진이 좋아진다.

내가 최근에 한국을 무기한 접은 이유 중의 하나도 같은 맥락이다. 메신저로만, 사진으로만으로는 영 실체가 없더라. 내가 상상력이 부족한지 몰라도 그렇게는 존재가 느껴지지 않더라. 아니, 사진 속의 모습은 나와 그들이 다르게 살고 있다는 것을 더 보여주어 점점 더 멀게 느껴지게 하더라.

...

그런데 여기서 술이 사진을 마중을 나오면 문제가 더 악화된다는 거다. 여기서 오늘의 주제인 비와 찻잔 사이가 아니라 술과 사진사이가 나온다.

다시 말하지만 나도 가족과 아끼는 사람들 얼굴은 자주 보고 싶다. 화상통화는 사람의 표정을 읽을 수 있고, 상호작용을 할 수 있고, 목소리도 들을 수 있어서 사진은 싫어하는 나도 가족들과의 화상통화는 애용하는 편이다. 그리고, 어디서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보니 엄마 사진이 없더라는 이야기를 듣고나서부터는 딸이 찍자고 할때마다 싫은 것을 참고 열심히 찍어주는 편이다. 내가 남들처럼 애정표시(!)를 드러나게 하지는 않아 얼핏 쌀쌀 맞은 것 같아도 나의 깊은 사랑을 아무에게나 주기 아까와서 그렇지 내사람들로 결정한 소수의 몇몇에게는 또 나름 진득하다.

한데,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으면 또 틀림없이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폭넓게 자주, 많이 '보고' 싶어하는 덕망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런 사람이 있으면 또 자주 많이 '보여주고' 싶은 너그러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이 사진 잔치가 벌어지기 시작했거니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스맛폰때문에 사진기가 항상 있어서 그렇다고 분석할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사람들이 그런 것을 좋아했으니까 단순한 수요와 공급의 원리로 사진 기능이 그리 진화를 했다고 볼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그게 얼굴이든 풍경이든 음식이든, 이빨빠질 냉수담을 '그릇'이든)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도 일종의 사랑이라고 할수 있다. 흔해질 수록 사랑의 값어치는 떨어지긴 하지만.

그리고,
일단 내가 술을 많이 마시든 안 마시든, 술자리 가지는 것 자체도 천분 만분 밀리언분 이해한다.
소위 '스트레스성 질환' 하나 없는 사람 없는 도시생활에 늘 힘든 당신, 술을 먹고 '잊는다'고 괴롭히는 그게 실제로 '없어지'는거면 부디 많이 마셔라. 내가 매일같이 새벽이슬 맞고 지게지고 나가 말술을 받아다 주리라. 사람 몸이라는 것은 참으로 복잡다단한 것이라서, 담배도 참느니 그게 더 병되는 사람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없어지는것은 둘째고 실제로 잊어지기라도 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다음날 속 뒤집어지면 그게 더 잊고 싶을텐데.)
그냥 한잔 마시면 기분 좋고 릴랙스가 되서 마신다고 하면 좋다. 차마실 자리가 있고 술 마실 자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술자리, 나쁠 것 없다.

(물론, 각자 자기 페이스대로 살살 마시면서, 오징어든 상사든 맛있는 안주를 먹으면서 분위기 좋게 천천히 취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십전대보탕도 아닌 것을, 누가 쫒아오는 것처럼, 억지게임을 해서라도 순식간에 서로  앞다투어 퍼 먹고 인사불성이 되어야 하는 이유부터 시작해서, 나이가 몇갠데 먹고 싶으면 많든 적든 각자 먹지 누가 먹여서 먹은 것처럼 구는 것도, 아니면 무슨 술마실 핑계가 필요한 것도, 그럴거면서 각자 집에서 마시지 왜 만나서 마시는지는 논리적으로 이해를 잘 못하겠긴 하다.
그러나, 이것도 시골뜨기의 푸념이라고 치자. 시골쥐가 도시쥐의 높은 뜻을 알리가 있는가. )

