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4, 2017

떠돌이라는 것

여수에 다녀오는 데로 3일을 쉬면서 정보과학도서관이나 설렁설렁 드나들다가 좀이 쑤셔서, 가 아니라 너무 편하고 좋아서 이래서는 내일인 16일날 반모임도 꾀가 나겠다 싶어 이것저것 던져넣은 가방을 다시 을러매고 이런저런 소정의 목적을 정해가지고 다시 집을 나선 날이었다.

전철을 탈 수도 있지만, 일단 달리 걸을 일도 있을 것같고 해서 아무래도 전철보다는 창밖에 볼 것이 있는 버스를 타고 이촌 국립박물관에서 내려 먼저 궁금했던 건물만 근사한,이라고 말하지만 생각해보니 옛교과서나 이런저런 오랜기록등의 그 구태의연하고 가부장적이며 전근대적이고 불합리함이 나름 황당재미있는 것도 더러 있었던, 한글박물관을 간단하게 둘러보고 나와 석탑 등과 보신각 종의 야외 상설전시가 있는 용산가족공원방향에서 청소년고양이 하나를 만났다.

뭐가 불안해선지 늘 나이에 걸맞지 않게 한가득 뭔가 일용할 물품을 짊어지고 다니는 나의 홈레스를 방불케하는 가방에도 어째서인지 녀석에게 조공을 바칠 먹거리 그 '무엇 한토막'이 들어있지를 않다는 것을 깨닫고 망연자실 했다. 최근에는 고구마를 좋아하는 고양이 동영상을 본 적도 있지만 고양이들이 오이를 보면 화들짝 발광을 하는 동영상도 일전에 많이 보았던지라 혹시나 싶은 귤은 내밀어보기도 무서웠고 그밖에는 껌과 초컬릿 뿐이었다. 엄마가 야쿠르트 아줌마 곁을 그냥 못 지나치고 한번씩 사오시는 야쿠르트라도 한 병 챙겨 올 것을 생각하지만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와 일치한다면 그런 짓을 했을리는 어떻든 만무하다. 그나마 20여년전 동네 길고양이에게 초코파이를 내밀었던 시절에 비해, 이제는 고양이가 육식동물이라는 것 정도를 안다는 것은 트위터에서 다져진 지식의 축적이며 관심분야의 확장이라는 면에서 사뭇 자체 기특하기도 한 일이었다.

아무튼 녀석은 desperate 한 것인지 철이 없는 것인지 고양이를 다루는 법을 전혀 알지 못해서 어디를 만져야 하는지도 모르는 나에게까지 제법 친근하게 굴었으므로 얄팍한 정이 가는 것이었고, 나는 다음 행선지 전에 주변에서 요기를 간단히 하고 가기로 했던 마당이라 먼저 야외전시를 다 둘러보고 국립박물관 구내식당에 들어갔다.

안 그래도 한국에 온 이래로 매끼 그릇이 아니라 내 입에 자꾸 음식을 담으시는 엄마덕에 차고도 넘치는 섭취 칼로리도 낮출겸, 심사숙고 끝에 빵껍데기는 내가 먹고 알맹이 소시지를 나눠주면 되겠다 싶어 간단한 핫도그 세트를 주문한 것인데 마침 그 카운터는 열지 않았다고 한다. 일순 당황하는 사이에 점심시간이라 내 뒤로 줄은 길어지기 시작하고, 다급해진 나에게 불현듯,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다,는 고양이에게는 상당히 불미스러운 언급의 말이라서 내가 고양이라면 누가 고양이에게 생...하고 말을 시작함과 동시에 지레, 제발 이젠 그만해, 이래뵈도 바쁜 몸인 내게 생선가게따위 맡겨달라고 하지 않았고 생선 말고도 내게는 맛있는 것이 많이 있다구! 하고 짜증을 내버릴 것 같이 흔한 말이 떠오른다.
그래서 주문한 것이 나홀로 삼선짬뽕.

한국에서의 넉달이 다 되어가도록 주중에 약속없이 혼자 도서관이나 미술관등을 다닐때는 내 앞으로 제대로 된 식사를 주문해본 적 없이 김밥이나 디저트등으로 커피와 함께 때우고 다녔는데 고양이 때문에 짬뽕을 다 시키다니 나 스스로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데로 옆자리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일인용 구석자리를 찾아갔고, 이윽고 나온 짬뽕에서 홍합, 오징어 등을 먼저 건져냈다.
야채와 국수를 대충 반절 건져먹고는 따로 앞접시에 챙겨둔 해물들을 가지고 있던 물티슈로 일단 한번 싸서 주머니에 찔러넣고 화장실에 가서 다시한번 얼추 헹궈서 종이타월로 닦아냈다. 조금 붉은기가 남은 것도 같았지만, 시판 야옹이푸드에도 어떤 것이든 약간의 양념은 되어있지 않던가, 게다가 가령 멕시코 고양이라면 폰초는 걸치지 못할지라도 칠리정도는 얼마든지 먹지 않을까, 하는 누가 물어보지도 않는 주장의 생각도 들었, 지만 한쿡 고양이라면 김치나 고추장을 먹을꺼라는 생각은 왜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왜 그 고양이가 그자리에 아직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새소리 요란한 미르폭포에서 캠코더를 켜면서, 그 새들이, 캠코더 메모리를 리커버하는 그 몇 분도 못기다리고 자리를 떠나버리지 않을까 불안해 했었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과연, 고양이는 아직도 거기 있었다. 주머니에 덜 닦은 짬뽕해물을 넣은 채로 박물관 도서관에 가방까지 맡기고 들어가 제법 질이 좋은 표지가 내가 좋아하는 털코이즈 색깔인 소식지와 박물관 사람들 잡지도 집고, 커다란 고화집이나 도구백과들도 더러 떠들어보고 나왔어도, 바로 그 자리에 앉아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치사하게 무작위로 재롱을 떨고 있었다.
그래도 고맙다, 거기 있어 주어서. 약속도 우습고, 빈말도 쉬운 세상에 나 혼자만의 착각에서 나온 믿음이라도 누군가가 지켜준다면 그거 고마운 일 아닌가.

가지고 온 해물을 살살 펼쳐놓았다.
고양이는 개와 다르다는 것을 바로 알겠다. 개들이라면 먹을 것인지 냄새나 맡아보고는 바로 꼬리를 흔들며 허겁지겁 손에서 받아먹어 웃으면 복이와요의 구봉서같이 생긴 도둑들이 장롱 속 금가락지며 16인치 칼라테레비통을 산타할아버지의 보따리같은 자루에 담아가버리는동안 고기에 든 약기운에 쓰러져 잠들어버렸을텐데, 요 녀석은 앞발로 하나만 끄잡아 당겨 가지고 한걸음 물러서서 먹고는 가느다란 아웅 소리와 함께 내 다리를 비비며, 가방에 올라타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는 등 냄새보다는 음식을 주는 사람을 믿을 수 있는지 가늠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어떻든 내가 시험에서 패스를 했는지 어떤지 내 손에서는 받아 먹지 않아도 살살 다섯조각(그렇다 삼선 짬뽕에 든 해물은, 그래도 프로틴섭취을 위해 내가 먹은 새끼손톱만한 홍합 두개를 제외하고는 다섯조각 뿐이었다. 그래놓고 그래도 다른 곳에 비해 커피값은 저렴한 것이 일반적인 국립 박물관이라는 곳에서 삼선짬뽕이라는 이름을 붙여 8천원이나 받아먹다니 이것이 최저시급 형편없는 국가에서 착실히 세금을 내는 국민들을 대우하는 법이라는 말이냐, 이것도 순실이 아니었으면 꼴뚜기다리라도 하나 더 들었을 것인가. 에라이 잘먹고 잘 살아라)을 다 닦아 먹고 녀석은 내 팔과 손을 끌어않고 당기고 장난삼아 긍긍 물며 놀다가는, 곧 털고 일어서는 나에게서 선선히 물러섰고 나도 잠잠히 돌아 갈길을 떠나왔다.

고양이는 먹는 음식이 까다롭다는 것만으로도 인간을 길들인다. 인간은 다른 인간들에게는 훨씬 덜한 요구에도 꽤나 까탈스러우면서도 녀석들의 입맛에는 기꺼이 복종한다. 귀여워서라고 하지만 귀엽지 않게 생기고 귀엽지 않게 구는 것들에게도 환심을 사려고 다들 애정을 구걸하면서 키우고들 있다. 얼핏 보아 너그러워서라고 볼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언제든 버리고 싶으면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아닐까. 실제로 파양을 하거나 맘에 안 맞으면 버리는 만행을 저지르지는 않을지라도 누구나 언제든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이, 그러나 그러지 않는다는 자기도취가 이 닝겐들을 너그럽게 하는 것은 아닐까.
언제나 강조하는 일이지만 프레데터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잔인하다. 감기균도 숙주를 살려놓아가며 번식하는 치밀한 작전을 펴는데 인간이 그만 못하다고 주장하지 말라. 자기가 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치고 별로 착한 사람 못 봤다.

물론 우리, 사람,에는 나도 포함되어있다.

집에서 나올 때만해도, 먼저 암사에 있는 커피/음악 전문까페 콘체르토 주인장의 양푼김치찌게위로 오간 권유도 있었고, 트위터에서 진지하게 커피를 볶고 우린다고 알려져 한번 가보고 싶었던 집 가까운 이촌 헬까페 2호점에서 커피를 마시고 난 후, 이촌 아트나인에서 시간이 맞으면 라라랜드까지 보고오려는 요량으로 가는 법까지 다 살펴보고 와이파이가 없을 것을 대비해서 버스노선이며 지도까지 스크린샷해왔었던 터였다.
그렇게 일정이 끝나고는 가멸차게 혼술이라도 한 잔 할까 하고 나왔던 건데 날이 차서 그런지 이미 정신적으로 약간 피곤하기 시작했나보다. 막상 열심히 걸어가다 뭔가 잘 못되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것이 이미 용산가족공원을 끼고 돌아 이태원을 향해 가파른 골목길을 반 이상은 오르고 내렸을 때 였으니 말이다. 문득 얼마안되는 스맛폰의 소중한 데이타를 사용하여 다시 찾아보니 네이버길찾기에 이태원의 1호본점이 잡힌 것을 간과했던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내가 혹시나 싶어 항상 하는대로 도보경로부터 찾으니, 동작대교를 걸어 건너라고 할 수는 없어라고 말하고 있지만 네이버지도가 그렇게까지 나를 배려하는 깊은 뜻을 가지고 있는지는 말할 수 없다. 도보가 그나마 '가능'한 이태원쪽으로 언덕을 넘으라고 한 것이지 싶다.