그런데 이 사진도 술기운을 빌려야 한다는 것이 딱하다.
사진 찍는것이 좋으면(good for you!!) 모이는데로 초장에 기념촬영으로 끝내고, 그냥 얼굴 마주보고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지 않고서리(혹시 별로 마주보고 싶지 않으면 술잔과 안주를 열심히 들여다보든가) 가만히 잘 놀다가, 다들 조금 취하면 그때서야 사진을 찍기 시작하는건 뭔지 모르겠다.
내가 나는 사진 안 찍는다고 하니까 누가 그러더라,
'이건 우리 술버릇이야. 그냥 니가 이해해'
보통 처음에 술 먹을때 한 것이 술 버릇이 되니까 어른들께 술을 배워야 한다고 했는데, 울고, 말싸움걸고, 주먹다짐하고, 자고, 토하고, 웃고, 말 많아지고, 말 없어지고, 욕하고, 신체접촉 늘고 등등 많은 술버릇에 이어, 많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아버지 앞에 무릎꿇고 술을 배우며 사진을 찍었나보다.

나도 원래 사진 찍기 싫은 사람이니까 꼭 해야한다면(?) 술기운 빌려야 하겠는 마음을 이해하려고 해도(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러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보여줄 용기도 안나는 얼굴을 왜 보여줘야 하느냐고 시작하고 싶지만 스탑!), 술기운을 빌어 사랑 고백하는 것도 아니고, 헤어진 애인한테 술먹고 전화하는 것도 아니고 (오늘의 느닷없는 이제이 영어 한마디:  영어로 이것을 drunk dial 이라고 한다. 동사로 He drunk dialed Jane again. 걔 또 술먹고 제인한테 전화했대! 라고 하면 된다.) 도대체 누가 술먹은 얼굴을 보여달라고 했어야 말이지.
가만 아니지, 전여친도 전화하라고 안했지 참 ㅠ

술 먹고 얼굴색 변한 사진은 정말이지 안미안하지만 그 자리에 없던 사람들에게까지 무작위로 안 보여줘도 된다. (다시 느닷없는 이제이 영어 한마디: 그냥 '사양할께요' No thank you. 말고, '말은 고맙지만 됐어요'를 Thanks but no thanks 라고 한다.) 흔히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다 사진 안 찍으면 후회한다고도 하는데, 그게, 술먹은 얼굴이 오늘의 모습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술깨고 하루 더 있다 찍어도 많이 늦지 않는다.

우리 이제 꽃단장하고 찍은 사진 포샵하고 뿌옇게 처리해도 별로인 나이인데, 실상은 인터넷초반부터 이미 술먹은 사진이 보기좋은 사람 별로 없었고,(지금은 낫살먹어 배나 째지 그때는 어설픈 나이라, 처음에 모임 사진들 보고 친구들이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가 한국에 없어 그런 사진 안 찍혀도 되는것이 너무 다행스러웠다면 또 쌀쌀 맞다고 구박할라나?) 지금 한창인 젊은 애들도 술먹고 찍은 사진은 별로다. 그 자리에서 분위기 좋을때 서로 직접 보는 것하고 사진으로 남기는 것은 다르다. 내 의견을 무시하고 싶으면 지금 온라인 이미지를 살짝 검색해서 남 술 먹은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기 좋거들랑 당신의 사진도 올려라.
내가 하도 궁금해서 여기저기 물어봤는데 자기들도 보기 싫은데 말도 못하고 있는 거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내가 솔직하게 말하면 party pooper이라고 하겠지? 그래서 불굴의 덕담정신으로 다들 참아야 하는거지. 나만 못된거지ㅠ

이게 다 나만 늙어가는 것이 서럽고, 예쁜 사람들이 너무 배가 아파서 하는 말이니까, 그냥 각자 거울속의 자신에 도취해서 조용히 살아 가자는 말이다. (이정도 말하면 더럽고 치사해서라도 죽어도 온라인에 술먹고 사진 안 올려야 하는데 그래도 또 올릴 사람들 틀림없이 있다는데 한표)

현대 도시인의 고질병: 자랑질에 관하여(1)


이 '질'도 우리 없는 사이에 한국 사람들이 많이 쓰기 시작한 말이다.
별로 듣기 좋지 않고, 가끔은 잘못된 용도로 사용되는 것은 나도 거슬린다.
하지만 이 자랑질이란 말은, 누구나 이따금 너무 기쁜 일이 있어 저절로 나누고 싶은 마음에 결과적으로 남에게 자랑을 하게되는 것을 넘어서서, 습관적으로, 혹은 거의 반의무적으로 자랑을 '일삼는다'는 점에서 적절한 것 같아서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 같지만, 혹시 누가 자랑을 좀 하더라도 별로 부추켜 세워주고 싶지 않으면 고개나 끄덕여주고 입 다물고 말지 꼭 자랑질이라고 놀려 머쓱하게 만드는 것은 안 했으면 좋겠다.(더 나아가, 놀린다고 기분 나빠하면 농담인데 그런다며 속 좁은 사람 만드는 것도 안 했으면 좋겠다. 때리면서 아프지 말라는 게 말이 되나? 말한 사람만 웃으면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도대체 언제 깨닫는지ㅠ)

...

내가 위에서 말했듯이 내가 말하는 자랑질은, 주로 이 '의무적인' 자랑질, 아무도 시키지 않고, 즐기지도 않지만, 듣는 사람은 물론 하는 사람들도 왜 하는지 아무도 모르면서, 피리부는 소년을 따라 강물로 뛰어드는 쥐들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도시 생활이란 것이 아무래도 경쟁이 심하다보니 그런지, 무리가 커지다 보면 그 안에서 덩달아 자랑을 하지 않다가는 뒤떨어지는 느낌이 드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논리적으로' 봐서도, 남들이 그릇자랑하는데 가만히 있으면, 나는 그런거 없다, 나는 그런거 모른다는 것처럼 보이고(그렇게 보이면 왜 안되는지는 본인의 가치관에 대한 일이지만), 남들 유럽여행 얘기하는데 거기 참 좋더라고 한마디 안 거들면 유럽 여행 가 본 티가 안 나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물론, 언제든지 내가 더 부정적이고 삐딱한 사람일지도 모르는 위험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그냥 조촐한 집밥 보여준건데 그릇도 보인 것 뿐이라고, 그냥 애가 상 받은 것이 흐뭇해서 얘기한 것 뿐이라고 하면 내가 반성할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일껏 한국 먹거리보고  군침을 흘리고 있는데 다들 갑자기 음식이 아니라 예쁜 그릇 '이름'을 알아봐 줘야 하는 이유도 모르겠고, 그러면 또 너도나도 앞을 다투어 사진도 없는 다른 '이름' 과 가격대까지 들고 나오는 이유도 그저 정보공유 차원으로 나도 정말 믿어주고 싶은데, 실제로 가까운 친구들에게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그릇 이야기가 나오면 즉석검색을 해서라도 대화에 끼려고 하는 사람들 많고, 아이가 공부를 잘 못하면 입시철에는 갑자기 잠적을 해야한다는 서글픈 이야기를 들어서 하는 말이다. (참고로 내가 부러워 할 그릇은 종이로 만든 양념치킨 그릇이며, 건강에 해롭게 그림도 조금 벗겨진 싸구려 플라스틱 짜장면 그릇이다. 이런거 자주 자랑해 달라!)

...