어떻든 가던 길을 돌아나올 수는 없고, 얼결에 구경하게 된 이런저런 대사관 주변의 언덕 위로 파아란 하늘만 뵐 정도로 경사진 골목을 올라서니  좁은 골목 틈 사이로 산자락에 빼곡하게 들어찬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지도를 내려다보며 가야하니 정신도 없고 숨도 차서 막상 옛날에 주택에 살던 시절 추억할 새도 없다가는, 이따금 한 번씩 갈래길에서 숨을 고르다보면 나타나는 뒷짐진 노인네들라고 말하지만 그닥 나이 차이없는 또래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도 드는 순간을 하나씩 만날 때에나 비로소 이 집들이 실제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구나 하는 것이 부쩍 다가서곤 했던 것 같다.

그 동안 아파트를 보면서, 저렇게나 집이 많은데 한국에 집 한채가 없다,고 말할 때는 부동산 개념이었던 것 같다.
나는 어차피 한국에 집도 절도 없다, 하고 말할 때는 대충 미시간에서 학생시절 없는 형편에 겨우 장만한 고물차가 사고가 나서 폐차시켜야했을 때부터, 그리고 파고 살 때 언제든 가방 싸들고 떠날 준비가 된 삶을 지나, 어떤 곳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곳을 향해 가방 몇개와 박스 몇개로 추리고 추린 짐을 들고 알래스카로 이사 올 때의 마음가짐으로 어디 물질적인 것에 정을 붙이지 않겠다는 일종의 개똥인생철학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올망졸망 사람들이 살림을 살고 있는 집들을 보니 저 많은 집들 중에 내 집이없구나,하는 새삼스런 생각에 문득 입이 꼭 다물어졌었다.

옛 하이쿠에, 해가지면 여우도 머리 뉠 곳이 있는데, 하는 댓구가 있다.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은 조촐하나마 정해놓고 머리 뉠 곳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일신 편하고 안 편하고를 떠나 한국에 와 엄마아빠 집에 머무르기로 하면서도 따로 내 집이 아니라고도, 내 집이라고도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어느 쪽도 상관이 없다고도 따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그래도 이번에는 17년만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정도 장기간을 머무르다보면 그래도, 그동안 떠나 산 불효도 만회하고, 지지고 볶으며 미운 정도 더러 쌓고, 잠시 잠깐 손님처럼 들러가는 것보다는 그래도 더 '짐 풀고 앉은' 느낌이 들 것 같았던 것일까.
어떻든, 순간, 문득 든 생각은, 이제 오늘 밤 돌아갈 곳은, 집, 아니다, 는 것이었다.

헬까페를 어렵게 찾아서 들어가 커피와, 주문하지 않으려고 마음먹었던 치즈케잌을 에너지 복구용으로 주문하고 앉아 끄적끄적, 뒤적뒤적, 쉬엄쉬엄 다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내 컨디션 점검을 해보니 영화를 보거나 혼자 한 잔 할 에너지는 내일의 모임을 위해 비축해야 할 것 같았다. 게다가 여수의 후유증인지 뭐가 들어갈 때마다 배도 쌀쌀 아팠고 앞자리에 사귄지 얼마 안되는 듯한 남여 커플 중 남자의 아무거나 묻지도 않은 것을 가르치려드는 맨스플레인이 상당히 거슬려 에너지고갈에 일조를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이중부정)다.

넉달이라는 시간은 이런저런 이유로 대중교통을 꺼려하는 내 또래들과 달리 이제 30분 안에 각종 전철과  버스를 연결까지 할 수 있는(환승입니다!)신박한 능력을 길치 방향치인 내게 부여했고 서울과 근교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게 도왔다. 서울/경기도 시장/도지사는 대중교통을 매일 타고 다녀야 시민을 이해할 것이라는 결론이다.
하여, 감사하게도 까페에서 제공하시는 와이파이를 이용해서 다시 꼼꼼히 검색을 해서, 강남역에서 내려 김이 무럭무럭나는 가게를 향해 홀린듯이 걸어가 왕만두를 사고, 다시 한정거 먼저 청사역에서 스맛폰 월정료를 내고, 파스를 사고, 빌딩 사이 노점상에서 먼저 엄마가 잘 드셨던 꼬막을 한 자루 사고나니, 이마트에 들러 소주와 맥주를 사 배달을 시키고 온다는 그나마 남아있던 조촐한 야망을 달성할 기운도 남지 않았다.
하여, 술이고 뭐고 맥주 딱 한 잔 좋아하시는 엄마와 같이 한잔 하리라고 잡고기 많이 섞은 순대 일인분을 까망 비닐봉다리에 달랑달랑 사가지고 어스름에 잰걸음으로 총총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왜 밥도 안 먹고 다니냐며 막 치운 저녁 설겆이를 시작하시던 손을 닦고 저녁으로 만드신, 어느 오지 지역경제부흥의 일환 내고향큰잔치에서 보셨음이 분명한 왠 단감을  때려넣은 (얼마나 감이 맛이 없었는지 무인줄 알았다ㅠ)오징어 볶음을 안주로 내어주셨고, 나는 중국 지난에서 사온 52도 짜리 고량주를 한잔 따라가지고, 엄마는 맥주를 한 잔 따라가지고 앉아, 엄마친구 아이들 소식과 내 친구 엄마들 소식을, 만두와 순대를, 비벼 섞으며 나름 늙고사오나오매 고되었던 하루를 마무리 했다는 훈훈한 마무리.

...


국립박물관은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매달 한 번은 특별한 전시가 없어도 박물관 소식지를 집으러라도 들를 생각이다. 그리고 그 오솔길에 가서 냥이 녀석이 있는지 한번씩 확인을 하겠지. 녀석에게 바칠 참치캔이라도 하나 조공으로 챙겨가겠지. 더러 만날 수 있을 수도 있겠지. 계절은 바뀌고 녀석은 청소년 냥이에서 어른 냥이가 되어버리겠지. 그리고 나는 떠날 것이고, 시간이 흐른 뒤에 돌아왔을 때 녀석은 어디론가 가고 없을 것이고, 그리고 순조확통상 나보다 먼저 죽어버릴 경우의 수도 높겠지.

떠돌이라는 것은 따로 집이 없다는 것이다.
알래스카에 있는 집도 내 집이 아니다. 어디도, 집은 없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늘 떠날 궁리만 한다고 서운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데, 무슨, 인생은 여행길 운운하는 촌스런 글귀를 읖조리는 것이 아니다. 한번 집을 떠난 사람에게는 '집'이라는 것의 의미가 엷다는 것이다. 실제 경험으로, 무엇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뼈져리게 배워 안다. 그리워하면 괴로와서 살 수 없는 가질 수 없는 것들은 일찌감치 접고 살아가는 법을 익혔다는 말이다.

그래서 괜찮다. 오늘도 사람들은 뭔가 확실하고 멋지고 영원한 무언가를 잡아 보겠다고 헛된 것을 쫓고, 서러워하고, 억울해 하고, 외로와하지만, 그래서 빈말을 하고, 덕담을 하고, 지키지 않을 약속을 하지만, 어쩌면 늘 약간은 피곤한 채로 아무 갈 곳도 없는 길에 서 있음으로써, 돌아갈 곳이 없음으로 우리는 서두르지 않아도 됨에 위안을 얻을 수도 있다. 아무곳에도 꼭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것, 그것도 괜찮은 것 같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가방에서, 여기저기서 집어오거나사 온 물건들을 꺼내며 정리를 하다가 읽던 책에 꽂아둔 내가 좋아하는 북클립이 헐렁한 것을 발견한다. 이렇게 단순한 작은 것들에도 모두 수명이 있다. 끝이 있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것이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상당히 편안하기도 하다.
(이른바 한류로 인한 관광사업확충으로 인해 한국에 이런저런 관광지도나 브로셔들이 제법 많이 개발되어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다들 인터넷검색으로 맛집을 찾고 장소를 찾아 신나게 차를 몰고 멀리도 찾아가지만 맛집의 반이상은 돈받고 쓰는 리뷰고, 네비만 보고 찾아간 장소는 실제 위치상 다른 지점과 연결되지 않는 고립된 하나의 점일 뿐이란 것을 사람들은 멈추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케팅이라고 들어는 봤나모르지. 생긴지 얼마 안되었는데도 이런저런 여행안내책에 번번히 근사하게 등장하는, 비싸고 화려한 것이 못내 수상한 맛집 뒤에 조그맣게 달린 유명인 누구, 혹은 그 가족이 차렸다는 말에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는 것도, 어느어느 드라마에 나왔다는 집이 명소라면 모를까 '맛'집이 되는 것을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키우다가 마음에 안 맞으면 제멋대로 언제든지 가져다 버릴 수 있다고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생각할수 있을지 모르지만, 길냥이들이 사람들을 길들이는 법은 있어도 사람들이 길냥이들을 길들이는 법은 없다.
썪은 고기를 손에서 받아먹느니 야생동물들은 죽음을 택한다. 이런방식, 저런 방식으로 어디서 통했던 수작방법들로 꼬아보려고 할 지 모르지만 길냥이는 당장 짬뽕해물은 빼먹을지언정 그 사람을 따라가지는 않는다. 많이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더 원하든, 없는 것을 가지고 싶어 원하든, 시간에 쫒기든, 여건에 쫒기든 자기를 옭아매는 것은 역시 원하는 바로 그것이다.

누가 누구를 길들이는가.