일단, 자랑을 꼭 해야만 한다면 그 주체는 대략 본인에 한정되는 것이 좋겠다.
사실 듣는 사람에게 별로 상관없는 것이라면 기본적으로 직접 내 일도 아닌 가족의 일도 자랑 아니라 어떤 이야기도 하고 싶은 이유자체를 잘 모르겠지만, 경제학적인 입장에서 사회 현상을 재미있게 분석한 Freakonomics에서(시간나면 한번 읽어보시라 재미있다) 통계상 에미애비가 아이에게 가장 크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바람직한 배우자 찾아 최상의 유전자 물려주는 것이 대충 다라고도 하듯이, 결국 즈이들이 알아서 할 일인 직계자손님들의 안녕에 대한 자랑도 의미없긴 매한가지다.
내가 낳은 내 새끼 자랑 왜 안되냐고?
그 이유는 간단하다.
최선의 경우, 가족처럼 정말 기뻐해줄 사람들이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내 새끼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자기 아이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플정도로 자기눈에 예쁘면 딱 그만큼에 반비례해서 남들 아이들은 웬만해서는 별로 예쁘지 않다. 그것을 자기는 느끼면서도 남들이 그러는 건 뜻밖에들 잊는다. 내맘 같거니 하고 남의 자식사랑을 이해해주는 것 하고, 실제로 나도 남의 자식을 부모처럼 예쁘게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또, 내 아이가 내게 세상에서 가장 예쁜 녀석인 것은 그렇다치고, 정말 세상에서 객관적으로 제일 '예쁘게 생겼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른 문제다. 영 콩깎지 안씌면 나 나쁜 엄마인가?
애개, 그게 최선이면 최악의 경우는? 가족들처럼 정말 기뻐해 줄 사람들이 아니면, 자랑해봐야 본능적으로 배나 아프고 못 되기나 바라는 법이다.
You do know it's true. Face it!

그러므로 그래도 기본적으로 가장 가까운 가족이 아닌 에게의 정상적인(?) 자랑은, 주로 자신이 애쓴 결과로 무엇을 성취했을때 나누는 정도가 바람직 할 것이다. 결혼을 한다거나, 승진을 했다거나, 합격을 했다거나, 취직을 했다거나 하는 '마땅히 궁금해 할 소식을 전하'는 것의 일환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디 놀러갔다고 너무 좋아서 보여주고 싶어 올리는 사진도 까이꺼 괜찮고, 정보공유 차원에서 유명한 맛집에서 먹어본 소감을 올리는 것도, 친구들끼리 모였다고 기념 사진 찍어올리는 것도, 객관적으로 미인이거나 아니거나 술 안 먹고 다들 심신이 건강하고 반듯한  얼굴일때만 찍는 다는 조건하에, '기본적'으로는 괜찮다. (나중에 '술과 사진 사이'에서 다시 이야기합시다)

따라서, 자랑 한 만큼 나눌 것 아니면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생긴 것'에 대한 자랑은 하지 말아야 한다.
듣는 사람 나눠 줄 것 아니면 얼결에 뭐 선물 받았다고 보여 줄 필요 없고, 한턱 낼 것 아니면 사업 대박 터졌다고 자랑하는 것도 의미없으며, 다들 초대해서 나눌 것 아니면 배우자님, 자녀분들이 이렇게 저렇게 잘해주시는 거 자랑도 그만 해야 한다. 지금, 엇 나는 꼭 자랑할 것이 있는데 싶은 당신, 감축 드린다. 그렇게 자랑 할 것 많은 당신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다 흐뭇하다. 그래서 굳이 해야겠다는데 내가 말릴 길은 없다. 그저 남들이 당신 본인 마음처럼 그닥 기쁘지는 않다는 것이나 알고 하시라는 말이다. 안다고? 그러면 참 이상하다. 자랑할 일도 못되면 왜하며, 정말 자랑할 만한 일이라면 남 염장질러서 무슨 좋은 일이 생기나.

마찬가지로 스스로가 자기 배우자나 자기 아이들에게 이렇게 잘한다 하는 자랑도 제 상투 올리는 짓이다.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여기며 조용히 잘 하고 있을 일들을 본인이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대상도 그리 생각하는지는 거기다 물어볼 일이다. 요리 좀 한다는 남자일수록 와이프 음식에 잔소리 많은 법이고, 자식교육 잘 시켜서  공부 잘한다고 흐뭇해하며 자랑하는 부모일수록 전인교육한답시고 어차피 요즘세상에 잘 보지도 않는 애먼 티비 없애 애들 정신적 압박감이나 주고, 퇴근하고 집에가서 아이 잘까봐 감시하느라고 자기도 잠을 못자면서, 내가 이렇게 니 자랑을 해놓았는데ㅠ 니가 잘못되면 무슨 망신이냐며 아이를 잡더라.

자랑할 거리가 아닌데 자랑하는 것도 이해가 안간다.
자기가 개인취향으로 선택한 종교인데, 그 신을 잘 믿는다는 사실이 어떻게 자랑할 일이 되는지 틈만 나면 자신의 믿음(의 파워)을 자랑하는 것도 이상하고, 소위 현모양처라는 말의 정의도, 그냥 자기가 맡은 역할 나누어서 최선을 다해 하는 것이 자랑할 거리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흑백으로 말 할 수는 없지만, 뭔가를 자랑한다는 것 자체가 '나쁘지 않고 좋다'는 의사표현일텐데, 하나가 좋은거면 다른 하나는 안 좋은 것이어야 하지 않나?  '그 분의 힘으로 큰일을 해 낸' 사람이 훌륭한 거면, 그 종교 안 믿어 '그 분'이 없는 사람은 뭐며, 현모양처가 칭찬할 일이면 바쁘게 직장다니는 와이프는 나쁜가? 반대로 살림에 보탬이 되는 일하는 아내가 자랑할 일이면 살림하는 아내는 집구석에서 밥만 축내는건가? 왜 우리는 그냥 자꾸 자기 삶이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고 하는 합리화가 필요한가?
사람이 자기 사는 것 가지고 별로 자랑스러워 할 일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하는 사람대로,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또 그 사람들대로, 집에서 살림하는 사람들은 또 그 나름대로, 누구나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 다 아름다운 것이라서, 다 자랑스러운 일이라서, 누구라도 특별히 내가 무엇무엇을 하고 있다고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셈이라는 말이다.
그냥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는 것이 각자 눈부시게 훌륭한 것이니까.

다들 좋아서 모여서 같이 놀면서 재미있으면 됐지 자꾸만 우리 모임 정말 좋지 않니? 착하고 좋은 아이(?!)들이지 않니? 하고 확인하려 드는 것도 딱하다.
하도 '우리'들은 또래 모임들과 달리 곱게 늙어간다고 흐뭇해들 해서, 거울보기 싫고 미국산골에 살아 배우 말고는 우리또래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생겨야 하는 줄 모르고 살았던 쑥맥인 나는 다른 사람들은 우리나이에 엄청나게 다르게 생긴 줄 알았다.(진심ㅠ) 그러다 다른 친구들이 즈이들 속한 온라인 커뮤니티나 친구들 모임 사진 보여주는데 보니 세상에 '남들'(!)도 다들  예쁘기만 하더라.
내가 이러저런 비판을 해댄다고 성격이 삐딱하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안다고 주장한다고 생각하는 당신의 마음을 돌이킬 방법은 없는데, 이게 다 처음에 곧이 곧대로 듣고, 말하는대로 믿었다가 나중에 뒤통수 맞고, 등에 칼맞고, 발등 찍히고 나서 배운 교훈들이다. 실상은 내가 남보다 몇십배 더 둔하고 멍청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달라.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찍힌 발등 싸매고 계속 그 도끼로 도끼질을 하는데, 나는 나 찍는 도끼 싫어서 그냥 나무 안 베고 잔가지 때면서 살기로 했다는 점 뿐이다.