길들여지지 않는 떠돌이의 삶은 편안하다. 그러나 그렇게 살게된 이유는 그렇게 살지 않는 존재는 영영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큰 소리로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방 한구석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빌딩 꼭대기의 한 커피숍에서 얼마 안 있으면 떠날 도시를 바라보며 눈을 자꾸만 크게 뜬다.
울지 않겠어. 길들여지지 않겠어.

Wednesday, September 21, 2016

2016년 생일 맞이 책 결산

여전히, ‘죽기전 반드시 읽어야 할 1001권 리스트’ (Peter Boxall’s 1001 Books: You Must Read Before You Die. http://www.listology.com/ukaunz/list/1001-books-you-must-read-you-die) 를 참조하고는 있으나, 이번 분기에는 단편을 조금 챙겨 읽기로 한 것도 있고, 이런저런 다른 경로로 알게된 책들을 읽게 된 것이 많아 리스트에 많이 지워지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쉽다. 이렇게 보고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누구에게 보여주기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은 넓고 책은 많아서 혼자 시작한 일이니 이러나 저러나 좋은 책을 많이 읽으면 되지 않나 생각하지만, 그래도 하나씩 리스트에서 지워가는 맛은 덧없고 답없는 인생, 나도 뭔가를 하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는 일이기도 하고 해서 내년에는 조금 더 많이 지워낼 수 있으면 좋갰다는 소망은 있다. 
책을 골라 읽기로 결정을 할 때는 아무래도, 프로젝트를 시작한 처음의 이유처럼, 간단하게 말해, 얼마 안 남은 시간동안 그래도 최대한의 좋은 책들을 읽고 죽겠다 이거기 때문에, 절대로 서두르거나 (내 나이를 생각하면)남는 시간(따위는 없다)에 집어든 책은 없는데도 이렇게 일년이 지나고 결산을 하면서 보면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한 번 시작한 책은 끝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아니다 싶은데도 다 읽어 시간낭비같았던 책도 있고, 한국에 오기로 한 바람에 여러가지로 시간묶음이 옳지 않아 결국 후일을 위해 포기한 책도 있고, 그런 바람에 거꾸로 더 시간을 두고 읽었으면 좋았을 것을 허둥지둥 읽어버린 것도 있다. 그런 책은 다시 읽어 보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될지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거듭 다시 말하지만, 절대 시간은 부족하고, 아무리 요즘은 좋은작가나 책이 없다고 다들 습관적으로 말할 지라도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찾으면 도서관과 서점에는 좋은 책들만도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장소에 가면 매우 드물게 이성을 잃고 책들을 다리가 휘청거릴 정도로 집어들고 와 허겁지겁 읽어대기 때문이다. 
한국에 와서는 아직 시집, 그것도 미국에 가면서 다 잃어버린 오래된 시인(?)의 시집밖에 사지 않았다. 아직 한국작가들을 잘 모르고, 골라놓은 리스트의 영문책도 많은데 이제와서 확신이 서지 않는 작가들의 책을 읽을 시간을 내야할지 현재로써는 자신이 없다. 내 주제에 그들의 실력(whatever that is)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아무래도 나가 살다보니, 사람마다 각자 취향도 다르고, 어제 이중섭전에서도 다시 느꼈지만, 다들 어디선가 들은 말들을 본인의 느낌과 의견으로 혼동하여 ‘재활용’하는 세상이라 참된 의견도 듣기 힘들고(사족이 되겠지만, 쉽게 말하면, 남들이 좋다더라 하면 본인이 아무리 싫어도 싫다고 말을 못하거나, 그렇게 느껴서는 안된다고 느끼는 분들도 많고, 그나마 싫다고 말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장르의 취향이 다른 것 뿐인데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섣불리 판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여, 골고루 들어보고 객관적이고 공통된 의견의 수렴을 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아는 사람조차도 한정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 사람 저 사람 의견을 듣는다’는 그 자체가 클리쉐인 말은 인터넷으로 맛집을 검색하는 것과 같아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미는’ 작품이 걸리기 쉽다.
늘 이 보고서를 쓸 때마다 불평을 하고 있듯이(그리고이것이 마지막 불평도 아닐 것이), 눈은 여전히 안 좋아지고 있기도 하고, 운동하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해서 작년에는 오디오 북도 많이 들었긴 하다. 이제는 집중해서 듣는 것도 많이 훈련이 되었지만 오디오 북은 첫째, 일단 글자 그대로 ‘읽는’ 것이 아니고, 둘째, 고전은 더러 다시 녹음되어 나오기도 하지만 오디오 북이 나오기 시작한 시기 감안 검증을 받지 못한 새책들 위주라 초이스가 한계가 있고, 운동하면서 듣기 위해 가볍게 빌린 (대단히 발칙한 말이지만 취향상) 흥미위주의 읽을꺼리들인 경우도 있고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쩌다 확실히 놓친 부분이 아니면 다시 돌려 듣는 일이 드문지라, 마음에 드는 부분이나 생각을 하게 되는 부분을 그냥 지나치게 되기 때문에 뭔가 ‘읽었다’는 리스트에 넣기 싫은 것도 있고 해서 리스트는 적어 놓겠지만 읽은 권수에 포함을 시키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작년만 못한 성적이다보니 읽은 책 수에 더해버리고 싶은 욕심이 1프로 드는 것은 사실이나,어차피 혼자만의 리스트인데 이런들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과천 래미안 슈르 아파트 산책로가 얽히고 섥힌듯 어떠하리.
여기서 집고 넘어갈, 미국에서 나오는 오디오 북의 최장점이라고 한다면, 여러가지 단점 감안, 적어도 작품성이 있는 책이라면 읽는 사람들이 배우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읽기가 연기performance라는 생각을 적어도 따로 해본 적이 없는데 가령  harper lee 의 go set a watchman 는 리스 위더스푼이 특유의 남부 사투리를 잘 표현하여, 흐느끼며 소리치며 속삭이며 정말 한편의 영화를 본 것 같았고, 파올로 코헬로의 연금술사 같은 경우는 제레미 아이언스의 퉁명하면서 은밀한 말투가 전체적인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져 좋았다. 번역작이나 어떤 국가의 색이 드러나는 작품은 주로 악센트의 표현이 능한 사람이 읽게 하는 경향이 있는데, 하루끼의 이번 책은 오히려 일어발음은 잘 못 읽는 사람이 전체 대화체는 정체불명의 딱딱한 영어로 읽어서 불만이 있기도 했지만 말이다. 
혼자만의 공상더하기 욕심으로는, 한국같은 경우는 드라마아트로 대개 시작하는 미국과 달리 연극배우 출신이 아닌 배우들의 딕션이 특별이 좋은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외려 발음이 괜찮은 가수들이 시간을 내어 녹음을 해서 문화(!)에 기여도 하고, 본인도 노래 뿐 아니라 좋은 문학작품과 목소리를 엮어 남기는 프로젝트가 있었으먄 좋겠다.(만 현재 한국의 오디오북 사용및 제작 현황도 모르겠고 내 목소리도 작고 해서 별로 반영이 될 것 같지는 않다)
1. The Alchemist - Pauolo Cohelo
2.The Surrendered - Changrare Lee
3.Red Velvet Cupcake Murder -Joanne Fluke 
4.Canada  -Changrae Lee
5.Kite Runner -Khaled Hosseini
6.My Fathers Tears -John Updike
7.Cinammon Roll Murder -JF
8.Too Much Happiness -Alice Munro
9.Go Set A Watchman -Harper Lee 
10.Colorless Tsukuru Tazaki - Murakami Haruki

지금 기록을 보면, 올해 한국에 오면 아무래도 세상귀경으로 바빠질 줄을 알고 열심히 분발하여 작년에는 56권을 읽었던 모양인데 올해는 44권에 그쳤다. 지난 한달동안 못해도 네권은 읽었을 시간동안 한 권을 겨우 읽었을 뿐이니 무리도 아니다. 그래서 676권 남았던 것이 이제 632권이 남았나보다. 
현재도 거의 매일 가방을 둘러메고 집을 나서는 일이 많기 때문에, 그리고 도서관에 와도 사람구경, 생각정리에, 아무래도 사람들을 더 만나다보니 그 전에 없던 커뮤니케이션(!)에 들어가는 시간이 많아 읽는 책의 진도는 영 안나간다. 그래서 이동하는 시간에 늙어가는 다리를 버팅기며. 시큰거리는 손모가지를 삐대가며 부지런히 한페이지씩 읽어나간다. 어느정도 내용이 잡혀야 몰입도 되고 속도도 나지만, 이틀만에 책장을 열어보면 먼저 어디서 놓았는지 다시 읽어보아야 기억이 나기 일쑤지만, 그래도 한 페이지씩 읽어나가다보면 지금 읽는 책도 다 읽어지리라. 이런 추세라면 내년 보고서는 한자리수의 책이 되지 싶지만 그걸로 또 할 수 없다. 산전수전끝에 내 복에 18년만에 이렇게 고국에 오래 머무르며, 아버지가 하모니카로 생일축하를 불어주시는 것과 까짓 책 몇(십)권을 바꾸랴.(라고 말은 하지만 예방주사 제일 먼저 맞고 안 아픈 척하는 느낌 또한 할 수 없다)
나에게 읽기는 끼니와 같다. 해마다 많이 읽겠다고 이렇게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듯이, 많이 읽는다고 어디서 쿠폰하나 주지 않는데 권수를 많이 읽는것 자체가 목적일리 없기 때문에, 이렇게 ‘연명’을 한다고 보면 대충 맞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보다 ‘이야기’를 읽는 것이고, 내가 모를 수 있는 다른 구석 세상을 아는 것이고, 어떤 면에서 나를 표현하는 법이다. 다른 사람들, 특히 보는 눈이 남다른 작가나 학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함께 나란히 서서 배워, 한 마디를 해도 말 같은 소리를 하고 싶은 욕심, 결국은 욕심때문이기도 하고 그것은 식욕과 많이 다르지 않다. 
그래서 아마도, 올해는 정말 리스트만 쭉 쓰고 별이나 몇개 달고 마쳐야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사족을 길게 쓴다고 보면 맞다. 
1. Woodcutters -Thomas Bernhardt
2. O'henry prize Short Stories 2008
3. The Heart Of The Day -Elizabeth Bowen
4. The Tent -Margaret Atwood
5. A Handful Of Dust  -Evelyn Waugh
6. Decline And Fall    -Evelyn Waugh
7. The Case of Sergeant Grincha - Arnold Zeweig
8. Money (a suicide note)  -Martin Amis
9. The Amazing Adventure of Kavalier and Clay -Michael Chabon
10.The Valley of Amazement -Amy Tan
11. 1Q84 -Murakami Haruki
12. Reading Modern Short Stories 1955
13. The London Novels -Colin MacInnes
14.The Lake of Dead Language -Carol Goodman
15. Bridegroom -Ha Jin
16. Cities of The Interior -Anais Nin
17. The Bean Tree -Barbara Kingsolver
18. Missing Person -Patrick Modiano
19. The Brief Wonderous Life of Oscar Wao -Junos Diaz
20. Musicophilia - Oliver Sacks
21. The Voice of the Master Kahlil Gibran
22. Troubles J.G.Farrell
23. Birds of America Lorre Moore
24. U.S.A. 1. The 42nd Parallel
25. 2 1919
26. 3. The Big Money -J. D. Passos
27. Christ Stopped at Eboli -Carlos Levi
28. Look to Windward -Ian M. Banks
29. Monsieur Malaussene -Daniel Pennac
30. The Reader -Barnhart Schlick
31. Spring Flowers, Spring Frost -Ismail Kandare
32. The End of the Story -Lydia Davis
33. Tent of Miracles -Jorge Amado
34.The Pillow Book of Sei Shonagon
35. Jitterbug Perfume -Tom Robbins
36. O'henry prize stories 2006
37. Shroud -John Banville
38. Those Who Leave And Those Who Stay -Elena Ferrante
39. Like Water for Chocolate -Laura Esquire
40. The Art of the Novel -Milan Kundera
41. With Your Own Two Hands -Seymour Bernstein
42. The Shinning -Stephen King.
43. Demian -Herman Hesse
44. Chatterton -Peter Ackroyd