자랑도 빈말로 하는 사람들도 있다. 워낙 소셜기능상 빈말이 많은 도시생활이라고 하지만 심지어 자랑도 말은 이렇게 하고, 행동은 저렇게 하는 것이다!
아이가 이뻐 죽겠다고 틈만 나면 자랑이면서, 얼마나 아이가 순식간에 자라 집을 떠나는 줄은 모르고 맨날 똑같은 사람들이랑 술 먹는다고 집에 안 들어가는 사람들은 뭔지(이래놓고 나중에 아이가 크면 '이유없이' 자기를 우습게 안다 그러겠지), 여동들에게는 자기가 남편 눈치만 본다고 틈만 나면 하소연이면서 맨날 방방곡곡 술자리는 다 찾아나와 남동들 술안주까지 입어 넣어주는 사람은 뭔지, 어정쩡한 우리나이에 인생을 즐기려 회사를 갑자기 관두었다고 자랑하는 것을 다들 믿어주는 척 하느라고 힘들어 죽겠는데, 다시 덜썩 재취업을 했다고 또 자랑하면 뭐라고 말하라는 건지, 자기는 사진 찍는거 싫어한다면서 술먹어서 얼굴색 변한 사진 자꾸 찍어올리는 사람은 뭔지(자기 얼굴 자기 마음대로 올리고 싶으면 올리는 건 좋은데 괜히 말로 싫어한다 그래서 황당하게 만들지 말자고).

오고가는 자랑속에 초코파이처럼 싹트는 정이라고?
글쎄, 내가 아는 한,
알고 싶지도 않은거, 별로 부럽지도 않은거 괜히 보여주고 자랑하면,
다들 또 억지로, 예쁘네, 좋겠네, 자랑스럽겠네, 부럽네, 맛있겠네 하고 또 귀찮게 맞덕담해줘야 하고,
또 대충 맞덕담인 줄 알면서도 다시, 고맙다, 니꺼가 더 좋잖냐, 쑥스럽네 하고 답덕담을 해야 해서
다들 뒤마당들에 천하에 흥부박씨라도  싹트고 계신가 나는 모르겠다.
어마마 느이 애들 귀엽다고 예쁘다고 사진 올리라고 막 그래놓고 진짜 올린다고 오프모임에서 흉보는 것도 정말 모르고,  술자리에서 분위기상 조금 망가지고 그랬던 걸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들은 오해 할 수 있는 '후기'랍시고  올리는 글에 들은 뼈들이 전혀 안 느껴지나보다.

내가 이런 거짓들에 넌더리가 나서 도시를 일단 닫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은 등뒤에서 흉 봐가면서도 대충 만나며 사는가 모르겠는데, 나는 무리가 내 친구 흉보면 혼자 나서서라도 방어해야 하고, 누구 흉보고 싶을 정도로 싫으면 그냥 안 만나고 만다. 그리고 안 만나도 된다. 세금도 더 안내더라. 그런 사람들 만나는게 더 외롭지, 싫은 사람 안 만난다고 더 외롭지도 않더라.(Believe me. I  know)
속좁고 고지식한 것도 있고, 나는 그냥 재주가 없어서 두 얼굴 잘 못한다. 기본적으로 이적지 '거짓으로 웃는 법'은 배울 기회가 없었다.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조언할 줄 알고 있는데, 나 같이 그렇게 답답하게 안 살고 처세술 능한 당신, 그래서 정말 행복한가?
빈말이 나쁜 말 하는 것보다 좋고, 서로 좋은 말 해주며 좋은게 좋자는 것 같지만 빈말이 거짓의 다른 얼굴인 것은 왜 부인하는가? 빈말 잘하는 사람치고 진실 된 사람 못봤고, 그런 사람일 수록 앞에서 웃는얼굴로 사탕발림하고 뒤에서 뒷말하기 즐겨하더라. 자기는 누가 싫을 수록 앞에서는 더 잘해준다는 사람 앞에 앉아서, '완전'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 그러니까 니가 내가 좋다는 거냐 싫다는 거냐 하고 속으로 반문 안 할 수가 있나? 그건 덕스러운 거고 나는 모나서 안된단건가?(안됨말구)

아무튼, 일껏 하늘이 아름다와서 문득 보여주고 싶어 사진 올렸더니 풍경 예쁘다 안 그러고 '사진' 잘 찍는다, 기종이 뭐냐 그래서 맥빠지고, 멋진 사진이 있길래 님도 내 맘같은 줄 알고 풍경 좋다 말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아니 블라블라 기종으로 뭐라뭐라 수법으로 찍은 사진인가본데 하고 아는척을 하기 시작하면 그게 아니었어? 싶어 또 머쓱한 건 나만 그럴지도 모른다.