*나름 이유가 있어 선정한 책이었고, 어떤 책은 덜 어떤 책은 더 좋았으나,  나의 의견이 남의 의견과 같으리란 법도 없고,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도 몰라goodreads.com에 리뷰점수 준 것으로 여기 별점은 생략하기로 한다.

Monday, September 5, 2016

내가 모르는 것들

오늘은 Art Nine으로 출근.
밍밍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들고 더운데도 도시를 내려다 보려 바깥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이 참 많구나. 사람들 참 많이 사는구나, 이 도시, 이 나라.
혹여 내 쓰기의 원동력이 되어줄까 싶어서 괜한 일을 떠맡았던 급한 번역을 마감하고도, 세상구경한다고 이리저리 다니느라 계획했던것보다 도서관 출근도 드물게 되었지만, 혼자 시간이 더 익숙한 나로써는 그동안 너무 말도 많았던 것 같아서 오랜만에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나 혼자 보고 싶었던 영화도 보고 혼자 있을 시간도 가지고 싶어 집을 나선 날이다. 
언제나 랩탑을 켜면, 일단 들으며 일할 음악 리스트를 만들어 듣다가, 구글닥에 들어 있는 글을 조금 고치다가, 트윗을 쳌하고, 다시 책을 한 페이지 읽다가, 내 블로그에 들러 이전 포스트를 몇개 읽어보다가는 결국 쓰기 창을 연다. 물론 쓸 말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사실 따로 쓸 말이 있는건지도 나는 모른다.

열긴 열었지만 이 창이 어디로 열려있는지 나는 모른다. 이 창을 열면 그대가 보일지, 보인다면 그대는 등을 돌린 모습일지, 옆모습일지, 그대 얼굴을 볼 수 있을지, 그대의 얼굴이 보인다면 그대의 얼굴은 어떤 표정일지 나는 모른다.

이번에 조금 오래 머무르게 될 줄을 안 이후로 머무르는 동안 무엇을 할지 오랜동안 하나씩 해온 메모들이 있었다. 17년 동안 고작 네번이지만, 우리는 그래도 방학이란게 있어서 그래도 다른 '교포'들의 휴가보다는 나은 평균 한달정도씩 방문을 해왔지만, 늘 시간에 쫓겨 못 해보고 못 가 본 곳은 많이 있게 마련이다. 아직도 있는지 모르는, 있으면 얼마나 변했는지 다시 가 보고 싶은 장소도, 오기 전 예습으로 인터넷으로 열심히 알아둔 새로 한 번 가보고 싶은 장소도 많고, 먹고 싶은 음식들과 직접 들어보고 싶은 가수/밴드도 많았다. 하지만, 늘 한적하고 내 시간이 자유로와 좋은 내 집을 떠나 새로운 장소에서 많은 것을 새로 보면 평생 미루어 온 것들을 신선한 시각으로 써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그런 메모들 중에 그대도 어쩌면 책갈피처럼 어딘가 한 장 끼워져 있는지 모른다. 끼워져 있다면 내가 부러 그렇게 했는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는지, 혹 나도 모르는 새에 그대가 슬그머니 끼어져 들어온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늘 뭐든 결정이 어려운 나.
언제나처럼 고민만 오래 하다, 불현듯 숨겨져 있었던 어떤 결정적인 미지수가 밝혀진 것처럼 작년 어느 여름 저녁, 고려하던 다른 나라들을 제치고 결국 한국으로 사바티칼을 추진하기로 결정을 한 것은 그래서, 어쩌면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냥 아직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 그렇게 하는게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해볼까, 알아나 볼까, 그러면 어떨까 하던 두리뭉실한  '생각'은, 그렇게 둑 옆으로 불은 물에 방죽에 물꼬가 확 터지듯 그냥 그렇게 결정 '되었'던 것 같다. 생각의 밑밥을 살짝 던진 것 뿐인데 나머지는 그냥 거짓말처럼, 농담처럼, 아니, 한 여름 낮 잠깐 조는 새에 비몽사몽간에 꾼 꿈처럼 그냥 그렇게 설렁설렁 풀려나갔다. 아무것도 기다릴 새도 없이 그냥 하던 일을 계속 하면서, 달력 한번 제대로 동그라미 쳐보지도 못하고 매일매일 그냥 살았을 뿐인데 오늘이 되었다.
그러니 그렇게 나는 나의 결정의 배경도 목적도 모른다. 왜 이 때가 아니고 저 때였는지, 아니면 저기가 아니고 여기로 추진을 했는지 나는 모른다. 어디서 어떻게 해서 오늘 내가 여기 앉아 이 노래를 들으며 이걸 쓰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리고, 물론, 그대도 어디서 뭘 하고 살다가, 그대가 있는 그 자리에 있는지, 지금 거기가 어딘지도 나는 모른다.

가족말고는 아무에게도 먼저 알리지 않았다.
재작년 겨울, 장난처럼 올해 내 생일 즈음까지 카운트다운을 시켜놓은 남은 날수는 아주 가끔 앱을 열어보면 한뭉텅이씩 줄어, 처음에는 터무니 없이 크던 숫자도 종내는 입을 크게 벌리면 적당히 먹을만한 크기로 잘려져 있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에게는 근 일년전부터 연락을 두절했었고, 혹 안부를 물어오는 서넛 친구들과도 미니멈의 연계만을 유지했다. 
그들이 내가 연락이 없다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사실은 지금도 대부분 진행형이다) 나는 모르겠다. 연락 못할 정도로 바쁘게 지내다보다고 서운하게 생각했을지, 뭔가 문제가 생겨 잠적한걸로 여기고 그냥 내버려 두자 그랬는지 나는 모른다. 나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 내가 사라진 줄 도 몰랐는지, 가끔 떠 오르긴 했는데 그냥 으쓱 하고 털어버렸는지도 나는 모른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그대가 마지막으로 나를 떠 올린 것은 언제적일지 나는 모른다. 그리고 그 떠 올린 나의 모습은 내 얼굴일지, 내가 한 어떤 말일지, 나의 어떤 몸짓일지, 그저 막연한 이름과 연결된 간단한 정보인지 나는 모른다.  

날이 더워서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그전보다는 여유가 조금 있으니 일단 너무 바쁘지 않게 천천히 시작하려고 하는 것도 있다. 훌쩍 늙어버린 얼굴에 꼭 바보처럼 보이는 곳에 커다란 뾰루지까지 돋아서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핑계로 아직도 나는 매일매일 망설이면서 가방을 들고 별로 당기지도 않는 맛집으로, 옛날에 갔던 라이브 재즈바로, 미직지근한 도서관으로 묵직한 가방을 들러메고 혼자 집을 나서, 낯선 곳으로 '출근'을 한다.
생전 만난 일도 없고 나보다 나이도 한참 어린 트친까지 만난다면서 가까운 사람들 연락을 미루는 이유는, 누구를 먼저 연락을 해야할지, 연락두절 끝에 갑자기 나타나서는 무어라고 운을 터야 할지도 모르겠어서일 것이다. 
전화를 해야할지, 이메일을 해야할지, 손편지를 써야할지, 문득 깜빡 잊은 말 더하듯 그렇게 불쑥 짧은 메시지를 던져도 되는지도 모르겠고, 만나면 그동안 어떻게 지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달리 듣는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잘 모르겠다는 말이다. 
그저 잘 지냈다고 하면, 생전 연락 안하다 뭐 팔 것 있거나 저 심심할때만 연락하는 사람이 되는데 그런건 또 아니고, 그렇다고 나도 보고싶었다고 하자니 그러면 왜 연락도 없었느냐는 것에 대답할 것이 없다. 
나이들수록 시간은 빨리가고 어영부영간에 시간 흐르는 줄이야 다 알지만, 안부를 묻는 반복되는 짧은 대화끝에 언제 한번 보자 하고 몇년씩 지나는 것이 싫어서, 빈말이 싫고, 그러면서 서로 속고 속아주는게 싫어서 아주 연락을 끊었다고 하면 말이 되는지, 그걸 믿어줄지도 나는 모르겠다. 그렇게 설명해도 되는지 그 설명을 내가 믿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이유가 그것인지도 모르겠고 이유라는 것이 있는지도, 있다면 설명할 수 있는것인지도 나는 모르겠다. 그대를 보는데, 혹 보지 않는데 이유가 필요한지 나는 모른다.
그리고, 나의 이유가 어떻든 그대의 이유는 무엇일지 나는 모른다. 만약 수단이 있었다면 그대가 나를 찾았을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뭘까. 그 이유를 나는 알 준비가 되어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대가 설명을 한다해도, 결국 나는 답을 알 수 없을지도 모르고 그것은 오늘 본 영화 '우리들'의 소녀들처럼 나를 형편없이 눈치만 보는 느낌으로 만든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답은 이미 알고 있는 답이 아닐까.  

아직도, 그동안 그립기만 하던 것들을 직접 가서 만나고, 먹고, 만지면 글자 그대로 꿈만 같다. 남동생 결혼식에도 못 오던 형편에서 이렇게 여유를 가지고 부모님과 부대낄 수 있다는 것이 엄청난  행운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 결정되면서부터 두려운 것이 많았고 지금도 많다.
흥분되고 마냥 신나고 설렐줄 알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내 안에 외려 두려운 감정이 더 크다는 것을 발견하고 조금 당황스럽고 실망같은 느낌도 있었다. 날자가 가까와지면서는 학교다니는 애들처럼 사람들을 혼자 대적하는 촌스런 악몽도 더러 꾸었다.
처음 떠날 때부터 두려워서 떠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모두가 만족해야 내가 편한 사람이기 때문에 어디가나 무난하고 잘 어울릴 줄은 알지만, 속내는 어색하고 겉도는 느낌이다. 사람을 많이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은 늘 무겁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책이 좋은 이유 중 하나도 이것이다. 책에는 수많은 세상이 있어서 여기가 마음에 안 들면 죽지 않아도(!) 다른 세상으로 떠날 수가 있다. 싫은 사람도 좋은 사람도 그렇게 만나고 또 헤어진다. 책속의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도 된다'.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무조건 덩달아 좋아해야 하는 , 좋은게 좋은 세상, 아닌걸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세상이 싫어서 박차고 나갔다고, 그렇게 간단히 멋지게 말하고 싶지만,  그런 내가 거부당하는 것이 싫어서 먼저 떠났다고도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이 본성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것도 아니지만, 만약 그렇게 남의 눈치를 보며, 남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그렇게 내게 중요했다면 처음부터 그런 팽팽한 사람이 되지도 않았을테니 거부 그 자체가 두려운 것은 물론 아니다. 그저, 매사에 거듭 내가 아웃사이더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사는 삶은 무엇보다 참으로 쓸쓸한 것이어서 내가 먼저 떨어져 나가자, 그래서 어차피 혼자인 거 철저히 혼자로 살자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이게 최선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머물렀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나는 모른다. 그러면 내가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어떤 사람이 되었을지 나는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머무르면서도 그대를 떠나있을 수 있었을지 나는 모른다. 어떤 형태로 그대와 공존 할 수 있었을지 나는 모른다.

더 이상 '돌아온' 것이 아닌, 잠깐 들러갈 뿐인 낯선 곳에서 이제 석 주차.
오히려 낮에 바쁘게 지내면 집에서보다 밤에 깊게 잘 수 있긴 해도 본래 한번에 오래 자는 편이 아니라서 매일 새벽 어둑한 부엌에서 조용히 진한 커피를 내리고, 빵 한조각을 들고 테이블에 앉아 메일과 밤새 쌓인 트윗을 체크하며 오늘도 덥겠구나 고개를 조금 저으면서 오늘을 어느 새로운 곳을 가서 새로운 무엇을 할까 생각을 한다.
아무리 부모님집이고 내 삶의 2/3 가까이 살아온 나라지만 돌아가야 할 곳이 있는 나는 이제 명백한 이방인이다. 잠시 머무르는 눈과 살아갈 사람의 눈은 다르다. 요즘은 자꾸 미국을 '우리나라'라고 말 실수를 하는 통에 어렴풋이는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번에 한국행을 준비하면서 긴 시간 동안 뭘 할까 계획하는 나의 태도가 홈커밍이 아니라 여행객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흥미롭다고 생각했었다. 결정하기 전에는, 혹 한국으로 사바티칼을 오게 되면 영어 자원봉사를 하든가, 뭘 배워볼까 생각을 했는데 날자가 다가올 수록 새로운 것을 '구경하며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다. 말했듯이 두려운 것도 많고 싫은 것도 있지만 나는 바깥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무겁지 않다. 적어도 아직은 그렇다.
언제까지나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곧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들을 접하다보면 내 입맛에 안 맞는 것들이 더 생길 것이고 때가 되기도 전에 신발 벗어 먼지 탈탈 털고 떠나고 싶은 날도 올것이다. 언제 무엇이 나를 그렇게 할지는 물론 구체적으로는 모르겠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싶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만약에 그렇게 되면, 그대라는 끈질긴 망설임이 되려 나를 잡아 줄지 모르겠다. 이러다 종내 결국 그대로 그대에게 나는 본디, 그리고 이제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기도, 그냥 어제 만난 양 그대 집 근처 어디 계단에라도 앉아 책장 설렁설렁 넘기며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그대를 기다리고 있고 싶기도 하다.

나는 참으로 모르는 것이 많다. 그리고 이 머뭇거림이 어디서 끝이 날지 나는 영 모르겠다. 

Wednesday, August 24, 2016

번역은 섬세한 예술이다 - 레이철 쿡

번역은 섬세한 예술이다 (가디언지 기사 번역) 레이철 쿡
지난해 나는, 틴에이저때 처음 읽었을 때부터 마음에 쏙 들었던  프랑스와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을 새 책으로 한 권 사 가지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이린 애쉬의 불영번역책 도입부에 나오는, “나는, 나를 감싸고 있는 이 이상야릇한 울적함에다가 진지하고 아름다운 느낌의 ‘슬픔’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가 싫다” 라는 책의 첫 문장은 지금까지 내 가슴 속에 새겨져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책을 골라야 할까? 종국에 나는 완전히 새롭고 호화로운 쪽으로 가기로 결정했고 이것이 바로 내가 헤더 로이드의 펭귄 모던 클래식 버전을 사게 된 사연이다.
며칠 후 이 책을 잠자리에서 읽기 시작한 나의 충격은 엄청나고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달콤하고 노곤하게 나에게 들러붙어있는 이 낯설고 새로운 나의 감정은, 정제되고 엄숙한 ‘슬픔’이라는 이름을 달아 위엄을 실어주기가 꺼려지는 그런 것이었다.” 로 시작되는 첫문장은 조금 로보트가 쓰기라도 한 것처럼 들렸다. 무슨 성스러운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한 가지의 번역에만 집착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고, 아주 솜씨좋고 더 정확할 것이 분명한 새로운 번역에 곧 빠져들어버릴 것이라고 스스로 되새기며 나는 한동안 계속 읽어나갔다. 그러나 곧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나 새 번역이 구문론적으로 정확한지는 나는 모르겠지만 문장의 마법적인 힘은 더이상 거기 없었다. 마치 실크 파티드레스를 사러나가서는 나일론 작업복을 사가지고 들어 온 듯한 기분이었다.
이탈리아 작가 엘리나 페란테 전문의 저명한 번역가 앤 골드스타인에게 지난 주 전화로 내가 이 이야기를 했더니 현재 뉴욕에 있는 그는 웃으면서 “무슨 말인지 알아요.” 라고 말했다. “나에게 있어 프루스트는 스캇 몬크리프(프루스트의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 를 1920년에 번역함 ;한국어제목<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고 할 수 있어요. 새로운 번역은 읽어본 적 없고 읽고 싶지도 않아요. 늘상 이러쿵 저러쿵 사람들 말이 많아도 나는 그의 번역에 아주 애착을 느끼거든요.”
그 자신도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페란테의 <나의 훌륭한 친구들>과, 베스트 셀러 나폴리 시리즈 4권의 유일한 번역가로 언제나 남아있을 것이라는 것을 그녀가 인식하고 있었다면 그런 기색은 내비치지 않았다.
번역은 중요하다. 당연히 늘 그래왔다. 번역이 독자의 책에 대한 반응에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관심있는 분들에게 나는, 전 세계 픽션시장에 대한 흥미로운 과제들을 다룬 팀 팍스의 <내가 읽는 것들>, 그리고 멋지고 날카로운 시각의 줄리안 반스의 <마담 보바리 번역하기> 두권을 권하고 싶다.
어쩌면 오늘날 번역은 다른 어떤 때보다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전에는 외국작품들이 충분한 독자들의 눈길을 끌기 영 어려워보였던 영국에도 드디어 외국문학들의 시장이 생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떻게해서 이렇게 된 것인지를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돌이켜보면, 2천년대에 들어면서부터, 스티에그 라르손, 헨닝 멩켈, 요 네스뵈 등의 스칸디나비아 범죄추리물 작가들로 시작해서 점점 엄청난 양의 외국작품들을 다들 읽어대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수기 형태 시리즈물, 칼 우버 크너스가우거드의 <나의 역경>이 노르웨이 번역가 돈 발렛에 의해 2009년 부터 번역되어 나왔고, 그리고 드디어 엘리나 페란테가 전례드문 화려한 데뷔를 했다. 작년 이맘때는 사방에서 엘리나 페란테의 이야기 뿐이었다. 책 좋아하는 내 친구들은 모두 이미 읽었거나 읽으려고 하는 중이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자연히 출판사와 서적상들은 영국의 이 새로운 입맛을 자본화하는데 집중하게 마련이다. (이 그닥 흔하지 않은 상황에다 ‘돈벌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좀 불공평한 것 같다) 출판사들이 거의 매주, 새로운 작품이나 그 전에는 우리에게 무시당했던 외국작품들을 내게 보내온다. 올해 받은 이 작품들 중 내가 전심을 다해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터키작가 사바하틴 알리의 (모린 프릴리, 알렉산더 도우 역)의 <모피코트를 입은 마돈나>, 2009년의 이탈리아 작가(이것도 나폴리가 배경이다)에리 데 루자 (질 풀스톤 역)의 1943년 작 <행복하기 전날>,, 그리고 이 중 가장 독자를 사로잡을, 이스라엘 작가 아엘렛 군다 고센 (산드라 실버스톤역)의, 책장을 계속 넘기게 하는<깨어나는 사자>등이 있었다.
한편 던트 출판사는 내가 다음으로 읽을 외국도서가 될 것 같은 프랑스 작가 마들렌 보둑스(페이트 에반스 역)의 <마리>를 막 내놓으려고 하고 있다. 이 여름에 선보일 예정인 이 독특한 책은 1930년대의 파리를 배경으로 1940년에 출판되었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여자가 연하의 남자와  열렬한 사랑을 하게되는 이야기로, 버지니아 울프나 프루스트와 비견된 바가 있다.
“잘 나가는 장소가 되게 국지적인 책들이 있어요” 푸쉬틴 프레스사의 발행인이자 내게 러시아 작가 테피와 군다 고센 을 소개시켜 준  아담 프로이드하임은 말한다. “하지만 정말 최고의 픽션이라면, 적어도 내 보기는, 어디에서나 환영받죠” 그의 출판사도 그렇지만, 하빌 섹커, 포토벨로, 앤드 아더 스토리즈, 맥르호즈 프레스등의 번역 중심 출판사들은 그저 좋은 책을 출판하는 것에 촛점을 맞추는 것 뿐이다. 번역서라는 것 자체가 출판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외국서적의 인기가 상승세라는 것은, 앤 골드스타인도 말했듯이 이 추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진짜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단순하게 얘기해서, 읽고싶어지게 하는 표지와, 정보가 충분한 소개글과, (대개는) 그 자체만으로도 문학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번역의 훌륭한 번역서가 많이 나와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이 얘기를 시작한 지점으로 돌아가자. 작년에  워터스톤사는 출판계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로 프랑스와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를 시작으로 월간 (고전의 재발견)시리즈를 광고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에 대해 기쁘게 생각하고 있었다가, 알고보니 결국은 서점에 쌓여있던 펭귄모던클래식 시리즈가 새 독자들을 찾는 것 뿐이라는 것을 알고 좋게 말해서 실망했다. 여기서 나는, 이 책을 한번 읽어봤는데 마음에 영 안 들었던 분들은 다시 한번 읽어보시되 이번에는 아이린 애쉬의 아주 멋진 1955 번역판으로 읽어보시라는 말을 하고 싶다. 세실이라는 틴에이져 소년이 리비에라에서 휴일을 보내던 중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재혼을 하게된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이야기인데, 풀장 긴의자에 앉아서든 집에서 방콕을 하며 비오는 거나 보며 읽든 이야기에 푹 빠져 들것이라는 것을 장담한다.