처음에 말 했듯이 다들 정신없이 이러고 사는 이유는 단순하고 뻔하다. (내가 남들 가십을 전하고 다니지는 않아도-혹은 그래서 그런지- 듣기는 많이 들어서 좀 안다)
자랑 안하면 또 남들이 부정적으로 넘겨 짚으니까 그런거다.
애 자랑 안 하는거보니 공부 별로 못하나보다, 어째 조용한거 보니 애 후진 대학갔든지 대학 떨어졌나보다, 신랑 자랑 안 하는거보니 돈 별로 못 벌어다 주나보다, 와이프 자랑 안하는거 보면 내조 잘 못하는 모양이다, 배우자나 애들 사진 안 보여주는거보니 못 생겼나보다, 입 다물고 있는거 보니 저 메이커 이름도 모르는 모양이다, 어쩐지 지난 번에 보니 좀 없어보이긴 하더라.
처참하다, 그지?
그렇지만 잘 들어라.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건 남들 문제다. 이런저런 자랑해봐야 비교해서 어차피 밀리는(!) 것도 시간문제고, 내가 이길만 해도(!) 그거 뻥일꺼라고 남들이 안 믿고 입 삐죽여버리면 그뿐이다. 내가 어떻게 (잘) 사는가를 남에게 증명해야 할 이유도 사실 방법도 없다. 자랑을 꼭 해야 행복해진다면 그것 자체가 사실 당신의 삶의 어딘가 부족하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혼자서, 아주 작은 것에 가만히 아 좋다~ 하고 미소짓는 순간이 있다면 남의 인정 전혀 필요없이 그걸로 스스로 잘 살고 있는 것이지 않나.

...

아는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원래 잘 모르는 사람들이 모이면 어설픈 비교질에 자랑질을 하고, 정말 가까운 친구들끼리 만나면 걱정이나 불평을 늘어놓게 되어있다.
먼저 쓴 글에 나오는 '짠함 혜택자'들처럼 불평도 과하면 별로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어떻든 마음이 편한 사람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와,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견제를 하는 분위기는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진화론자인 내가 안 집고 넘어 갈 수 없는 부분은, 인류가 애초에 자랑을 좋아 하도록 진화한 이유는, 근본적으로 이성을 유혹하여 자손을 번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사냥 채집 시기에 정보를 공유하는 데 유용했기(꿀벌의 댄스)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자랑의 기능(!)에서 볼 수 있듯이 자기에게 별로 실질적으로 도움이 안되는 것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게 되어있다.
사람들이 가십 좋아하고 흔히 소문에 기웃거리는 것과 얼핏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은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의 자랑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자랑 '못할 것'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주목하자.
꿀이 어디있는지 알려줄 것이 아니면 관심없고, 저 수컷사슴에 비해 '내 뿔이 더 큰 것'이 중요한 것이다.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캐내는 이유자체가 나와 비교해서 나보다 니가 못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일것이다. 어설픈 자랑해봐야 항상 나보다 더 큰 뿔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은 잊는다.
그러니 사람들이 별로 남의 자랑을 듣고 싶어하지는 않으면서도 자기는 계속 불포화지방산, 트랜스지방만 가득들고 영양가도 없는 이 자랑이 하고 싶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 자랑질은 그런면에서 꼬리뼈나 아가미처럼 기능이 퇴화되었고, 마땅히 퇴화되어야 하는 셈이다.
. http://www.epjournal.net/wp-content/uploads/ep06386392.pdf,  http://web.stanford.edu/~rbird/rbird/Publications_files/showoff.pdf

자랑하는것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냥 뭘 자랑하기 전에, 세상은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나를 좀 알지만 실제로 내가 자랑하는 것들에는 별로 관심없는 사람들,
그리고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
<세종대왕형양녕대군십팔대손차녀실록지리지 오십페이지 넷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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