데보라 스미스, 한영 번역가 ; 한강은 매우 너그러웠다. 그녀는 완성작을 ‘우리’ 공동의 책이라고 불러주었다.
데보라 스마스와 한국 작가 한강의 The Vegetarian(채식주의자) 는 2016년 맨부커상의 공동수상작이다. 그는 또한 한강의 최근 소설  Human Acts(소년이 온다), 그리고 다른 한국작가 배수아의 책을 번역한 바 있다. 그는 최근  그가 거주하고 있는 런던에서 틸티드 액시스 프레스라는 비영리 출판사를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아루나바 시나가 벵갈어를 영역한 상기타 반디오파드헤이의 <팬티>가 현재 첫 책으로 출판되어 있다.
나는 2010년, 런던에 있는 동양/아프리카 연구소에서 석사과정을 시작하기 앞서 독학으로 한국어공부를 시작했다. 한국어를 선택한 이유는 이상할 정도로 무작위였다. 돌이켜보면 말이 안되는 일이었으니까. 번역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고 다른 나라 언어 배우는 것을 좋아했다. 22살에 할 줄 아는 언어라고는 영어뿐이었는데 그게 조금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되었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게 한국어 공부를 매력적이게 했고, 그리고 그게 내가 번역가가 될 자리를 마련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교할 대상이 없으니 한국어가 특별히 배우기 어려운 언어인지 나는 모르겠지만, 나는 읽는 것만을 배웠고 아직도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어렵게 느껴진다.
내가 한국어에 빠지고 그런 것은 아니었다. 번역가가 되려고 한 이유는 영어가 좋아서였다. 한글의 어떤 부분은 매우 아름답지만 영어가 가진 울림 같은 것이 한글에는 없다. 한국어 자체보다는 특정 작가의 작품에 빠졌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한국어는 언어로써 특이한 점이 주어-목적어-동사의 어순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많은 말하고자 하는 정보가 끝에가서야 나오게 된다. 한국작가들은 그걸 이용해서 종종 문장에 긴장감을 주곤 한다. 
그리고 한국어는 예의를 갖추는 문체가 있고 존댓말이 있는 언어다. 전통 유교사회에 바탕을 두고 있어 나이에 따라 지위가 결정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늘 하는 방식으로 하면 되니까 별로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 아니다. 오히려 어려운 부분은 한국어의 애매한 표현과 반복되는 방식에 의존하여 쓰여진다는 부분이다. 한국어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영어로는 한국어가 그렇듯 리듬감을 주지 않을것이고, 한국어의 비유는 무엇을 비유하는지를 직접 말하지 않는 모호한 것이다.(역주:은유를 말하는듯) 이런 것은 영어로는 전혀 통하지를 않는다. 독자들은 그저 ‘말이 안되는걸’ 하고 생각할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부분을 좀 더 명확하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바라건데 지루해지지는 않도록 하려고 애쓴다.  
내가 여태껏 일한 작가는 두명 뿐이다. 한강은 영어실력이 좋기 때문에 직접 내 번역을 읽고는 함께 의논해가며 일했다. 한강은 가끔 번역가들이 말하는 끔찍한 작가들 중의 하나가 아니다. 그녀는 함께 작업하는데 항상 매우 너그러웠다. 그녀는 번역은 그 자체로써 예술이고 창의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완성작이 ‘우리’ 공동의 책이라고 생각했다. 배수아는 영어를 잘 말하지도 읽지도 못했지만 그녀 자신이 독일어를 한글로 번역하는 사람이어서 창의적인 일로써의 번역에 대한 생각이 확고했다. 그녀는 영어로 책을 쓰는 데 있어서는 영어를 쓰는 내가 결정권을 쥐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따로 식민지 개척자연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오랫동안 한국문학을 번역해온 다른 번역가들도 많거니와 그들이 큰 상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 또한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번역할 한국문학 작품은 충분히 많이 있다. 한국문학은 놀라울 정도로 탄탄하다. 역동적이고 다양하다. 우리는 현재 큰 변화의 한 가운데 있다. 채식주의자같은 인기있고 좋은 평을 받은 작품들이 독자들과 출판업계와 책판매자들 모두를 번역 전반에 한층 더 관심을 가지게 했으며, 번역이 되어 나오는 책들의 수가 워낙 적기때문에 이는 마치 번역서에는 특별한 도장이 찍혀나오기라도 하는 것 같게 만든다. 최고의 책들만 번역되어 나오는 것이다. (인터뷰: 레이철 쿡)

앤 골드스타인, 이탈리아/영어 번역가 ; 나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내 일은 그게 아니다.
앤 골드스타인은, 십만부 이상 판매된 이탈리아 소설가 엘리나 페란테의 나폴리 시리즈 4권의 역자로 잘 알려져있다. 프리모 레비의 소설 완역판을 편집했으며, 이 것으로 구겐하임 번역 펠로우수쉽을 받았고, 알레산드로 바리코와 자코모 레오파르디의 책들을 번역한 바 있다. 또한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길거리의 아이들>이 다음 달에 나올 예정이다. 그는 1980년부터 뉴요커지의 카피부서장을 역임하고 있다.
같은 사무실의 동료 몇명과 매주 이탈리어를 배우기 시작한 30대가 되기까지 나는 이탈리아어를 배운 적이 없다. 단테의 신곡을 이탈리어로 읽고 싶다는 것이 그 동기였고 다른 사람들은 내가 다 끌고 갔었다. 그리고 5년 후, 1992년 만화가 사울 스타인버그가 친구 알도 부치의 이탈리어로 된 원고 하나를 뉴요커의 편집자 밥 고틀립에게 보낸 적이 있었다. 사울에게 답장을 쓰려면 원고의 내용을 알아야했던 밥은 날더러 원고를 한번 읽어달라고 했었는데 읽어보니 내 마음에 들어서 번역을 하기로 결정했었고, 그리고 밥이 그걸 인쇄해서 내보냈던거다. 1년 후 누군가의 권유로 나의 첫 번역서가 나왔다. 지금 내가 잘 알려진 번역가라는 것은 기분이 이상한 일이다. 전혀 예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번역가가 잘 알려진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는 놀라운 일이다.
나는 이탈리어로 대화하는 것은 읽는 것보다 잘 못하지만 이탈리아어는 참 좋아하고 바로 그래서 배운 것이다. 음악적이고, 표현이 매우 풍부한 아름다운 언어다. 영어로는 못하는 작지만 많은 것들을 이탈리아어로 할 수 있는데, 가령 접미사들을 단어들에 붙여 다양하고 세밀한 뉘앙스를 표현할 수가 있다. 가장 흔한 예가 (역주:강조를 나타내는) Issimo같은 것이 그것인데 그 밖에도 많이 있다. 나는 번역할 때 원글에 충실하려고 애쓴다. 물론 영어로도 잘 읽혀야하지만 나는 소설가가 아니다. 나는 내가 다시 쓴다거나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기분으로 일하지 않는다. 그건 내 일이 아니다. 세번째나 네번째 다듬고 있을 때는원글 없이 일 할지도 모르지만 마지막에는 원글로 가서 내가 너무 원글에서 멀어지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나는 그다지 많은 작가와 함께 일해보지 않았는데, 내가 번역한 책의 작가들이 상당수 이미 사망을 했기 때문이고, 그리고, 페란테의 경우는 그녀는 없는거나 다름없이 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와 연락할 때도 편집자를 통해서 했고 그녀는 전혀 일에 간섭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신뢰한다고 말했고 그게 칭찬인 것 같았다.
페란테의 소설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놀라운 현상이다. 쉽게 읽히는 것 말고도 그녀의 책에는 뭔가 보편적으로 잡아끄는것이 있다. 나는 비평가가 아니고 현대소설은 많이 읽지 않았지만 현대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들은 페란테의 책들이 다른 책들과 다른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감정적인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각이 독특하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잘 보지 않는 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나는 <버려진 나날들>(남편이 떠나고 나자 ‘감각을 잃어버리는’ 여자의 이야기)을 제일 먼저 번역했는데 여러명이 첫 장을 번역했고 내가 뽑혔다. 그 내용에 완전히 사로잡혔던 기억이 난다. 굉장히 강렬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작가는 그걸 어딘가 더 강렬하고 더 흥미롭게 만들었다.
그를 만날 날이 올지는 모르겠다. 그건 별로 관심없는 일이 되었다. 나는 그의 책을 그렇게 여러번 읽음으로써 강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실제로 그를 만난 일은 없지만 그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고 할 수가 있다. <프란투말리아>라는 페란테의 책 번역을 최근에 막 끝냈는데, 그의 편지와 인터뷰와 개인적 에세이들의 모음집으로, 이 책을 읽으면 그가  책을 많이 읽었으며 그것을 작품에 방해되지 않도록 잘 이용하며, 사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생각하는 매우 지적 능력이 높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 그는 매우 분석적이며, 비판적이며, 자신의 생각을 잘 파악하며, 시간낭비를 싫어한다.  
만약 그가 이메일을 보내 만나자고 한다면? 나는 좀 당황할 것이다. 일단 이탈리아어를 좀 말할 수 있도록 연습부터 해야할테니까. (인터뷰:레이철 쿡)

에디스 그로스만, 스페인어 영어 번역가 ; 집에서 번역하는 것이 원숭이와 노는 것보다는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리오 바가스 로사, 말바로 무티스, 미겔 드 세르반테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즈(번역된 본인의 책이 더 마음에 든다고 말한 일이 있다)의 책들을 번역한 것으로 유명하다. 헤롤드 블룸은 그의 2003년 돈 키호테 번역을 매우 뛰어난 수준의 문장력이라고 칭송한 바 있다.  그는 2006년 펜 번역상을 수상한 바 있고, 2008년 안토니오 뮤노스 몰리나의 <유골의 원고>로 소피아 스페인어 연구소 번역 상을 받은 바 있다. 뉴욕거주.
나의 첫 번역은 70년대 초반에 한 것이었다. 내가 이제 80대이니까 대략 30 언저리였던거다. 스페인어를 배웠기는 하지만 뭘 할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통역가나 뭐 그런걸 할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대학원을 들어갔고, 그럼 뭐 문학평론가가 될까 생각도 했었다. 책에 대해 글쓰는 것을 좋아했었으니까. 스페인어와 라틴계 미국 문학이 내 전문분야였다.
그러다가 잡지를 편집하는 친구 하나가 아르헨티나 작가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의 작품을 번역해달라고 요청을 하길래, “로날드, 나는 비평가지 번역가가 아닌걸” 했더니 “에디, 니 직업명이 뭐든 그냥 이놈의 글을 일단 번역 좀 해달란말이야!” 그러길래 그냥 번역을 해줬다. 마세도니오는 사람 상상능력껏 아주 별난 사람이자 별난 작가였다. 내가 번역한 작품은 <심령근절수술>이라는 책이었는데 정말 멋진 작품이었다. 사람의 특정 기억을 제거할 수 있는 수술에 대한 이야기로 텔레비전 공상과학드라마에서나 봄직한 내용이었다. 그래서 그걸 집에 앉아 번역하는게 원숭이들과 노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되었다. 일하러 가려고 옷을 차려입지 않아도 되고 담배도 마음껏 필수 있었다. 그래서 이거 완벽한걸, 아주 완벽한 일이야 하고 생각하고 점점 더 많은 번역일을 하기 시작한거다.
그러던 어느날 내 에이전시가 전화를 해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즈 번역에 관심있어요?’ 라고 묻길래 내가 ‘지금 장난쳐?’ 하고 답했다. 그렇게 내가  마르케즈의 역작 ‘콜레라시대의 사랑’을 번역하게 되었던거다. 6-7개월정도가 걸렸다. 그 때는 무슨 노조가 있는것도 아니고 해서 그냥 일주일 내내 쉬는 날도 없이 일하고 몸이 견딜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일을 했다. 요즘에는 오래 책상에 앉아있는 것은 점점 육체적으로 힘든일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항상 먼저 책을 읽는다. 내 번역하는 친구 하나는 절대로 먼저 책을 읽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와, 그거 색다른 방법인걸”하고 생각했다. 완전히 독자의 입장이 되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놀랄 수 있는 것이란 말이다. 그래서 그렇게 한번 해보았고 대충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내 글에서는 항상 먼저 읽는 것의 장점을 강조해왔지만 말이다. 먼저 리서치나 준비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나는 언제나, 내가 알아야 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작가가 말해주겠지 하는 의견이다.  
직역이라는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언어들은 각각 서로 완전히 다른 시스템이며 스페인어를 영어로, 혹은 영어를 스페인어로 덮어쓸수 없다. 영어는 영어대로 스페인어는 스페인어 대로 그 고유의 구조와 어휘가 있고, 차지하는 공간이 다르다. 내가 어떤 단어의 뜻을 모르고 그 뜻을 찾지 못해서  번역을 못하는 경우라면, 그러니까 온라인에서도, 사전에서도 찾지 못하면 작가에게 물어볼일이다. 작가가 살아 있지 않으면 그때는 내가 그냥 창의적으로 해결하는데 그저 최선을 다 할 뿐이다.
현대 라틴계 미국 문학을 가르치는데 교재로 쓰기위해서 내가 해놓은 번역을 다시 읽어야 한적이 있다. 그럴때면 언제나 완전히 다르게 번역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되는 부분을 책장마다 많이 발견한다. 하지만, 그렇찮은가, 그 때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책은 17세기의 곤고라라는 시인의 <고독>이라는 시집인데 어느 언어로 따져도 내가 살면서 만난 어떤 시보다 어려운 것이었다. 아주 복잡한 구조로 완전히 아름답고 수려한 시들이다. 그래서 아이구야, 내가 이 시들을 번역할 수만 있다면 한 걸음에 빌딩도 넘을 수 있고 정말 못할 것이 없겠다 하고 생각을 했었다.   
번역하는걸 가장 즐긴 책은 돈 키호테였던 것 같다. 아무튼 그 책은 읽을 때마다 사랑에 빠지는 책이니까. 그 책을 번역을 할 생각을 하니 두렵고 흥분되었다. 내가 마르케즈와의 서신에서 이걸 언급했더니 나중에 전화통화를 할 때 첫마디로 “그래서, 세르반테즈와 나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구요?”하는 거였다.
나는 종종 번역을 귀와 입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어를 들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언어의 색조를, 그 언어가 말하는 사람의 지능과 사회적 계층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나의 경우 스페인어로 듣고 영어로 말 할수 있어야 한다. 어떤 멍청한 사람이 <백년간의 고독>을 번역한 그레고리 라바사에게 그 책을 번역할 정도로 스페인어를 잘 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레고리가 “질문이 틀렸네요. 그 정도로 영어를 잘 하느냐고 물었어야지요” 라고 답했다고 한다. (인터뷰:울슐라 케니)

게오르게 시르테시, 헝가리어 영어 번역가 ; 역자만큼 꼼꼼히 읽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게오르게 시르테시는 시인이자 번역가이다. 1948년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고 8세에 난민으로 영국에 와서 어른이 되어 헝가리어를 다시 배웠다. 임레 머다치, 샨도르 머라이, 라슬로 크러스너호르커이(2015년 맨부커상 수상자) 등의 헝가리아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했다. 머다치의 <사람의 비극>으로 데리 상을 수상했으며, 러코브슈키의 <새 삶>의 번역으로 유럽인 시 번역상을 수상했다.
1956년 오스트리아의 국경을 넘었던 우리 일행 네명 중에 영어를 말할 줄 아는 사람은 우리 아버지 뿐이었다. 그 영어는 아버지가 학교에서 배운 것을 기억한 것이었다. 나에게는 어 밀네의 <이제 우리는 여섯살이다>의 대역판이 있었고 그 책으로, 그리고, 그러나, 그래서 같은 유용한 영어 단어들을 배웠다.
영국에 도착하자 나의 부모님은 처음부터 영어로 말해야한다고 주장하셨다. 우리는 난민을 위한 영어교실에 나갔고 부모님들은 서로는 헝가리어로 대화를 하셨지만 우리에게는 영어로 말씀하셨다. 어머니 본인도 이제 겨우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셨지만 말이다. 남동생에게 이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당시 8살이던 나는 잘 해나갈 수 있었던 모양으로 몇달 안에 런던에 있는 학교에서 상위권에 들었다. 이렇게 학교다니며 몇년을 지속하고 나니 헝가리어 책 한권, 헝가리 친구 하나 없이 나의 헝가리어는 다 잊혀졌다.
18세에 시를 쓰기 시작했을 때 영어로 쓰는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항상 글을 쓰며, 운 좋게 좋은 멘토들을 만나며 예술학교 5년을 다녔고, 1984년에 35세가 되어 헝가리에 돌아갔을 때는 3권의 책을 낸 상태였다. 그때가 헝가리어로 된 시를 영어로 번역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때다. 처음에는 도움이 필요했지만 몇년 안에 혼자 일할 수 있게되었다. 그때 번역한 시들은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고 나 자신의 시에도 영감을 주었다. 그 시들로부터 다른 목소리들과 귀절들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 그 후에 픽션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나의 픽션을 번역하는 법은 먼저 한두 장을 읽고 시작하는 것이다. 학구적이라고 볼 수 없는 방법이다. 좋게 말해 학자연하지는 않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목소리의 울림에 골똘히 귀를 귀울이고, 헝가리 독자가 원어로 경험한 것을 영어로도 느낄 수 있게 하는 합당한 영어 목소리를 찾는다. 전체 이야기는 거기서 시작하게 된다.
우리는 번역이라고 하면 사전같은 것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시작에 불과하다. 문학적 정확성은 효과, 속도, 새김, 강도 등등 많은 것들에 대한 고려가 들어간다. 단어나 귀절에 정확히 상등하는 단어나 귀절이 있는 것이 아니다. 번역한 문장의 전체 효과가 중요하다. 효과는 주관적인 것이긴 하지만 글쓰는것도 그렇다. 아무리 애를써도 부다페스트 속어의 느낌을 영어로 표현할 길은 없다. 영어의 멜랑콜리라는 단어는 한 문학적 시대 전체를 불러오는 헝가리어의 bús (부~쉬라고 읽는다)가 주는 연상을 주지 않으므로 그에 합당하는 감정을 불러오는 단어를 찾아야 한다.
많은 번역된 작가들이 사망한지 오래다. 죽은자는 말이 없다.생존하는 작가중 최고인 라슬로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번역한 것과, 편집자의 의견을 듣고 글자 그대로 절대 완벽할수 없는 번역가를 신뢰한다. 그는 번역이 진행되는 동안 나와 거의 대화하지 않는다.
번역가들은 강렬하고 매우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는 그룹이다. 매우 존경스러운 사람들이다. 번역가들처럼 책을 꼼꼼히 읽는 독자는 없다. 영어처럼 크고 부드러운 안락의자같은 언어로 살다가 낯선 감성의 충격이 느껴지는 것도 기쁨이 될 수 있다. 맨부커상 같은 것은 우리의 그런 안이함을 흔들어 놓는 좋은 계기가 되는 한 길이다. 이 오랜 세월 끝에 나는 드디어 번역문학이 이제 호기심꺼리를 넘어섰다고 진심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돈 바틀렛, 노르웨이어, 덴마크어, 독일어, 스페인어 영역 : 살인현장을 찾아 온 오슬로를 찾아 돌아다녔다.
2000년 동 앵글리아 대학에서 문학 번역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이후로 돈 바틀렛은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요 네스뵈, 라르스 사뷔에 크리스텐센, 로위 야콥센 등의 작가들의 책을 번역해왔다. 문학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칼 우버 크나우스거드의 여섯권 자서전 <나의 투쟁>을 번역했으며, <5번째 분납, 어떤 비는 와야만 한다>는 올해 출판되었다. 바틀렛은 가족들과 함께 노포크에 살고 있다.
내가 처음에 프리랜서로 시작했을때 출판사에서 번역서란 건 그냥 잘 안팔리는 물건이라는 말을 하던 기억이 난다. 내 생각에는 독자들이 번역서는 좀 미심쩍게 생각하거나 좀 더 학구적인 번역서들은 두려워 하거나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이제 완전히 바뀌었다. 나는 항상  북유럽인의 입장으로 생각하게 되어서, 이 변화가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그리고 물론 스티그 라르손등으로 1990년대에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때부터 출판사들은 좀 더 모험적이 되었다.
나는 대학에서 독일어를 배웠고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일을 했고, 덴마크로 이사를 갔다가 영국으로 돌아와 스페인 사람하고 결혼해서 스페인어를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는 노르웨이어를 좀 더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머리는 하나고 모든 것에 집중할 수는 없으니까 한 언어가 나아지면 다른 언어가 좀 시들고 그랬다. 그저 모든 언어가 다 완벽할 수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나는 번역할 때는 영국에 있는 것이 좋은데, 영국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살며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노라면 아 바로 그거야 하고 깨닫게 되곤 하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에 가서 리서치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요 네스뵈의 소설을 시작했을 때는 오슬로의 거리를 걸으며 공동묘지가 어디있나, 살인이 일어난 곳은 어디인가 등 장소들을 파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한번은 영국에는 없는 스키 마스트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오슬로에 갔고, 눈과 안개속에서 언덕을 올랐고, 결국 이 마스트가 어떻게 생겼는지 확실히 알게 되어 번역을 잘 할 수 있게 되었다. 보통, 노르웨이어로 된 단어를 사전적으로 그대로 번역할 수 있지만 장황하고 원어처럼 톡톡 튀는 맛이 없다. 그리고 문화차이도 있다. 노르웨이인들이 영국인들과 똑같이 행동하란 법이 없다. 책 속의 노르웨인들은 늘 손을 ‘허공으로 던지’는데 영국인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원어에 충실한 것과 읽기 쉬운 것과의 갈등도 늘 존재한다. 크나우스거드는 쉼표로만 연결된 매우 긴 문장들을 쓰는데, 콜론이나 새미콜론등의 부호들로 문장들을 가르기보다는 원문의 그 긴장감을 재창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문장을 가르는 것이 영문으로 받아들이기는 쉽겠지만 말이다.
요 네스뵈의 경우 그의 소설에 맞는 목소리를 찾기 위해서는 주인공 해리(Hole)이 어떤 사람인가 생각하며 그의 모습을 눈에 그려보는 것이다. 1인칭 시점인 크나우스거드의 작품은 이게 더 어려웠다. 마치 칼 우버를 만나 내가 묘사하고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찾아내려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일이었다. 이것은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모든 캐릭터는 어떤 면에서 다 진짜라고 할 수가 있다. 칼 우버도, 그의 아내와 친구들도 다 실존한다. 그러니 번역을 너무 틀리게 하지 않고 싶은 것이다.
나는 칼 우버와 참 사이좋게 지냈다. 처음에 첫소설의 50-60페이지 분량을 번역해 보내며 어조며 목소리를 맞게 했는지 물어보았는데 그는 바로 답장을 해선 “그래요. 그게 나에요”라고 했다. 그 후로부터는 내 일에 간섭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런저런 소소한 질문을 하곤 했는데 그는 정말 별로 상관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책을 읽었고, 당연히 어디를 가나 부분부분을 읽어야 했던 것이 번역서에서도 그가 책을 썼을 때와 같은 리듬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인터뷰:캐터린 브로미치)

멜라니 머스너, 불영 번역가 : 런던 남부에서는 여러가지 ‘영어’가 많이 들린다.
르완다 소설가 스콜라스티크 무카송가를 번역하는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머스너는 번역을 시작하기 전에는 사회학 강사로 일했다. 2013년 무카송가 모음집 < L’Iguifou>의 번역을 위해 호손 연구비을 지원 받았고, 2014년 같은 작가의 첫 소설 <나일강의 여인>의 번역으로 프렌치 보이스상을 수상했다. 런던 작가들의 모임인 <말리카의 시가 있는 부엌>의 활동도 하고 있다.
<나일강의 여인>을 번역할 때 나는 ‘un wax africain’ 같은 내겐 익숙하지 않은 표현들의 의미를 찾아내야 했었는데, 브릭스톤 시장의 골목들을 누비다가 천가게에 들어갔고, 거기서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낸 일이 있다. 여자들 드레스나 남자들 가운을 만드는 천을, 왁스를 이용해 홀치기 염색을 하는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이다. 마침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의 작품을 읽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적절한 번역은 ‘싸개치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번역하는 방법은 이렇다: 나는 책을 먼저 한번 다 읽고, 이 때 같은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읽어서 그 작가의 문장의 소리와 느낌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으려고 한다. 원어와 같은 소리를 영어로 찾는 것이 관건이다. 스콜리스티크 무스카송가의 목소리가 자마이카 킨케이드, 토니 모리슨, 버나딘 아바리스토와 같은 소리가 날까? 브릭스톤 시장을 돌아다니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르완다 소설가들의 단편집을 처음 만난 것은 브릭스톤 도서관에서였다. 런던 남부에서는 여러가지 ‘영어’가 많이 들리는데 아프리카 영어, 아프리카 카리브해 영어, 라틴 아메리카 영어 등이 있다. 무스카송가의 언어는 고전적이고 서정적인 프랑스어이다. 치누아 아치베, 나딘 고디머같은 작가들을 떠 올려보면 된다.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살아있으면서도 부드럽고 자극적이지 않은 영어가 필요했다. 나는 내가, 식물, 옷감, 음식, 종교예식 등을 묘사하는 키냐롼다의 말들은 그대로 둘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번역을 하는데 무엇이 필요하냐고? 많이 읽는 것, 그리고 오늘날 쓰이는 다양한 ‘영어’를 많이 듣는 것이 필요하다. 번역가로써 나의 업무는 문장의 흐름, 리듬, 문맥, 울림, 발음 등을 듣는 것, 그것들을 내 머릿속에서 새롭게 듣는 것이다. 번역은 문장을 다시 꾸며내는 일이다. 나는 처음 읽는 독자가 문장을 내가 프랑스어로 읽었을 때 내가 들은 소리를, 그 질감과 색깔 그대로 들을 수 있어서 그림 속으로 들어가 풍경과 소리를 듣는 것처럼 해주고 싶다.
글쓰기는 어느것이나 그렇겠지만 번역의 가장 힘든 부분은 원고를 다듬을 때이다. 독자가 어색한 말이나 귀절들에 걸려 넘어지거나 부딫치지 않도록 확실히하기 위해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첫번째 원고는 그냥 쭉 번역하고 나서 나머지는 내가 작품이 처음부터 영어로 쓰여진 것처럼 읽힐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친다.
무스카송가를 직접 만나지는 않았지만 내가 질문이 있으면 이메일을 하고 답을 받는 식으로 한다. 나는 운이 좋은 것이, 많은 경험 많은 자리 잡은 번역가들이 조언을 놀라울 정도로 너그럽게 나누어주었기 때문이다. 번역가들은 생기있고, 서로 지원해주는 공동체로, 워크숍과 서머스쿨, 컨퍼런스 등을 통해 새로 시작한 사람들이 전문가들로부터 배울 수있는 기회가 언제나 있다. 독자로써의 나는, 안토니아 로이드 존스를 번역한 폴란드어 번역가 야섹 위고 베이더, 다니엘 발린을 번역한 이탈리아어 번역가 에리루카, 슈테페네 페스넬을 번역한 독일어 번역가 조세프 로스등에게 지대한 감사를 표한다.